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대감을 직접 겨누어 권력형 부패를 신랄히 비판하다
이 시는 권세가의 주변에서 자행된 농간에 의해 양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법제가 문란해진 사실을 폭로한 내용이다.
소위 계해반정(癸亥反正) 이후로부터 정권이 일부에 독점되면서 차츰 벌열(閥閱)을 형성해나갔다. 작중의 판서댁 역시 그런 중의 하나이겠거니와, 그 집의 노숙들까지 위세를 업고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일환이란 자는 일개 종놈으로서 양가의 여자를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그로 인해 중형에 처해질 판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을 주모자로 조작해서 형벌이 가볍게 되며, 또 그나마 바꿔치기를 해서 대신 조카를 귀양가게 한다. 몇 년 후 자기 이름으로 대신 귀양 간 조카가 죽는데 뒤미처 진짜 일환도 폭사한다는 줄거리다. 우연이긴 하지만 하늘의 징계를 받은 셈이다.
이처럼 사건의 내막이 사뭇 복잡하다. 그런 만큼 부정이 간교하게 행해진 것이다. 여기서 일환과 같은 인물은 나름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하층의 피지배 신분에 속하지만 오히려 지배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어 적극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한편 시인의 특권세력을 향한 비판의식은 작품 전면에 팽배해 있다. 서문의 산문적 진술 부분에서는 사실의 설명에 중점을 두고, 운문적 서술의 본시에서는 필봉(筆鋒)을 일환 쪽보다 대감에게 바로 겨누고 풍자적 표현을 처음부터 신랄하게 펼쳐나간다. 가령 양민 여자를 약탈했던 목적이 다름 아닌 대감께 바치는 데 있었음을 이 운문적 서술에서 비로소 폭로하는데 이는 풍자의 밀도를 강화하려는 배려로 생각된다. 풍자의 절정은 “이런 묘한 꾀를 누가 능히 내었던고? 대갓집에 물어보고 싶어도 물을 길 없어 안타깝다[誰能爲此計? 欲問巨室嗟無由].”에 이르러서다. 은폐된 악행과 농간의 장본인은 배후에 도사린 권세가, 바로 그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서 곤이 처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우가 바꿔치기를 해서 죽지 않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말을 끌어들인 것은 권력형 부정부패를 더욱 심각하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시인은 평생을 재야에서 보낸 기인형(奇人形)의 인물이었거니와, 그의 집권세력을 보는 비판적 눈이 여기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177쪽
산문 | 권세가와 권력이 작당하여 납치해간 사람을 은폐하다 |
1 | 대가집 머슴 일환의 횡포에 온 고을 벌벌 떠네 |
2 | 대가집과 관리의 전횡으로 주모자를 숨기다 |
3 | 잇달아 죽은 두 명의 일환, 하늘이 갚아준 거구나 |
4 | 역사가라면 들은 대로 쓰지 말고 사실을 밝혀 써야 한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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