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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Ⅲ. 새를 새로 키우는 방법 - 1. 구성된 마음[成心] 또는 선입견의 의미, 송나라의 삶의 문맥을 가지고 월나라에 간 사내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Ⅲ. 새를 새로 키우는 방법 - 1. 구성된 마음[成心] 또는 선입견의 의미, 송나라의 삶의 문맥을 가지고 월나라에 간 사내

건방진방랑자 2021. 7. 3.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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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송나라의 삶의 문맥을 가지고 월나라에 간 사내

 

 

논의의 편의상 먼저 소요유편에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읽어보자.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 사람이 장보(章甫)’라는 모자를 밑천 삼아 월나라로 장사를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깎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런 모자가 필요하지 않았다[宋人資章甫而適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이 송나라 사람이 살았던 삶의 문맥을 송이라고 하고, 그가 모자를 팔려고 갔지만 모자를 쓸 필요가 없었던 월나라의 삶의 문맥을 월이라고 해보자. 삶의 문맥이 지닌 구체성과 고유성은 우리의 삶이 몸을 통해 타자의 삶과 얽히게 되는 데서 기인한다. 특정 삶의 문맥 송에서 살았던 이 인물이 다른 삶의 문맥 월로 장사하러 가게 된 메카니즘을 재구성해 보자.

 

우선 이 인물은 자신의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成心]을 가지고 월이라는 삶의 문맥의 구체성을 보지 않고, 월의 구체적 삶의 문맥을 마치 송의 구체적 삶의 문맥의 연장인 것처럼 사유하였기에, 월이라는 삶의 문맥으로 장사하러 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성심을 통해 구성된 월은 이 인물에게는 송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결국 이 사람은 송을 통해 월을 외삽(外揷: extrapolation)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송나라 사람이 월이라는 구체적 삶의 문맥으로 몸을 이끌고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는 성심에 의해 구성된 월과 직접 삶으로 얽히게 된 월과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바로 특정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의 제한성을 자각하는 지점으로 이 인물을 이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기존의 송이라는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이 인물의 구성된 마음은 결코 부정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다. 장자는 이런 자연스런 사태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문제 삼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이 인물이 계속 특정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을 보편적인 척도 또는 기준으로 다른 삶의 문맥에서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인물의 삶은 아마도 다른 특정한 삶의 문맥과 긴장 관계에 놓일 것이고, 이런 긴장 관계는 그에게 삶과 인식의 긴장 관계로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재 자신의 삶이 다른 특정한 삶의 문맥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인식은 사실상 자신의 삶이 한때 깃들었고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구성된 마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 경우에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송나라 사람도 월나라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구성된 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유용하다고 생각한 모자가 이 월나라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구성된 마음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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