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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2. 실낙원의 비가 -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2. 실낙원의 비가 -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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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구운몽(九雲夢)에서 구운(九雲)’은 무엇을 상징할까? 혹자는 양소유(楊少遊)와 팔선녀(八仙女)의 사랑 이야기이니, 결국 아홉 사람의 구름 같은 꿈 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박사가 1922년에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제목을 ‘The cloud dream of nine’이라 한 것은 이러한 이해의 좋은 증거다. 초기 도쿄 경전의 하나인 운급칠첨(雲笈七籤)에 천상 선계에 대한 묘사가 보인다. 이 가운데 태하(太霞) 가운데 성대한 집이 있는데 백기(白氣)를 맺어 서까래를 얹었고, 구운(九雲)을 한데 모아 기둥을 세웠다.”는 구절이 있다. 이때 구운은 아홉 가지 영롱한 빛깔의 구름을 뜻한다. 신선이 거처하는 장소의 의미로도 쓴다.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金萬重)보다 앞선 시기의 시인 권필(權韠)가슴에 구운에의 뜻을 품었네[胸次九雲夢].”라고 노래 한 바 있다. 구운몽이 양소유와 팔선녀를 합쳐 아홉 명을 뜻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구운몽(九雲夢)신선 세계를 향한 꿈을 노래한 작품이다. 유선적(遊仙的) 상상력이 빚어낸 도교적 깨달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팔선녀의 상전은 남악형산(南嶽衡山)의 위부인(魏夫人)이다. 그녀는 자허원군영상진사명남악위부인(紫虛元君領上眞司命南嶽魏夫人)이란 긴 이름을 지닌 도교 두 번째 위계의 여신격(女神格)이다. 천지의 주재자인 원시천존(元始天尊)에 버금간다. 성진(性眞)은 인간 세상에 귀양 와 양소유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이름 그대로 인간에서의 삶이란 성의 진체를 깨닫기 위해 소유(少遊)’, 즉 잠깐 놀다 간다는 의미일 뿐이다.

 

구운몽(九雲夢)뿐 아니라 대부분의 고전소설 주인공은 전생이 신선이거나 선녀이다. 그들은 천상에서 죄를 지어 인간에 귀양 온다. 그때 마침 지상에서는 늦도록 자식이 없던 노부부가 백일치성을 드리게 되고, 그 정성에 감응하여 죄를 지은 신선은 그 집에 늦게 얻은 자식으로 태어난다. 잠깐 다복했던 유년을 뒤로하고 조실부모한 주인공은 버려져 거지가 되거나, 삼촌 집에서 갖은 구박을 받다가 가출한다. 전염병에 걸려 다 죽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 도사나 도승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도사에게서 둔갑술과 검법과 병법을 전수받은 주인공은 마침내 천상의 비범성을 회복한다. 그는 때마침 쳐들어온 외적을 물리쳐 나라에 공을 세우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상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군담소설 또는 영웅소설의 기본적인 구조이다. 이런 예들에서 우리는 도교적 상상력이 옛 선인들의 삶 속에서 지녔던 의미를 헤아려보게 된다.

 

송강 정철(鄭澈)관동별곡(關東別曲)후반부에 다음 구절이 있다. “꿈에 한 사람이 날다려 닐온 말이 그대로 내 모르랴 상계(上界)의 진선(眞仙)이라. 황정경(黃庭經)일자(一字)를 어찌 그릇 읽어두고 인간(人間)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 여기서도 어김없이 자신을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라고 여기는 적선의식(謫仙意識)이 나타난다. 천상의 신선이 인간 세상에 귀양 오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신선들은 아침마다 옥황상제 앞에서 황정경(黃庭經)을 암송해야 하는데, 잠깐 정신이 딴 곳에 팔려 한 글자만 오독해도 귀양 사유가 된다. 그 밖에도 구운몽(九雲夢)의 성진처럼 하라는 심부름은 안 하고 팔선녀와 놀아나다가 들통이 나서 귀양 오는 경우도 있다. 벌을 받아 귀양 온 처지이니 그 인생은 괴로운 시련의 연속일 뿐이다. 자신을 귀양 온 신선으로 내세우는 심리의 이면에는 고통뿐인 현세를 합리화하려는 심리 기제가 작용한다.

 

 

華表柱鶴不來 화표주 위로 학은 오지 않고
遼山日暮歸雲靑 요동 땅 저문 날엔 구름만 푸르도다
當時學仙倣生死 그때에 선도 배워 생사 하찮게 여겼어도
故國歸來有愴情 옛 땅이라 돌아와선 슬픈 정만 있었다오
而吾未了齊物義 내사 여태 제물의 뜻도 깨치지 못했건만
到此轉覺悲浮生 예 와서 외려 뜬 인생 슬픔 깨닫누나
亦有多小曾知情 또한 정을 품었던 이 많이도 있으리라
蓬萊元自蓮渤海 봉래산은 원래부터 발해에 있었거니
安得跨鶴尋仙扄 어이해야 학을 타고 선계를 찾아볼까
松江居士謫仙人 송강 거사께서는 귀양 온 신선이라
往年按節遼陽城 지난해에 요양 땅에 사신으로 왔다네
題詩弔古多感慨 옛 조문해 지은 시는 감개함 많았어도
旋駕飇輪朝帝庭 수레를 돌이키어 황제께 조회했지
人間擾擾竟何有 인간 세상 시끄러워 다시 어이 있으리오
更莫錯讀黃庭經 다시는 황정경을 잘못 읽지 마시구려

 

이춘영의 화표주차송강운(華表柱次松江韻)5수 중 첫째 수이다. 요동 땅 화표주에 얽힌 옛 신선 정령위의 고사에 가탁하여 세상을 떠난 송강 정철(鄭澈)을 추모했다. 요동 사람 정령위는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다. 뒤에 800년 만에 다시 학이 되어 요동으로 돌아오니, 예전 알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무덤만 빽빽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허공을 배회하며 슬피 우짖고는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덧없는 인생, 그나마 현실은 좌절과 질곡의 연속일 뿐이다. 육침(陸沈)의 갈등 속에서 선계를 향한 강렬한 동경은 자연스레 유선(遊仙)을 향한 욕망을 낳는다. 나아가 자신의 불우를 지상선(地上仙)의 통과의례 같은 고통으로 인식하는 적선의식을 낳는다.

 

少隨安期子 海上遊蓬萊 젊어선 안기생을 따라나서서 바다 위 봉래산을 노닐었다네.
同坐若木陰 共食棗一枚 같이 약목(若木)의 그늘에 앉아 둘이 함께 대추를 한 알 먹었지.
謂言半餉間 安知時劫類 한 끼 먹을 사이라고 말을 하지만 오랜 세월 흘렀음을 어찌 알리오.
當時棄棗核 聞巳撑月窟 그때에 버렸던 대추의 씨가 어느새 월굴(月窟)을 찌른다 하네.
仙家事闊絶 與世殊軌轍 선가(仙家)의 일이야 아득만 하여 세상과는 자취를 달리 하누나.
安得臥蓬闕 千秋復萬春 어이해야 봉래궁에 돌아가 누워 천추만추 긴 세월을 누리어볼꼬.
俯見扶桑海 十度掦沙塵 부상의 동쪽 바다 내려다 보면 모래 먼지 자옥이 날리는 구나.

 

권극중(權克中, 1585~1659)무제(無題). ()나라 때 신선 안기생(安期生)은 동해지방에서 약을 팔고 있었다. 진시황이 산동지방을 돌다가 그를 만났다. 그는 적옥(赤玉)의 신발 한 켤레를 남겨두고 뒷날 봉래산으로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나버렸다. 시에서 시인은 자신이 안기생과 더불어 봉래산 약목(若木)의 그늘에 앉아 불사의 신령스런 대추를 나눠 먹던 신선이었다고 밝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득한 세월이 흘러 이제 티끌세상에서 다시 돌아갈 날을 헤어보는 착잡한 심회를 보였다. 옛 신선 안기생과의 동일시는 진세에서 새삼 느끼는 선계와의 거리감을 더욱 아득하게 만든다. 이 거리감의 사이에는 그때 버린 대추씨가 자라 달까지 도달할 정도의 시간이 가로놓였다.

 

이러한 관념의 밑바닥에는 개인의 힘의 한계를 훨씬 웃도는 현실에 대한 우울한 비관주의가 가라앉아 있다. 스스로를 적선으로 생각할 때 유선 행위는 언젠가 자신이 속해 있었던 잃어버린 낙원, 또는 본향으로의 귀환이며, 동시에 불완전한 현재에서 완전했던 과거로의 회귀라는 성격을 띤다.

 

 

 

 

인용

목차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2. 닫힌 세계 속의 열린 꿈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4. 이카로스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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