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구성된 마음[成心]의 철학적 함축
1. 성심이 있기에 고착된 자의식이 작동한다
이제 성심에 대한 장자의 진단을 직접 읽어보도록 하자. 「제물론(齊物論)」 편에서 장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대저 구성된 마음[成心]을 따라 그것을 스승으로 삼는다면, 그 누군들 스승이 없겠는가? 어찌 반드시 변화를 알아 마음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자만이 구성된 마음이 있겠는가? 우매한 보통 사람들도 이런 사람과 마찬가지로 구성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직 마음에서 구성된 것이 없는 데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마치 ‘오늘 월나라에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궤변과 같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夫隨其成心而師之, 誰獨且無師乎? 奚必知代而自取者有之? 愚者與有焉! 未成乎心而有是非, 是今日適越而昔至也. 是以無有爲有.
구성된 마음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말은 이것을 초자아로 내면화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만난 타자는 하나의 외면으로 관조되고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의 몸은 이미 새로운 삶의 문맥에 진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착된 자의식은 이런 새로운 삶의 문맥의 도래가 주는 자명한 긴장을 미봉하려고 한다. 결국 고착된 자의식은 기존의 삶의 문맥에서 구성된 마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타자와의 만남을 미리 결정하고 예기(豫期)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고착된 자의식은 새로운 삶을 직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삶의 문맥에서 이루어진 성심을 내면으로 정립하여 이 새로운 삶을, 이 새로운 삶의 문맥을 외면으로 관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성심을 스승 삼는다[師成心]’고 지적할 때의 ‘스승 삼다, 또는 절대적 기준으로
삼다[師]’로 말하려는 것이다. 장자에게 ‘성심을 스승 삼다’라는 것은 과거의 특정한 삶의 문맥에 기인한 성심을 인식 내면 혹은 인식 주체로 전화시키는 고착된 자의식의 일반적 운동에 대한 지적이다. 결국 성심이 없다면 고착된 자의식은 불가능해지고, 고착된 자의식이 작동한다면 이것은 이미 성심이 작동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