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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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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한 지역에서 5천 년 이상 살아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는 다른 나라도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한반도에 고려와 조선이 있었을 때 유럽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를 보면 유럽의 중세부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우리 역사의 고려나 조선과는 크게 다르다. 한반도는 지역이 좁으니까 단일한 왕조가 안정된 권력을 가지고 지배했지만, 중세와 근세에 유럽은 수많은 나라들로 나뉘어 다양한 국제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우리의 전설과 다르게 서양의 전설에 왕자와 공주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서유럽 국가들도 지금과는 달리 영토와 민족이 분명히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단일한 국가 체제를 이룬다. 중세 역사에 나오는 독일과 이탈리아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 지역 이름일 뿐이다.

 

 

그럼 오늘날과 같은 서유럽 세계가 생겨난 것은 언제일까? 원형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보통 17세기에 오늘날 서유럽 세계의 모태가 생겼다고 간주한다. 그리고 당시의 서유럽 국가들을 민족국가(a nation-state) 혹은 국민국가(nation state)라고 부른다.

 

그 전까지 지역 문명권을 이루면서 공동의 역사를 전개해오다가 갑자기 개별 국가로 나뉘었으니 모든 게 새롭고 혼란스럽다. 더욱이 원래부터 국가들 간의 구분을 전제로 했던 정치에 비해, 중세까지 통합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경제의 혼란은 더욱 심했다. 이런 혼란상을 정리하려면 새로운 학문이 필요했다. 그래서 18세기에는 경제학처음에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했는데, 그 창시자가 영국의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1776년에 스미스는 각국으로 분립된 유럽의 상황을 배경으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라는 책을 썼다.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 책에 나오는 핵심 개념이다.

 

 

사적 소유 혹은 사유재산을 기본으로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의 기본 단위는 개인이다. 그런데 개인의 경제 활동이 어떻게 국부(國富)’를 형성할 수 있을까? 이 연관을 설명하는 개념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각 개인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경제 행위를 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경쟁이 생겨나고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비록 경쟁하는 개인들에게는 생사를 건 생존경쟁이겠지만 전체로 보면 선의의 경쟁이 된다.

각 개인은 사회의 공익을 증진시키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자신이 사회의 이익을 어느 정도 증진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산물이 최대 가치를 가지도록 산업을 운영하는 행위는 모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각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촉진하게 된다. -스미스, 국부론

 

국가가 실시하는 각종 경제 제도들은 시장의 운동을 규제하지 않고, 시장의 자기 조절 능력이 저절로 발휘되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나 소비자는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조화를 이룬다. 어떤 재화나 용역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소비자가 구매하지 않을 것이며, 지나치게 낮으면 기업이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재화와 용역의 가격은 기업과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정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양측은 아무런 불만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 원리가 국제적으로 확장되면 국가 간의 무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무역의 개념이다. 스미스의 시대인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이 재주 좋은 손의 역할을 했다(레세페르).

 

 

하지만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19세기 말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생산력의 발달로 상품 생산량은 꾸준히 늘지만 빈곤해진 대중은 그 상품들을 미처 다 소비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무대로 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개척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는 못했다.

 

제국주의의 세계 분할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해외 식민지 시장은 사라졌다. 이제 제국주의 열강은 서로가 가진 식민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데,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엄청난 참극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 국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란 보이지 않는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과 간섭을 추구했으며, 국가가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경제 이론을 수정한다.

 

 

그럼 스미스의 이론은 완전히 폐기 처분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의 기본 단위는 언제나 자유로운 개인(혹은 기업)이다. 아무리 국가가 개입한다고 해도 개인과 기업의 경제 활동을 일일이 다 통제할 수는 없다그랬다가 실패한 것이 사회주의 경제 제도다. 스미스는 마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게 되는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본을 어떤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에 대해 각 개인은 어떤 정치가나 입법자보다도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 민간인에게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지시하려는 정치가는 헛수고를 하는 것이며, 실은 권력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국부론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자유 경제를 포기했다기보다는 계획 경제로써 그것을 보완하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러나 자유 경제와 계획 경제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는 각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는 문제다. 경제를 살리자는 모토는 같지만 스미스의 시대에는 경제 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것이 곧 경제를 살리는 길이었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논리가 판치는 지금은 국가의 현명하고도 적극적인 개입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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