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세페르
Laissez-faire
프랑스어에서 laissez는 영어의 let과 비슷한 뜻을 가진 laisser 동사의 2인칭 변화 형태이고 faire는 영어의 do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까 laissez-faire는 “마음대로 하게 놔둬”, “내버려 둬”라는 뜻이다. 올드 팝송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나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같은 노래를 연상케 하는데,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자유방임주의다. 이 일상적인 프랑스어가 개념어로 자리 잡은 이유는 역사적이고 경제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과 비슷한 의미지만 그보다 선배다. 스미스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살았으나 레세페르는 자본주의의 전 단계인 중상주의 시대에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이 즐겨 쓴 용어다.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대로, 참견하지 말고 내버려 둬라.”
18세기에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은 중상주의에 반대하는 슬로건으로 레세페르를 주장했다. 중상주의자들이 요구하는 무역 관세, 특권적인 규제와 조치에 반대하는 슬로건이었다.
이 슬로건을 경제학적 기초 위에서 더욱 체계화한 사람은 영국의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였다. 생산된 상품은 시장에서 교환되는데, 레세페르에 바탕을 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교환은 생산이나 분배의 균형을 조정하는 힘이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된 상품은 사려는 사람이 적으므로 가격이 내려가고, 가격이 내려가면 생산하려는 사람이 적어지므로 생산량이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너무 적게 생산된 상품은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므로 가격이 오르고, 그 결과 그 상품을 생산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므로 물량이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생산이든 가격이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적절하게 조절되게 마련이므로 정부가 굳이 나서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가장 좋다. 이것이 바로 레세페르의 정신이다.
아주 편리하고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문제는 있다. 레세페르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시장에서의 완전한 자유경쟁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약 어느 분야에서 생산자들 간에 담합이 이루어지거나 어느 기업이 특정한 분야를 독점할 경우 레세페르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경제에 국경이 없는 반면 정치에는 국경이 있기 때문에 국제 무역에서 어느 국가가 단독으로 레세페르 정책으로 추구한다면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레세페르의 원칙을 소박하게 믿지 않는다. 비틀스의 〈렛잇비>는 좌절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는 지혜의 목소리지만 레세페르는 결코 현대 국가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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