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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문을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 1. 스터디와 한문의 맛 본문

건빵/일상의 삶

한문을 맘껏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 1. 스터디와 한문의 맛

건방진방랑자 2020. 10. 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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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터디와 한문의 맛

 

 

2018년에 막무가내로 전주로 돌아와 한문공부를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 때 막막했었다. 한문공부를 하지 않은 지 어언 7년째라 한문에 대한 감각을 잊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3월에 운 좋게도 임용고시반에 들어올 순 있었지만 공부방식을 모르기에 예전에 하던 방식 그대로 막무가내로 경서 위주로 문장을 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밤 7시에 진행되는 스터디. 밤의 어스름함을 뚫고 모이는 발길들.   

 

 

 

큰 뜻을 품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서울 노량진에서 임용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음에도 전주로 굳이 내려온 이유는 그래도 스터디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2007~2010년까지 임용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는 전주대 내에 4~5개의 스터디팀이 운영되고 있었다. 학과 차원에서 만들어준 스터디가 아니라 학생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스터디 팀이다. 우리 스터디 팀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이름으로 운영되었고 몇 년 간 아이들과 한문임용 범위표에 문장들을 함께 보기도 했었다. 그런 전력을 알기 때문에 잔뜩 기대하고서 전주에 내려왔는데 아쉽게도 그때 당시엔 스터디팀이 두 팀 밖에 운용되고 있지 않았고 이미 판이 다 짜여 있는 바람에 내가 들어갈 순 없었다.

재밌는 것은 4월 초에 스터디룸에 게시된 시간표를 통해 한 스터디팀이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이들과 얼굴을 익힌 다음에 그곳에 나도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스터디팀은 날마다 모여 스터디를 하고 있었고 스터디 양이 그만큼 많았던 만큼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큰 뜻을 품고 전주로 오긴 했지만 생각만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열리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학교 내에서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두 개나 운영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점은 큰 수확이었다.

 

 

그 덕에  2018년 4월 16일에 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었다. 왜 어색하지 않겠냐만은 그래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4월에 스터디를 만나다

 

그래서 알아보니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누구나 참여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수험생들이 함께 하는 스터디는 현격하게 줄어든 대신에 교수님이 하는 스터디가 그 빈틈을 메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 중순부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스터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입장에선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참여하면 그뿐이었지만, 그럴 수 있었던 데엔 스터디 대상자가 열려 있기 때문에 맘을 먹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형술 교수는 홍만종(洪萬鍾)이 쓴 소화시평(小華詩評)를 기본 텍스트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나도 그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화집(詩話集)을 읽은 적은 예전에 공부할 때 허균(許筠)이 쓴 성수시화(惺叟詩話)뿐이었는데, 그 또한 제대로 읽었다기보다는 눈으로 훑어보는 정도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식으로 교수님과 함께 읽고 의미를 탐구하며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일뿐더러, 위에서부터 얘기했다시피 한문에 대한 감마저 잃어버린 지금은 모든 생소하기만 했었다. 그러니 나의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교수님이 알려주는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정리하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하지만 첫 스터디를 마치고 나서 느낀 감상은 한시가 재밌다는 것이었고, 그냥 스터디에서 있었던 말을 머리로만 이해하기보다 정리를 꾸준히 해나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196월까지 진행된 소화시평(小華詩評)스터디는 앎의 파토스(Pathos)가 일렁이는 순간이자, 한문공부에 대한 맥()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나의 무지(無知)를 여지 없이 폭로해주기에 충분했지만 그만큼 알아가는 희열(喜悅)과 배워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2019년 1월엔 방학임에도 아이들은 매주 마다 두 번씩 나와 스터디를 했다. 대단한 열정이다.   

 

 

 

소화시평을 거쳐 이의현의 문장까지

 

이쯤 되니 임용시험을 준비하러 다시 공부를 시작했음에도 임용시험에서 한 문제를 더 맞는 공부로의 회귀이기보다 한문공부를 맛을 알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예전에 한문공부를 주구장창 해왔음에도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즐거움을 알고 나니 버겁게만 느껴졌고 모르기에 나 자신을 무한히 타박해야만 했던 한문공부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 스터디와 함께 한 지도 어언 26개월 정도가 흘렀다. 그 사이에 2018년엔 소화시평(小華詩評)선집(選集)상권을 모두 마쳤으며 2019년 상반기엔 하권을 마쳤다. 방대한 시들이 담겨 있지만 그걸 한 사람의 관점에서 함께 이해하고 풀어보며 홍만종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고 있는지 제대로 음미해볼 수 있었다. 그 후엔 이의현(李宜顯)이 쓴 도협총설(陶峽叢說)운양만록(雲陽漫錄)을 주 텍스트로 공부하며 중간중간에 하나의 스토리가 담긴 서사시(敍事詩)를 보았다. 소화시평(小華詩評)는 하나의 텍스트를 온전히 보는 과정이었다면 이때부턴 다양한 글을 정하여 그때그때 보면서 한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조선 중기의 학자가 생각하는 문학의 기치(旗幟)란 무엇인지 느낄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올핸 이조시대 서사시를 기본 텍스트로 5월에서야 스터디가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원래 같았으면 1월부터 매주 2번씩 스터디를 진행했을 테지만,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탓에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교수님은 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5월에야 시작하기로 맘먹은 것이었다.

 

 

5월에 스터디가 재개되었지만 학교에선 집합금지로 인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카페에서 진행되는 스터디였다. 남다른 분위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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