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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주관 & 객관(Subject & Object)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주관 & 객관(Subject & Object)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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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객관

Subject & Object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코기토개념으로 근대 철학, 특히 인식론의 토대를 놓은 것은 간단하면서도 유용했으나, 동시에 무모하고 위험했다. 의심할 수 없는 인식의 주체를 확립한 것은 훌륭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생각하는 자아를 유일하게 자명한 주체라고 인정하면 그것 이외에 나머지는 모조리 불명확한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인식 과정은 하나의 확실한 주체가 수많은 불확실한 대상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정체를 규명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인식 과정을 그렇게 보는 것은 데카르트의 발명품이 아니라 전통적인 인식론의 입장이었다. 주관을 뜻하는 라틴어(subjectum)은 원래 아래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고, 객관을 뜻하는 objectum건너편으로 던져진 것이라는 뜻이다주체-대상과 주관-객관은 같은 의미지만 형이상학에서는 보통 전자를 사용하고 인식론에서는 후자를 사용한다. 주관을 객관보다 우위에 놓는 발상은 어원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입장은 몇 가지 인식론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 철학은 그 위험성이 차례로 드러나면서 데카르트의 철학이 조금씩 극복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데카르트가 정리한 전통적인 인식론은 주관과 객관 사이에 넘지 못할 장벽을 세운다. 주관이 객관을 대상화시켜 정의하는 일방적인 인식 구조에서는, 주관에게 특권적 지위가 부여되고 객관이 무차별적으로 동질화되므로 주관과 객관이 영원히 따로 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관은 객관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주관/객관의 분리는 결국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현대 철학에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관 객관의 분리는 은연중에 주관이 주인처럼 군림하고 객관이 노예처럼 부림을 받는 관계를 가정한다. 주관이 객관을 정의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곧 주관이 객관을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그 객관에는 인간의 신체도 포함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카르트의 정신-신체 이원론이다. 그는 정신과 신체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신이 신체를 마치 자동차처럼 운전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사실상 유심론적 경향을 보였다.

 

주관은 인식론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우월한 것은 오히려 객관이기 때문에인식 대상은 인식 주체가 없이도 존재하지만 주체는 대상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양자의 관계는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통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은 인식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유심론이 묵인되었으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존재론이 대두되자 그런 경향은 곧바로 문제시되었다.

 

 

하지만 주관 객관의 분리로 생겨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주관과 객관이 실체화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가 주관으로 확립한 생각하는 자아는 실체적 개념의 주관이며, 따라서 객관도 실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주관과 객관을 규정할 경우 양자의 관계를 짓기가 어려워진다. 실체와 실체는 물리적 혼합은 가능해도 더 농도가 깊은 화학적 결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주관 객관의 관계를 따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

 

특히 객관의 개념을 놓고 철학자들은 큰 혼란을 빚었다. 처음에 데카르트는 객관을 의식 내부에 위치시켰다. 즉 사물과 같은 외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이 의식 안에 표상된 것을 객관으로 보았다. 이런 객관의 개념은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 같은 합리론자들에게도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의식 외부의 존재인 물질적 실체도 객관으로 간주했다. 그 때문에 주관/객관의 관계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결국 그 문제에 관한 가장 창조적인 해법을 내놓은 칸트(Immanuel Kant,1724~1804)는 주관의 내부에 객관을 인식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외부 대상의 본질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지었다(물자체). 칸트는 그 정도에 만족했으나 그것은 완전한 해법이라기보다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절충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관과 객관을 실체적 개념으로 보는 한 칸트를 넘어서는 해법은 불가능했다.

 

실체적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식론적 사유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이었다. 후설은 칸트의 해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관은 객관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성질을 가졌다고 보고 그것을 지향성이라 불렀다(경험). 이제 주관은 자아, 정신, 영혼 같은 실체가 아니라 객관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적 개념으로 규정되었다. 주관이 먼저 존재하고 객관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주관과 객관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며 주관은 객관을 인식하는 방식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체성을 잃으면 정체성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주관/객관이 실체라기보다 관계로서 규정되자 주관은 그 자체의 존재적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객관에 의지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런 주관의 개념은 실존철학을 거치면서 더욱 약화되었으며, 구조주의 철학에 이르러서는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게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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