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전환기에 여성존재를 부각시키다
이 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기 사이에 동북아 지역의 민족국가에서 출현한 기절(氣節)의 여성상을 그려 보인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서막을 열어 청황제 체제의 대륙 지배로 종막을 지은 거대한 드라마는 하나의 역사 전환이었다. 시인은 이 과정에서 여성의 존재를 민족마다 하나씩 발견한다. 조선의 논개, 일본의 녹운선, 여진의 요면의 처, 한족의 진양옥이다. 이들은 취한 행동이나 드러난 성격이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 녹운선과 요면의 처는 한 남자를 위해 자결한 경우인데 논개와 진양옥은 조국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거나 용감하게 싸웠다. 신분상으로 보면 논개와 녹운선은 기생이었으며 다른 둘은 귀족에 속한 것이다. 시인은 이들 모두를 여협(女俠)이란 범주로 파악하고 있다. 즉 행동의 양태나 규모의 대소는 서로 다름이 있더라도 여성으로서의 의기를 견결(堅決)하게 지키고 실천했다는 면에서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무엇보다 여성 중에서 이러한 인간 형상이 등장한 사실을 대단히 주목한다. 작품의 결구에서 다시 “나 지금 붓을 들어 대서특서하노니 인간 세상에 여장부 훌륭한 그 모습 제시하노라”라고 강조한 것이다. 시인은 남성은 양(陽)이라 동적이고 강건하며, 여성은 음(陰)이라 정적이고 유약하다는 해묵은 논리구도를 청산하지 못했다. 이 구래(舊來)의 논법을 끌어들이는데 “태양의 양면한 기운 동방에 먼저 쪼여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도 밝고 굳센 기개 보인 걸까”라고 남성우월론적 논리를 가지고 여성 쪽으로 뒤집은 셈이다. 여성의 주체적 각성과 성장은 인간 해방사의 한 부분이다. 이 「여사행(女史行)」에 등장한 형상은 비록 낡은 도덕 개념과 논리 틀로 수식되어 있으나 전환기의 시대에 여성 존재를 부각시켰다는 면으로 보면 대단히 흥미롭다.
이 시는 인물의 사적을 나라별로 차례차례 서술해나가서 전체가 4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각 부의 끝에 약간의 견해를 붙여 연결고리를 만들고 주제사상을 심화시킨다. 이와 같은 구성방식으로 여러 인물의 복잡한 이야기가 비교적 요령 있게 엮일 수 있었다. 그런 반면 표현의 구체성은 다소 결여된 느낌이 없지 않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267쪽
1 | 두 왜장과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 |
2 | 마음을 바친 청나라 낭군 위해 목숨 바친 일본의 게이샤 |
3 | 명군과의 전투에서 목숨 잃은 후금의 장수를 따라 순장된 아내 |
4 | 명청전쟁에 산화한 여장부 진양옥 |
5 | 남자들 부끄럽게 만들 여성들의 이야기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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