3.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②
허난설헌 또한 선계인 광상산(廣桑山)에서 노니는 꿈을 깬 뒤 그곳 광경을 묘사했다.
을유년에 내가 상을 만나 외삼촌댁에 묵고 있을 때 일이다. 밤중 꿈에 바다 위의 산으로 둥실 날아올랐다. 산은 온통 구슬과 옥이었다. 뭇 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흰 옷과 푸른 구슬이 밝게 빛나 현란하여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무지개 구름이 그 위를 에워쌌는데 오색 빛깔이 곱고도 선명했다. 옥 샘물 몇 줄기가 벼랑 사이에서 쏟아지고, 콸콸 쏟아져 내리는 소리는 옥을 굴리는 것 같았다.
乙酉春, 余丁憂, 寓居于外舅家. 夜夢登海上山. 山皆瑤琳珉玉. 衆峯俱疊, 白璧靑熒明滅, 眩不可定視. 霱雲籠其上, 五彩姸鮮. 瓊泉數派, 瀉於崖石間, 激激作環玦聲.
스물 남짓 두 여인은 얼굴빛이 모두 빼어나게 고왔다. 하나는 자줏빛 노을 옷을 걸쳤고, 하나는 푸른 무지개 옷을 입었다. 손에는 모두 금색 호로병을 들고 사뿐사뿐 걸어와 내게 절을 올렸다. 굽이굽이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니 기화이초가 곳곳에 피었는데 이루다 이름 붙일 수가 없었다. 난새와 학과 공작과 비취새가 옆으로 날며 춤을 추고, 숲 저편에선 온갖 향기가 진동하였다.
有二女年俱可二十許, 顏皆絶代. 一披紫霞襦, 一服翠霓衣. 手俱持金色葫蘆, 步屣輕躡, 揖余. 從澗曲而上, 奇卉異花, 羅生不可名. 鸞鶴孔翠, 翺舞左右, 衆香馚馥於林端.
마침내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동남쪽은 큰 바다라 하늘과 맞닿아 온통 파랬다. 붉은 해가 막 솟아오르니 물결이 해를 목욕시켰다. 봉우리 위 큰 연못은 아주 맑았다. 연꽃은 빛깔이 푸르고 잎이 컸고, 서리를 맞아 반나마 시들었다. 두 여인이 말했다. “이곳은 광상산이랍니다. 십주(十洲) 중에서도 으뜸이지요. 그대가 신선의 인연이 있는 까닭에 감히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찌 시를 지어 이를 기념치 않겠습니까.” 내가 사양하였으나 한사코 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절구 한 수를 읊조리자 두 여인은 박수를 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틀림없는 신선의 말씀이로군요.” 조금 있으려니 한 떨기 붉은 구름이 하늘 가운데로부터 내려와 봉우리 꼭대기에 걸리더니, 둥둥 북소리에 정신이 들어 깨어났다. 잠자리엔 아직도 연하(煙霞)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遂躋絶頂. 東南大海, 接天一碧. 紅日初昇, 波濤浴暈. 峯頭有大池湛泓. 蓮花色碧葉大被, 霜半褪. 二女曰: “此廣乘山也. 在十洲中第一. 君有仙緣, 故敢到此境, 盍爲詩紀之.” 余辭不獲已. 卽吟一絶, 二女拍掌軒渠曰: “星星仙語也.” 俄有一朶紅雲, 從天中下墜, 罩於峯頂, 擂鼓一響, 醒然而悟. 枕席猶有煙霞氣.
이 꿈이 깨고 나서 그녀는 시를 지었다. 그 시의 3ㆍ4구가 이랬다.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 달 찬 속에서 붉게 떠지네. |
이 시가 시참이 되어 스물일곱의 나이로 그녀는 천상 백옥루로 훌훌 올라가고 말았다.
그녀의 대표작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이다. 천상 광한전의 백옥루가 완공되어 쓴 상량문이다. 이 글의 선계 묘사는 더욱 황홀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요지의 잔치를 묘사한 한 대목만 살짝 들여다보자.
선인 쌍성(雙城)은 나전 피리를 불고 안향(晏香)은 은쟁(銀箏)을 쳐서 균천(鈞天)의 우아한 곡조를 합주한다. 완화(婉華)는 해맑게 노래하고 비경(飛瓊)은 공교롭게 춤추어 놀랍도록 신령스런 소리를 빚어낸다. 용 머리에다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을 따라, 학의 등에 기린의 육포로 만든 안주를 받들어 올리니, 구슬 돗자리에 옥방석은 아홉 갈래 등불에 빛이 흔들리고, 푸른 연밥과 얼음 같은 복숭아에는 여덟 바다의 그림자가 쟁반에 가득하다.
雙成鈿管晏香銀箏, 合鈞天之雅曲. 婉華淸歌飛瓊巧舞, 雜駭空之靈音. 龍頭瀉鳳髓之醪, 鶴背捧麟脯之饌, 琳筵玉席, 光搖九枝之燈, 碧藕氷桃, 盤盛八海之影.
용의 두개골로 만든 주전자에 봉황의 골수로 담근 술, 학의 등뼈로 만든 쟁반에 기린의 육포로 만든 안주. 어디 그뿐인가. 한 알만 먹으면 3,000년을 산다는 복숭아도 있다.
인용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5. 구운몽, 적선의 노래①
6. 구운몽, 적선의 노래②
7. 이카로스의 날개①
8. 이카로스의 날개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