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Diaspora
유대인만큼 평판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민족도 없다. 유대인은 중세 유럽에서 수전노(守錢奴)의 대명사였고 오늘날에도 미국의 재계와 언론계를 좌지우지하는 검은 손인가 하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Holocaus)의 희생자였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프로이트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또한 탈무드의 지혜를 가진 현명한 민족인가하면 악명 높은 선민의식【유대인만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민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평판 속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은 유대인만큼 역사에서 수난을 많이 당한 민족은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연을 말해주는 개념이 디아스포라다.
이 말은 원래 ‘흩어졌다’는 뜻의 히브리어로, 지금은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룬 공동체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구약성서 전체가 유대인의 이야기지만 정식 역사는 기원전 13세기 모세의 영도를 받아 이스라엘 12지파가 이집트에서 탈출해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 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평온하게 살다가 기원전 6세기에 신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아 나라를 잃고 무수한 백성들이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가게 되는데, 이것이 디아스포라의 기원이다.
이스라엘 땅에 남은 유대인들은 이 지역이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대교를 모태로 그리스도교가 창시되었으나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배제된 이 신흥 종교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유대교를 탄압하는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마사다(Masada) 요새에서 부녀자를 포함한 960명 전원이 자살을 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유대인들의 나라는 지도에서 지워졌고, 이 디아스포라는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고향을 등진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갔으나 유대교 특유의 신앙과 생활습관은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에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 유럽의 영주들은 유대인들에게 각종 차별과 규제를 가하고 부동산을 소유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장사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고 믿을 것이라고는 전대에 가득 찬 현금밖에 없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나오는 탐욕스러운 유대인 장사꾼 샤일록(Shylock)은 그런 이미지를 대표한다.
그러나 영주들은 전쟁이 벌어진다든가 하는 이유로 돈이 필요할 때마다 유대인들에게서 돈을 빼앗고 국외로 추방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와 장사를 하고 돈을 벌면 또다시 빼앗기고 추방되는 악순환이 중세 유대인의 삶이었다. 언젠가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고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오니즘(Zionism)은 그런 피폐한 삶이 낳은 자연스러운 염원이다.
점차 유럽의 경제를 장악하게 된 유대인들은 유럽 세계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20세기를 맞아 시오니즘을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측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한 대가로 마침내 1948년 그들은 이스라엘 공화국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는 끝난 게 아니라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수천 년 만에 고향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으나 막상 수천 년 동안 팔레스타인에 살아온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없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그들은 신생국 이스라엘에 거세게 저항했고 여기에 주변 이슬람권 국가들이 가세했다. 이렇게 시작된 중동 전쟁은 이후 수십 년 동안 굵직한 것으로만 다섯 차례나 터졌고 이 지역은 21세기까지도 여전히 세계적 분쟁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중동 문제는 단순히 시사적인 현안이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가 난마(亂麻)처럼 얽힌 대형 사건이다. 오래 묵은 생강이 더 맵듯이 오래 묵은 문제는 해법도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대립하는 양측 -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구 열강과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아랍 세계 - 은 처음부터 미봉책으로 일관했고, 이 때문에 사태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역사적이고 인문학적인 사안에 관해서도 이처럼 개인의 업적만 중시하는 정치인들의 손에 맡겨두면 단기적이고 시사적인 해결책밖에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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