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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실낙원의 비가(悲歌)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인간에 낙원은 있는가? 낙원은 없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절망과 비탄의 연속일 뿐이다. 믿었던 것들로부터 배반당하고, 사랑하던 사람마저 하나 둘 떠나보낸 후 빈 들녘을 혼자 헤매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뒤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다. 한나라 때 악부시 「해로(薤露)」는 풀잎 끝에 맺힌 이슬만도 못한 인생을 이렇게 노래한다.
薤上露 | 풀잎 위에 이슬 |
何易晞 | 너무 쉽게 마르네 |
露晞明朝更復落 | 내일아침 이슬은 다시 내리겠지만 |
人死一去何時歸 |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올 줄 모르누나 |
고대 중국인들이 상여 메고 나갈 때 덧없는 인생을 슬퍼하며 불렀다는 노래다. 중국 위진 시대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과 마주하게 된다.
人生奇一世 奄忽若飄塵 | 인생이란 한세상 더부살이라 덧없이 흩날리는 티끌일레라 |
出郭門直視 但見丘與墳 | 성문 나서 똑바로 눈뜨고 보니 뵈느니 언덕과 무덤뿐일세 |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 사는 해 백년을 못 채우건만 언제나 천년 근심 풍고 사누나 |
또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난세를 살아가는 전전긍긍을 서글퍼했다.
人生若塵露 天道邈悠悠 | 인생은 티끌이나 이슬 같은 것 천도만이 아득히 유유하도다 |
終身履薄氷 誰知我心焦 | 일생 동안 살얼음을 밟는 듯했지 속 타는 맘 그 누가 알아주겠나 |
그러고 보면 죽림의 청담(淸談)이란 것도 세상일에 초연한 방약무인(傍若無人)이기보다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하겠다. 이때 죽림은 현실의 폭력이 미치지 않는 정치적 진공지대일 뿐이다. 도연명도 이런 비탄을 금하지 못했다.
人生似幻化 終當歸虛無 | 인생이란 마치도 꿈과 같은 것, 종당에는 허무로 돌아가거늘. |
이백(李白)은 다음과 같이 찌든 삶의 근심 끝에 아예 산발하고서 세속을 벗어나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다.
抽刀斷水水更流 | 칼 빼어 물 베어도 물은 다시 흐르고 |
擧杯消愁愁更愁 | 잔 들어 맘 달래도 시름은 더 깊어지네 |
人生在世不稱意 | 인생살이 사는 동안 뜻 같은 일 없었지 |
明日散髮弄扁舟 | 내일은 머리 풀고 쪽배 타고 떠나리 |
당나라의 진자앙(陳子昻)은 다음처럼 노래하였다.
前不見古人 | 전날의 고인은 볼 수가 없고 |
後不見來者 | 장차 올 뒷사람도 보지 못하네. |
念天地之悠悠 | 천지의 아득함 생각노라니 |
獨愴然而涕下 | 나 홀로 구슬퍼 눈물 흐른다. |
인용
1. 풀잎 끝에 맺힌 이슬
3. 구운몽, 적선의 노래
4. 이카로스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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