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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주체사상(主體思想)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주체사상(主體思想)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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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

主體思想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시켰다. 그러나 북한의 사정은 남한보다 더욱 심했다. 전쟁 기간 내내 제공권(制空權)을 장악한 미국 공군의 맹렬한 폭격으로 산업 시설이 모조리 파괴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전후에 복구를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다는 점이다. 남한은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받아 급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으나 당시 사회주의권에는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 소련은 잘못된 전쟁의 명분에서 발을 빼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고 사회주의 신생국인 중국은 전쟁에 병력을 지원해준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형편이었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북한의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받아준 게 고작이었다.

 

이런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에서 나온 게 주체사상이다. “우리식 대로 살아가자는 주체사상의 구호는 혼자 힘으로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궁여지책(窮餘之策)이다. 북한의 공식적 주장에 따르면 주체사상은 1926년 김일성이 항일 유격투쟁을 시작할 즈음에 구상해 1930년에 당 조직의 원리로 적용되었다지만, 이것은 주체사상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원을 소급한 결과다.

 

주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5년 말 김일성의 연설에서였으며, 이후 197212월에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념으로 규정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같은 달에 남한의 박정희(朴正熙, 1917~1979)는 유신헌법을 공표했는데,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 주체사상은 김일성 개인을 우상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고 유신 체제는 박정희의 장기집권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5개월 전인 7월에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의 이면에서 남북한의 독재자는 서로 이대로 영원히를 약속한 게 아닐까?

 

 

1970년대부터 1985년까지 확립된 주체사상의 원리는 체계적인 사상이라기보다는 대중 동원을 위한 이데올로기 또는 슬로건에 가깝다. 주체사상은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원리, 지도원칙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주체를 인간으로 규정하고 모든 일을 자주성의 원칙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요약되며, 사회역사원리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논리다. 지도원칙도 혁명과 건설에서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입장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비록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북한 측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자주성과 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데, 주체를 거부하는 구조주의 철학자가 아니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문제는 1980년대부터 권력 승계를 위해 주체사상에서 수령개념과 사회유기체설의 측면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민대중이 손과 발이라면 수령은 머리에 해당한다. 머리가 손발을 부리듯이 수령은 혁명의 과업을 위해 인민대중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논리다. 김일성의 권력을 상속받기 위해 주체사상의 체계화를 주도한 김정일은 인민대중은 당의 영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전후 복구 시기에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처지에서 그들은 김일성의 영도가 없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전폭적으로 추종했다. 게다가 당시는 중·소이념논쟁을 배경으로 사회주의 각국이 고전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을 자국의 실정에 맞도록 수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므로 주체사상은 북한식 창조적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국제적인 성가를 올렸다.

 

그러나 국가 경영에 필요한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부자간에 권력을 세습하는 현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는커녕 봉건적 왕조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더욱이 인민대중이 수령의 영도와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인민대중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의 원리와 통하는지도 의문이다. 주체사상이 아직도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이유는 사상의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 사회가 그것에 그만큼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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