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차천로 - 간성 영월루(杆城 詠月樓)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차천로 - 간성 영월루(杆城 詠月樓)

건방진방랑자 2019. 1. 25. 06:29
728x90
반응형

간성 영월루에서

간성영월루(杆城詠月樓)

 

차천로(車天輅)

 

 

愁來徙倚仲宣樓 碧樹凉生暮色遒

鼇背島空風萬里 鶴邊雲散月千秋

天連魯叟乘桴海 地接秦童採藥洲

長嘯一聲凌灝氣 夕陽西下水東流 五山先生續集卷之二

 

 

 

 

 

 

해석

愁來徙倚仲宣樓

수래사의중선루

근심 오면 배회하며사의(徙倚): 배회하다. 중선루중선(仲宣): 삼국 시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의 자이다.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몸을 의탁하고 있을 적에, 유표에게 그다지 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고향 생각이 절실해지자 성루(城樓) 위에 올라가 울울한 마음으로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등루부(登樓賦), “참으로 아름답지만 내 땅이 아니니, 어찌 잠시인들 머물 수 있으리오.[雖信美而非吾土兮 曾何足以少留]” 하였다.에 기대니,

碧樹凉生暮色遒

벽수량생모색주

푸른 숲에 냉기 생기고 저녁 빛 어린다네.

鼇背島空風萬里

오배도공풍만리

거북 등의 섬은 비어 바람이 만리까지 불어대고

鶴邊雲散月千秋

학변운산월천추

학 곁의 구름은 흩어져 달은 천추까지 밝구나.

天連魯叟乘桴海

천연노수승부해

하늘은 공자가 뗏목을 띄우겠다던 바다노수승부해(魯叟乘桴海): 동해를 표현한 말이다. 노수는 노() 나라 늙은이라는 뜻으로 공자(孔子)를 지칭한다. 승부해는 떼배를 타고 바다로 떠난다는 뜻이다.와 연이어져 있고

地接秦童採藥洲

지접진동채약주

땅은 진나라 아이가 불로초 캐던 산진동채약주(秦童採藥洲): 풀꽃이 피어 있는 모래섬을 표현한 말이다. 진동은 진() 동자이고 채약주는 삼신산(三神山)이다. () 사람 서불(徐巿)진시황(秦始皇)에게 글을 올려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 삼신산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방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인데 그곳에 신선이 살고 있습니다.”하자, 진시황이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동원하여 서불에게 딸려 보내어 신선을 찾도록 하였다. 史記』「秦始皇本紀」】과 접해있네.

長嘯一聲凌灝氣

장소일성능호기

긴 휘파람 한 소리가 맑은 기운을 올라타니,

夕陽西下水東流

석양서하수동류

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른다네. 五山先生續集卷之二

 

 

해설

이 시는 간성 누각에 올라 뜬 달을 읊은 것으로, ()일운봉사일본시작(一云奉使日本時作)”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일본에 갔을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해질녘 여러 가지 시름이 일어 중선루에서 배회하는데, 중선루 주변에 있는 푸른 나무에 찬 기운 생겨 저녁 빛이 내려앉기 시작한다(江西詩派의 특징인 生硬한 글자인 韻字를 맞춤).

자라 등의 섬은 비었는데 바람이 만 리 먼 고향에서 불어오고, 학 주변의 구름은 흩어졌는데 달은 천 년 동안 밝다(자라와 학은 脫俗的 분위기를 제시하기 위한 것임).

하늘은 노나라 늙은이인 공자(孔子)가 펫목 타려던 바다로 이어져 있고, 땅은 진시황(秦始皇)의 명을 받고 불사약을 구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떠난 약 캐던 섬에 이어져 있다. 고향 생각을 떨치고자 길게 휘파람을 부는 한 소리에 천상(天上)의 기운 가로지르니, 석양은 서쪽으로 지고 물은 동쪽으로 흐른다.

 

차천로의 시는 현호쇄담(玄湖瑣談), “오산 차천로의 시는 빠른 붕새가 바다를 횡행하고, 여러 말들이 하늘을 오르는 듯하다[五山車天輅 快鵬橫海 衆馬騰空].”라 하였고,

 

호곡시화에서는 오산 차천로의 시는 굉호하다[車五山天輅之轟浩].”라 하여, 중장(雄壯)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위의 시가 이러한 특징을 지녔다고 하겠다.

 

그런데 홍만종(洪萬宗)시평보유(詩評補遺)에서, “내가 오산의 시고를 보았는데, 모두 손수 쓴 것들이었다. 그 시는 왕양여호(汪洋麗豪) 하여 끝내 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일본에 사신 갈 때 지은 시는 사람들에게 많이 일컬어지고 있으나, 흠이 있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시에 이르기를, …… 이미 해공(海空)’이라 하고 또 채약주(採藥洲)’라 하고 또 수동류(水東流)’라 했으니, 어찌 물이 그렇게 많은가? 더구나 채약(採藥)’ 아래의 ()’는 더욱 불안하다. 대개 오산의 문장은 부섬(富贍)하여 비교할 자가 없는데 마침내 잡스러움으로 귀착했으니, 아마 오산이 후세에 전할 뜻이 없어 점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余見五山詩藁 皆所手書者 其詩汪洋麗豪 卒多未精 如奉使日本詩 爲人所稱 而未免疵累 其詩曰 …… 旣曰海空 又曰採藥洲 又日水東流 一何水之多也 況採藥下洲字 尤爲未安 蓋五山之文章 贈給無比 終歸亂雜 豈五山無意傳後 不點化歟?]”라고 한 것처럼, 정치(精緻)하지 못하다는 평을 동시에 받기도 하였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85~86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호곡시화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