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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술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본문

연재/배움과 삶

김형술 -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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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진시(眞詩) 목차

 

김형술(전주대 한문교육과)

 

 

1. 16C~17C 동아시아 문예론의 전개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전칠자(前七子): 이몽양(李夢陽), 하경명(何景明), 서정경(徐積卿), 변공(), 강해(康海), 왕구사(王九思), 왕정상(王廷相) / 후칠자(後七子): 이반룡(李擊龍), 왕세정(王世貞), 사진(謝秦), 종신(宗臣), 양유예(梁有譽), 서중행(徐中行), 오국륜(吳國倫)의 복고론

 

 

이몽양(李夢陽, 1472-1529)은 홀로 전대의 위약(萎弱)함을 비판하고, “문장은 반드시 진한(秦漢)시대의 것이어야 하고, 시는 반드시 성당(盛唐)의 것이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이것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았다[夢陽獨護其萎, 倡言文必奏漢, 詩必盛唐, 非是者弗道. -명사(明史)286 이몽양전(李夢陽傳)].

 

이반룡(李攀龍, 1514-1570)은 마침내 후칠자의 영수가 되었는데, 그의 지론은 문장은 전한(前漢), 시는 천보(天寶, 742~756)천보(天寶): () 현종(玄宗)의 세 번째 연호, 당나라 현종은 집권 초기에는 개원(開元)의 치()’라 불리는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천보(天寶) 연호를 사용하던 집권 후기에는 양귀비(楊貴妃)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을 재상으로 임명하면서 선정(善政)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초래했다. 이반룡이 천보를 언급한 것은 성당(盛唐)의 시를 배워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이후로는 족히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攀龍遂為之, 其持論謂: “文自西京, 詩自天寶而下,俱無足觀.” 명사(明史)286 이반룡전(李攀龍傳)].

 

 

 

명대 복고파 이론의 영향력

 

 

1) 17세기 조선의 정두경(鄭斗卿, 1597-1673)

정두경(鄭斗卿)동명시설(東溟詩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진(先秦)과 전한(前漢)의 산문은 읽지 앓을 수 없다. 시 또한 바른 것을 종()으로 삼아서 마땅히 시경(詩經) 삼백 편을 종주(宗主)로 삼아야 한다. 고시(古詩)와 악부(樂府)는 한위(漢魏)시대 작품보다 나은 것이 없다. 조식(曺植), 유정(劉楨), 포조(鮑照), 사조(謝朓) 등 여러 명가와 도연명(陶淵明), 위응물(韋應物) 등은 충담(沖澹)하고 심수(深粹)함이 자연스러운 데서 나왔으니 찾아서 늘 읽어야 한다. 율시(律詩)는 정해진 형식에 구애되는 면이 있어 진실로 고체시의 고원함보다 못하다.

先秦西漢文, 不可不讀. 而詩又以正爲宗, 當以三百篇爲宗主, 而古詩樂府無出漢魏. ···謝諸名家晉陶靖節·韋右司, 沖澹深粹出於自然, 可以尋常. 律詩於定體, 固不若古體之高遠.

 

그러나 대우(對偶)와 음률(音律) 또한 문사의 정밀한 것이니 마땅히 성당(盛唐)의 여러 작가를 법으로 삼아야 한다. ()나라의 시편들은 비록 대가들이 많지만 시의 정종(正宗)이 아니므로 꼭 배울 필요는 없다. 시를 처음 배우는 자가 송시를 익숙히 학습하여 그 풍에 젖어들게 되면 체제와 격조가 점점 낮아지게 된다. 우리가 비록 후세에 태어났지만 옛 것을 배우면 높아질 수 있으니 꼭 낮은 수준에서 기어 다닐 필요는 없다.

然對偶音律, 亦文辭之精者, 當以盛唐諸子爲法. 趙宋諸詩, 雖多大家, 非詩正宗, 不必學也, 初學之士熟習浸淫, 則體格漸墮. 人雖生晩, 學古則高, 不必圖於下乘.

 

 

2) 18세기에도 문단의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 1666-1728)

오규 소라이는 조래집(徂徠集)근세유가문집집성(近世儒家文集集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당인의 시를 배우고자 하면, 당시의 언어를 분류하여 뽑아두는 것이 편하며, 문선의 시를 배우고자 하면, 문선의 시어를 분류하여 뽑아두는 것이 편하다. 각기 상자 속에 담아두고 섞이지 않게 해야 한다. 한 마디를 지으려 하면, 그 상자들 중에서 찾아보고 없으면 그만이지 다시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故欲學唐人詩, 便當以唐詩語, 分類抄出, 欲學選詩, 便當以選詩語, 分類抄出, 各別貯篋中, 不得混雜, 欲作一語, 取諸其篋中, 無則已, 不得更向他處搜究.

 

이와 같이 하기를 오래하면, 자연스럽게 그 언어들을 닮게 될 것이다. 송원(宋元)의 시와 명의 원중랑(袁中郞, 袁宏道)ㆍ서문장(徐文長, 徐渭)ㆍ종백경(鍾伯敬, 鍾惺) 등과 같은 이들은 삼가 한마디 말도 배워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시를 배우는 첫 번째 요법이다. 다만 당시는 조금 어려워 마땅히 명의 이반룡과 왕세정 등 칠재자(七才子)의 시로 보충해야 할 것이니, 이들은 당시의 정맥이다.

如此日久. 自然相似. 如其宋元及明袁中郎徐文長鐘伯敬諸家, 愼莫學其一語片言, 此學詩第一要法. 但唐詩苦少, 當補以明李于鱗王元美等七才子詩, 此自唐詩正脈.

 

 

3) 명말청초 공안파(公安派)의 명대 복고파 비판

원굉도(袁宏道)해탈집(解脫集)4 척독(尺牘)구장유(丘長孺)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저 물()은 참되면 귀합니다. 참되면 내 얼굴이 그대의 얼굴과 같을 수 없으니 하물며 고인의 모습이겠습니까? ()에는 당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문선(文選)의 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초당(初唐)ㆍ성당(盛唐)ㆍ중당(中唐)ㆍ만당(晩唐)에는 각자의 시가 있으니 반드시 초당, 성당일 필요가 없습니다. (중략)

大抵物眞則貴, 貴則我面不能同君面, 而況古人之面貌乎? 唐自有詩也, 不必選體也; 晚自有詩也, 不必初盛也; , 下迨元, 各自有詩也. 不必李杜也. (中略)

 

그런데 오늘날 군자들은 천하를 눌러 당시 일색으로 만들고자 하여 당시와 다르다는 이유로 송시를 흠잡습니다. 당시와 다르다고 송시를 흠잡는다면 어찌 문선의 시와 다르다고 당시를 흠잡지 않으며, 한위의 시와 다르다고 문선(文選)의 시를 흠잡지 않으며, 시경(詩經)의 시와 다르다고 한나라 시를 흠잡지 않으며, 원시 문자와 다르다고 시경(詩經)의 시를 흠잡지 않는단 말입니까? (중략)

今之君子, 乃欲概天下而唐之, 又且以不唐病宋. 夫槪以不唐病宋矣, 何不以不病唐, 不漢魏病, 三百篇病漢, 不結繩鳥跡病三百篇? (中略)

 

시의 기이하고 교묘하며 공교로운 것은 끝이 없기 때문에 옛날에도 다하지 못한 정이 있고, 지금도 그리지 않은 경치가 없습니다. 그런 즉 옛날이라고 어찌 꼭 높다 하며, 지금이라고 어찌 꼭 낮다 하겠습니까?

詩之奇之妙之工之無所不極, 一代盛一代, 故古有不盡之情, 今無不寫之景, 然則古何必高, 今何必卑哉?

 

 

또한 원굉도(袁宏道)금범집(錦帆集)2 문소수시(紋小修詩)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의 시문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혹 지금 여염의 부인이나 어린애들이 부르는 벽파옥(劈破玉)이나 타초간(打草竿)의 부류이다. 이것들은 오히려 견문도 없고 지식도 없는 진인(眞人)’이 지은 것으로 진성(眞聲)’이 많아서 한위(漢魏)효빈(效顰)하지 않고 성당(盛唐)학보(學步)하지 않고서 본성에 내맡겨 발하여[任性而發] 도리어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기호정욕(嗜好情欲)에 통하니, 이것은 즐길 만하다. (中略)

故吾謂今之詩文不傳矣,. 其萬一傳者 或今閭閻婦人孺子所唱劈破玉打草竿之類. 猶是無聞無識眞人所作, 故多眞聲, 不效顰於漢魏, 不學步於盛唐, 任性而發, 尚能通於人之喜怒哀樂, 嗜好情欲, 是可喜也. (중략)

 

대개 감정이 지극한 말은 저절로 남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 이것이 곧 진시(眞詩)’로서 전할 만하다. 그런데 혹자는 오히려 너무 노골적임을 병통으로 여기는데, 감정이 경우에 따라 변하며 글자가 쫓아가면서 감정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표현되지 않을까 염려될 따름이지 무슨 노골적인 병통이 있겠는가? (中略)

大概情至之語自能感人, 是謂其詩可傳也. 而或者猶以太露病之, 曾不知情隨境變, 字逐情生, 但恐不達, 何露之有? (中略)

 

이른바 원망하되 상하지 않는다[怨而不傷]’이라는 것이 어디 있는가? 지극한 시름을 겪을 때에는 통곡하여 눈물을 흘리고 거꾸러지고 뒤집고 하여 음을 선택할 겨를이 없거늘, 원망한다고 할 때 어찌 애상에 젖지 않을 수 있겠는가?

安在所謂怨而不傷者乎? 窮愁之時, 痛哭流涕, 顛倒反覆, 不暇擇音, 怨矣, 寧有不傷者?

 

 

원굉도가 제시한 진시(眞詩)’는 곧 작가 흉중의 도저한 감정인간의 본능적 욕망까지를 포괄한들을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지극하게 풀어낸 것이다.

 

 

4) 조선후기 백악시단(白嶽詩壇)의 명대 복고파 비판

김창협(金昌協), 농암집(農巖集)34 잡지 외편(雜識 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길(獻吉) 이몽양(李夢陽)은 사람들에게 당나라 이후의 글을 읽지 말도록 권하였으니, 이는 실로 너무나 편협하고 비루한 견해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래도 법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말하였으니 괜찮다. 이우린(李于麟=李攀龍)의 무리는 시를 지을 때 전고를 사용함에 있어 당나라 이후의 말은 쓰지 말도록 금지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가소롭다. 시를 짓는 데 중요한 것은 성정을 풀어내고 사물을 다 포괄하는 데 있으니 생각과 느낌이 닿는 것마다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의 정조(精粗)와 말의 아속(雅俗)도 가려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고금을 구별한단 말인가.

獻吉勸人不讀唐以後書, 固甚狹陋. 然此猶以師法言可也. 至李于鱗輩, 作詩使事, 禁不用唐以後語, 則此大可笑. 夫詩之作, 貴在抒寫性情, 牢籠事物, 隨所感觸, 無乎不可. 事之精粗, 言之雅俗, 猶不當揀擇, 況於古今之別乎?

 

이우린의 무리는 옛것을 배움에 있어 애당초 신묘한 해오(解悟)가 없이 그저 언어를 본뜰 뿐이었다. 그래서 당나라의 시를 배우려고 하면 당나라 사람의 시어를 사용해야 하고 한나라의 문장을 배우려고 하면 한 나라 사람의 문자를 사용해야 했으니, 만약 당나라 이후의 전고를 사용한다면 그말이 당나라의 시어와 같지 않다고 의심했다. 그 때문에 서로 이처럼 경계하고 금지한 것이니, 이들에게 어찌 진정한 문장이 있겠는가!

于鱗輩學古 初無神解妙悟, 而徒以言語摸擬, 故欲學唐詩, 須用唐人語; 欲學漢文, 須用漢人字. 若用唐以後事, 則疑其語之不似唐, 故相與戒禁如此, 此豈復有眞文章哉!

 

 

김창흡(金昌翕)삼연집습유(三淵集拾遺)25 정관재선생언행록(靜觀齋先生言行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홍만선이 그 부친(洪柱國)의 북평사 전별연에서 돌아와 조정에 가득한 공경의 수십 편 시를 일일이 낭송하였는데 선생께서 그 강기(强記)함을 대단히 칭찬하였다. 동명(東溟)되놈 땅 뭇 산들이 북극에서 내려와, 장백산에 맺혔으니 장백산의 기세 우뚝하고 우뚝해라라고 한 시구를 듣더니 선생께서 비웃으시며 늘 이렇게 웅대한 말만 짓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洪萬選來自其大人北評事餞席, 歷誦滿朝公卿詩章幾數十篇, 先生極稱其強記. 聽至東溟 胡地群山北極來, 結爲長白勢崔巍.’ 先生哂之曰: “每作此雄大語.”

 

 

김창협(金昌協)농암집(農巖集)34 잡지 외편(雜誌 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그[鄭斗卿-필자]는 재주와 기력이 실로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 등 여러 공에 미치지 못한 데다 일찍이 세심히 독서하고 시도(詩道)를 깊이 탐구하여 깊은 사색 속에 스스로 터득하고 확충, 변화시켜 본 적이 없이 그저 한때의 의기(意氣)로 옛사람들의 허망한 것을 따랐을 뿐이다.

然其才具氣力, 實不及挹翠諸公. 又不曾細心讀書, 深究詩道, 沈潛自得, 充拓變化, 徒以一時意氣, 追逐前人影響.

 

 

2. 백악시단이 주창한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

 

 

김창협(金昌協)농암집(農巖集)34 잡지 외편(雜識 外篇)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서는 우리 조선의 시가 선조(宣祖) 때보다 성한 때가 없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시도(詩道)가 쇠한 것이 실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선조 이전에는 시를 짓는 이들이 대체로 다 송() 나라의 시를 배웠기 때문에 격조가 대부분 전아하지 못하였으며 음률도 간혹 조화롭지 못하였지만 요컨대 또한 질박하고 진실하며 중후하고 노련하면서도 힘이 있었기에 겉치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서 각자 일가(一家)의 언()을 이루었다.

世稱本朝詩, 莫盛於穆廟之世.’ 余謂詩道之衰, 實自此始. 蓋穆廟以前, 爲詩者, 大抵皆學宋, 故格調多不雅馴, 音律或未諧適. 而要亦疎鹵質實, 沈厚老健, 不爲塗澤艶冶, 而各自成其爲一家言.

 

선조 때에 와서 문사(文士)가 많이 나오고 당나라의 글을 배우는 이들이 점차 많아졌으며 중국의 왕세정(王世貞)ㆍ이반룡(李攀龍)의 시도 차츰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에 따라 사람들이 비로소 모방하여 단련하고 정교하게 가공하게 되었으니 그 이후로는 문사들이 따르는 작법이 한결같고 음조가 서로 비슷해져서 천질(天質)이 더 이상 보존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선조 이전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으나 선조 이후의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좀처럼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시도(詩道)의 성쇠가 나뉘는 지점이다.

至穆廟之世, 文士蔚興, 學唐者寢多. 中朝王李之詩, 又稍稍東來, 人始希慕倣效, 鍛鍊精工. 自是以後, 軌轍如一, 音調相似, 而天質不復存矣. 是以讀穆廟以前詩, 則其人猶可見; 而讀穆廟以後詩, 其人殆不可見, 此詩道盛衰之辨也.

 

 

김창흡(金昌翕)삼연집(三淵集)23 하산집서(何山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동방의 시는 연원이 얕아 논할 만한 헌장(憲章)이 없는데 유독 기휘(忌諱)에 상세하고 잉습(仍襲)을 탐하여 실로 300년의 고질적인 폐단이 되었다. 그러나 선조 이전에는 교졸(巧出)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각자 그 진태(眞態)’ 드러내었는데 그 이후로는 점차 아름답고 우아한 데로 나아갔으니 다듬고 꾸미는 일이 날로 승하여 기휘는 더욱 상세해지고 잉습은 더욱 익숙해져 옛날처럼 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법에 구속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물을 명명하려면 반드시 휘부(彙部)에 의지하고 전고를 인용하려면 내력이 있기를 구하니 점점 좁아지는 틀 속에서 감히 곁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 진기(眞機)와 활용(活用)을 묶어 행해지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어찌 또 중류(中流)를 끊고 율벌(津筏) 넘어 오르는 자가 있겠는가?

我東爲詩淵源旣淺, 無復憲章之可論, 而獨其詳於忌諱, 狃於仍襲, 實爲三百年痼弊. 然而宣廟以前, 雖有巧拙, 猶爲各呈其眞態, 以後漸就都雅, 則磨礱粉澤之日勝, 而忌諱愈詳, 仍襲愈熟, 非古之爲法而終爲法拘也. 故命物之, 必依彙部; 使事之, 要有來歷, 蹙蹙圈套之中, 不敢傍走一步. 遂使眞機活用, 括而不行, 豈復有截斷中流, 超津筏而上者乎?

 

종합하여 논하자면 백가(百家)가 한 가지 격이었으니 곧 한 사람의 작품에 경사(境事)가 뇌동(雷同)하고 정치(情致)가 뒤섞여 또 천편일률이 되었으니 구별할 수가 없다. ! 공자는 시로써 살필 수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이처럼 되려 하는가? 내가 우리 시에서 병통으로 여기는 것은 이처럼 법에 얽매이는 것이다.

蓋合而論之, 百家一格, 卽夫一人之作, 而境事雷同, 情致混倂. 又是千篇一律, 無可揀別矣. ! 詩可以觀. 豈欲其如是哉? 余於靑丘之詩, 所病其拘於法者如此.

 

 

이하곤(李夏坤)두타초(頭陀草)16 홍창랑시집(洪滄浪詩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또 비장(悲壯)’정려(整麗)’로써 저들[이안눌과 권필-필자]의 폐단을 교정하였으나 요란하고 어수선하며 정()과 경()이 참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황된 폐단을 노정하였다. 이에 김삼연(金三淵)과 홍창랑(洪滄浪)의 시가 나오게 되었다.

東溟又以悲壯整麗齋之, 然叫呶紛拏, 情境不眞, 故其弊也虗, 於是乎金三淵洪滄浪之詩出焉.

 

 

3. 진시 창작의 핵심 이론: 천기론(天機論)

 

 

의고파의 가짜 복고를 벗어나 고인의 정신을 자득하고, 관습화되고 형해화된 정과 경을 진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인은 부단한 학문과 수양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민멸(泯滅)된 시도(詩道)를 진작해야 한다.

 

 

1)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편의 기욕(嗜慾)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嗜慾深者, 天機淺也].”라는 말이 있다.

 

2) 주자어류(朱子語類)62 중용(中庸) 1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솔개는 솔개의 성()이 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성()이 있어 그 날고 뜀에 천기(天機)가 절로 완전하니 곧 천리(天理)의 유행이 발현되는 오묘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사께서 우선 이 한두 가지로 도()가 없는 곳이 없음을 밝히신 것 아닙니까?”라고 여쭈니, “그렇다.”라고 대답하셨다.

: ‘鳶有鳶之性, 魚有魚之性, 其飛其躍, 天機自完, 便是天理流行發見之妙處, 故子思姑擧此一二以明道之無所不在否?’ : ‘.’”

 

3) 주자어류(朱子語類)97 정자지서(程子之書)3에서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장자의 용어인 천기를 성리학의 용어로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해 주자 당대에 이미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주자어류에는 장자(莊子)기욕심자(嗜慾深者), 천기천야(天機淺也).” 등을 예로 들면서 도체(道體)를 잘 형용했다는 정자의 평가를 두고 이단의 말이니 익힐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문인의 질문이 실려 있다. 그에 대해 주자는 말에 취할 것이 있다면 마땅히 취해야 한다며 노장의 학술이 허무하다는 이유로 좋은 말까지 함부로 흠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나아가 노자(老子)장자(莊子)독서도 스스로 주관만 확실하다면 무해하다고 답변하였다.

程先生謂: “莊生形容道體之語, 儘有好處. 老氏谷神不死一章最佳, 莊子云嗜慾深者, 天機淺, 此言最善.” 又曰: “謹禮不透者, 深看莊子.” “然則莊老之學, 未可以爲異端而不講之耶?” : “君子不以人廢言, 言有可取, 安得而不取之? 如所謂舊慾深者, 天機淺, 此語基的當, 不可盡以爲虛無之論而妄訾之也.” 謨日: ‘平時慮爲異敎所汨, 未嘗讀莊老等書, 今欲讀之, 如何?’ : “自有所主, 則讀之何害? 要在識其意所以異於聖人者如何爾.”

 

4) 김창협(金昌協)농암집(農巖集)24 제월당기(霽月堂記)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낮과 밤이 갈마듦에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고 사계절이 운행함에 풍운(風雲)이 변화하고 초목(草木)이 번성하는 것, 이것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현자와 일사들이 간혹 이것을 독점하여 자기들만의 즐거움으로 삼고 남들은 함께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세와 이익이 외면에서 유혹하면 뜻이 분산되고 기호와 욕망이 마음에서 불타오르면 보고 듣는 것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이 같은 자는 눈이 어지럽고 행동이 어수선하여 제 몸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는데 또 어느 겨를에 외물을 완미하여 그 즐거움을 맛보겠는가! 오직 몸은 영욕(榮辱)의 경계를 넘고 마음은 작위(作爲)의 밖에 노닐어 허명정일(虛明靜一)해지고 이목에 가려진 바가 없어야만 외물에 대해 그 깊은 이치를 관조할 수 있어 내 마음이 진실로 혼연하게 천기(天機)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을 어찌 보통 사람들이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陶淵明) 정도가 되어야 북창(北窗)의 바람을 시원하게 느낄 수 있고 격양가(擊壤歌)를 읊조린 소옹 정도가 되어야 낙양의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晝夜之相代, 而日月互爲光明; 四時之運行, 而風雲變化, 草木彙榮, 此有目者之所共覩也. 而世之高賢逸士, 乃或專之以爲己樂, 若人不得與焉者, 何哉? 勢利誘乎外, 則志意分; 嗜欲炎於中, 則視聽昏. 若是者, 眩瞀勃亂, 尙不知其身之所在, 又何暇於玩物而得其樂哉? 夫惟身超乎榮辱之境, 心游乎事爲之表, 虛明靜一, 耳目無所蔽, 則其於物也, 有以觀其深, 而吾之心, 固泯然與天機會矣. 此其樂, 豈夫人之所得與哉? 是以, 必其爲歸去來賦, 然後可以涼北窻之風矣; 必其爲擊壤吟, 然後可以看洛陽之花矣.

 

 

4. ()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김창흡(金昌翕)구룡연(九龍淵)을 통해 본 특징

다음은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2구룡연(九龍淵)이란 연작시 몇 편을 보자.

 

2

二淵懸瓢似 瀑流喧吐呑 둘째 못은 달아 맨 바가지던가 멍멍하게 폭포 물을 삼켰다 뱉네.
誰知呀然小 逈洞搏桑根 누가 알랴? 우묵하게 고인 작은 물이 멀리 통해 부상의 뿌리에까지 맺힐 줄.

 

5

五淵急回軋 南岸側成釜 다섯째 못 급히 돌며 콸콸 대는데 남쪽 언덕 비스듬하여 솥이 되었네.
馳波迭後先 赴隘徘徊舞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달리다가 좁은 곳에선 빙빙 돌며 춤추는 듯.

 

6

六淵美如璧 清涵石紋粹 여섯째 못 아름답기 구슬 같은데 맑게 씻긴 바위 무늬 티도 없구나.
竦髮注眸深 高雲正泛翠 머리 선 채 못 깊은 곳 눈을 붙이니 높은 구름 참으로 비취 위에 떠있네.

 

8

八淵淺堪漱 潛龍易出身 여덟째 못 얕아서 양치질할 만하니 숨은 용도 쉬 몸을 드러내겠네.
日靜玩澹瀩 眞爲遭睡人 날이 고요해 못가에서 즐기다 보면 진실로 잠든 용을 만난 사람이 될 듯.

 

 

연작시는 대상의 진면목을 다양한 측면에서 관조하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는데, 이러한 장점은 산수와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산수의 진면목을 담아내려 했던 백악시단의 시적 지향과 잘 맞는다. 나아가 연작시는 형상화에 있어 형사(形似)와 심사(心似)를 보다 자유롭게 선택하여 조직할 수 있게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전대의 산수시와 비교할 때 백악시단이 연작 산수시를 상대적으로 많이 창작한 까닭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백악시단 문인들의 산수를 대하는 태도

1) 김창협(金昌協)농암집(農巖集)21 유이이생동유시서(兪李二生東游詩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조물주에게는 완전한 공력이 없고 사람의 재주 역시 치우침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산수가 모두 빼어날 수 없고 사람의 시가(詩歌) 또한 오묘한 것이 드물다. 이 때문에 평범한 경치에서 기발한 말을 구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조잘대는 소리를 가지고서 아름다운 경관을 묘사하려 들면 조금도 닮지 못할 것이다.

然造化無全功, 人才有偏蔽, 故宇內之爲山水者, 不能皆勝, 而人之於詩歌, 亦鮮造妙. 是以踐常境而求奇雋之語, 則無助, 操哇音而寫瑰麗之觀, 則未肖.

 

 

2) 김창흡(金昌翕)삼연집습유(三淵集拾遺)1 경차가군운(敬次家君韻)

上山危險不須論 산을 오르는 데 위험은 논하지 말라!
纔入氷壺可濯魂 신선경에 들자마자 혼을 씻을 만할 테니

 

 

3) 권섭(權燮)옥소고(玉所稿)』 「유행록(遊行錄)3권의 대남록(臺南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년에 금강산에 들어갔을 때 이르는 곳마다 위험한 곳을 딛고 올랐는데, 그곳에는 반드시 기이한 볼거리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미친 듯이 정신을 빼앗겨 거꾸러지는 것을 후회하지 않고 말하길, ‘늙은이가 일흔에 죽어 이 사이에 뼈를 묻어둘 수 있다면 다행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昨年金剛之入, 到處躡危, 必有奇觀. 故不悔狂而倒曰: ‘老七十而死, 藏骨於此中間幸耳.

 

 

4) 이병연(李秉淵)보덕암(普德庵)

落日行臨潭水頭 해질녘 걷다가 맑은 못가 이르니
蜿蜒銅柱影中流 구리기둥 그림자 물속에 구불구불
老龍嘘送虹千尺 늙은 용은 천척(千尺)의 무지개를 뿜어서
扶起搖搖白玉樓 흔들흔들 백옥루를 붙들고 있네. 사천시초(槎川詩抄)

 

 

5) 두타초(頭陀草)14 동유록(東遊錄)

시내 왼쪽의 좁은 길을 따라 보덕굴(普德窟)로 오르는데 돌비탈길이 구불거리는 것이 거의 수백 보()이다. 비탈길이 다하면 다시 돌층계가 있는데 그 층계를 따라 다시 수십 보()를 내려가면 비로소 굴에 이를 수 있다. 가운데에는 사대사상(沙大士像)을 봉안하였고 위는 이층집으로 덮었는데 마치 제비둥지 같다. 앞 기둥은 아래로 허공을 임하고 있는데 수십 척 구리기둥으로 받치고 또 쇠사슬로 얽어매었다. 승려 혜관(慧觀)이 마루판을 들어내고 나를 이끌어 내려다보게 하였는데 어지럽고 떨려서 오래 볼 수가 없었다.

 

 

5. ()의 실상: 민생의 핍진한 사생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8작천무량(鵲川無梁)

我過淸州境 觀風一喟然 내가 청주의 경계를 지나며 풍속을 살펴보니 탄식만 나오네.
誰爲懶明府 民病涉寒川 누가 관가의 부름에 늑장피우랴? 백성은 병든 채로 찬 냇물을 건너네.
斫脛傷仁酷 乘輿用惠偏 정강이 깨졌으니 인을 해침이 가혹하고 수레를 타는 일도 그 혜택이 치우쳤구나.
行人能殿最 可畏豈非天 행인들도 행적을 평가할 줄 아니 어찌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권섭(權燮) 옥소고(玉所稿)』 「() 1동면민가(東面民歌)

(前略) (전략)
松脂杻骨杻皮令 송진 싸릿대 싸리껍질 채취 명령
白蠟五味山葡賦 밀랍 오미자 산포도 채취 부역
生鮮日次白土掘 하루걸러 생선 잡고 백토도 파야하는데
種種難酬別分付 들어주기 어려운 가지가지 다른 분부
輪差里正日奔走 돌아가며 맡은 이장 날마다 분주하고
五貫靑銅三朔斁 다섯 관 청동을 석 달 만에 마쳤다네.
(中略) (중략)
書員監官踏驗苛 서원(書員), 감관(監官) 답험(踏驗)은 지독하고
及唱使命別差屢 급창(及唱), 사령(使令) 별도 차출은 빈번하구나.
軍官何事劇咆哮 군관은 무슨 일로 저리 씩씩 화를 내나?
約正風憲亦可怖 약정(約正)과 풍헌(風憲)도 협박하긴 매한가지.
家家酒饌恣醉飽 집집마다 술과 음식 제멋대로 다 처먹고
剪髮何敢言貧窶 머리 잘라 사는 마당에 어찌 가난 말하리오?
纔去卽來彼主人 가자마자 즉시 오는 저들의 주인은
以村爲家勸農互 권농과 작당하여 촌락을 제 집으로 삼네.
殫心供接少佛意 대접하기 꺼려하여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誣揑終爲獄中庾 무고하게 엮어서 끝내 옥에 처넣네.
哀哀東面民何生 애달파라! 동면 백성 어찌하면 살 것인가?
疾痛呼天又呼父 괴롭고 아파 하늘에 호소하고 부모에게 호소하네..
我來凌江洞裏行 내가 능강에 와 마을 안을 다니면서
耳聆愁悶慘目睹 귀로는 근심 듣고 눈으로는 참상 보고
鳴鳴一鳴作歌詩 구슬픈 원망 노래 한번 지어서
願誦淸風深邃府 읊조려 저 깊숙한 청풍부에 알리려 하네.

 

 

이병연(李秉淵)사천시선비(桂川詩選批)권하(卷下) 우계(羽溪)

父老相逢說 今年良苦哉 노인들과 만나서 말을 나누니 올해는 참 죽을 맛입죠.
藩籬多帍患 畎畝半虫災 울타리에는 호환(虎患)이 잦았고요, 논밭은 벌레가 반이나 먹었습죠.”
官遠何能達 民艱實可哀 관청이 머니 어찌 능히 알리랴? 백성들의 고달픔 참으로 슬프구나!
秋來又奔走 嶺上別星廻 가을 와서 또 다시 분주하건만 고개 마루 위에는 관리의 행차.

 

 

이병연(李秉淵)사천시초(桂川詩抄)권상(卷上) 조발(早發)

一鷄二鷄鳴 小星大星落 첫닭 울고 둘째 닭 울더니 작은 별, 큰 별 떨어진다.
出門復入門 稍稍行人作 문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행인은 채비를 하네.

 

客子乘曉行 主人不能遣 나그네 새벽 틈타 떠나려고 했더니 주인은 그냥 보내질 않네.
持鞭謝主人 多愧煩鷄犬 채찍 쥐고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니 닭과 개만 괜스레 번거롭게 했구나!

 

 

신정하(申靖夏) 서암집(恕菴集)2제두월정구허신개주가벽(題斗月亭舊墟新開酒家壁)

秋田稻熟蟹如流 가을 들녘 벼가 익고 게들도 쏟아지니
生事江鄕百不憂 강가 마을 먹고 살 일 무엇 하나 걱정이 없네.
上水女商爭操筏 물가의 아낙들은 다투어 뗏목 젓고
近湖童穉盡能游 강가의 아이들은 모두가 수영 선수.

 

 

권섭(權燮) 옥소고(玉所稿)』 「()9아배용경운영기(兒輩用驚韻咏碁) 노부역희제잉제잡기사시(老夫亦戱題仍題雜技四詩)

何人安坐幾人驚 누구는 편히 앉고 몇 사람은 놀란 채로
逐坐隊分未大聲 자리 따라 편 나누고 숨을 죽이니
誰快勝乎張爾手 통쾌한 승리는 누구 것인가 패를 까보게.”
彼張手處此瞳明 저 쪽에서 패를 깔 적 이 쪽 눈동자 커지네.

 

 

6. ()의 실상: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일상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4 십구일(十九日)

荏苒芳華事 猶殘小圃春 고운 꽃 핀 봄날 풍경 사라지는데 작은 밭에 봄이 아직 남아있구나.
愁中紅日駐 睡起綠陰新 시름할 땐 붉은 태양 꼼짝 안더니 자고 나니 녹음이 싱그럽구나.
樊竹通雞逕 蔬花化蝶身 대밭엔 닭이 다녀 길이 생겼고 배추꽃엔 나비가 알을 붙였네.
靜看機出入 忘却我爲人 고요 속에 천기(天機)의 출입을 보다가 내 자신이 사람인 줄도 잊게 되었네.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 7 월야금운(月夜琴韻)

夜冷霜生竹 樓虗月上琴 밤이 차서 서리가 대나무에 엉기고 누대는 비어 달만 거문고 위로 떠오르는데
泠然廣灘水 流入大餘音 차가운 광탄의 물 대여음(大餘音)으로 흘러드누나.

 

 

이병연(李秉淵)사천시초(桂川詩抄)권상(卷上) 화원(花園)

 

1

宛轉幽禽囀 窺簾去復迴 예쁜 새 요란하게 지저귀면서 주렴을 쳐다보며 날아갔다 날아오네.
重重勤報說 屋角杏花開 자꾸자꾸 부지런히 말을 전하니 집 모퉁이 살구꽃이 피었나 보다.

 

3

紅杏臨池發 池中寫紙霞 붉은 살구꽃 못가에 피어나니 못에는 고운 노을 그려져 있네.
幽人携稚子 指與倒看花 숨어 사는 사람은 아이 손을 붙잡고 손으로 가리키며 비친 꽃을 바라보네.

 

4

辛夷杜鵑落 縞李碧桃開 개나리 진달래 지고 난 뒤에 하얀 배꽃 하얀 도화(桃花) 피어났구나.
我是花盟主 朝朝點檢來 나는야 꽃동산의 맹주(盟主)라 아침마다 점검하려 여기 오노라.

 

5

白白紅紅艷 春光誰淺深 희고 붉은 고운 꽃들 봄 경치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쁘랴.
詩人妄題品 傷我化翁心 시인이 망령되이 품제(品題)해서 조화옹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

 

 

김시민(金時敏) 동포집(東圃集)6 야반수각(夜半睡覺)

肺病冬常苦 宵寒未御盃 폐병은 겨울이면 늘 심해지니 차가운 밤 술잔도 들지 못하네.
已知盈尺雪 先念在龕梅 한 자 넘게 눈이 온 걸 알자마자 생각이 감실 매화로 먼저 간다네.
櫪馬蹄頻鼓 窓童鼾卽雷 마구간의 말발굽 자주 또각거리고 창가 아이 코골이는 천둥 같은데
心明眼故闔 點檢一生來 심지 밝히고 낡은 문짝에 눈을 붙인 채 한 생명 예 왔는지 살펴본다네

 

 

김창업(金昌業) 노가재집(老稼齋集)2 ()

一本大如股 其種來燕市 한 포기가 넓적다리만큼 큰데 그 종자가 중국 시장에서 온 것.
濯濯靑玉莖 經齒忽無滓 깨끗하게 푸른 옥 같은 줄기는 이로 씹으면 앙금도 없다네.

 

 

7. ()의 실상: 의 울림

 

 

홍세태(洪世泰) 유하집(柳下集)2 술애(述哀)

 

1

自我罹窮阨 生趣若枯木 나는 궁액(窮阨)에 빠진 뒤로 생의 흥취는 말라 죽은 나무 같았지만
賴爾得開口 聊以慰心曲 그래도 네가 있어 입을 열었고 늘 서글픈 마음을 위로 받았다.
嗟汝今已矣 令我日幽獨 ! 네가 떠나간 지금 나의 하루하루는 더욱 고독해져
入室如有聞 出門如有矚 집에 들면 어디선가 네 목소리 들리는 듯 문 나서면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너를 찾게 된다.
觸物每抽思,如繭絲在腹 무엇을 마주해도 늘 뽑혀 나오는 네 생각 마치 뱃속 가득 채워진 고치실 같은데
哀彼一抔士 魂骨寄山足 서글퍼라! 저 한 줌의 흙으로 네 넋과 뼈를 산발치에 묻었구나.
平生不我遠 今夜與誰宿 평생에 나를 멀리 떠난 적 없었는데 오늘 밤은 누구랑 함께 자느냐?
空留絕筆書 婉孌當面目 부질없이 절필(絶筆)의 글 남겼는데 예쁜 네 얼굴이며 눈동자가 아른거리네.
開箱不忍視 但有淚相續 상자를 열어도 차마 볼 수 가 없어 다만 눈물만 줄줄 흘릴 뿐이지만
冥漠九原下 爾豈間我哭 까마득한 저 구원(九原)의 아래에서 네 어찌 내 곡소리 들을 수 있으랴!

 

 

홍세태(洪世泰) 유하집(柳下集)2 유감(有感)

昔與隣兒戲 隣兒今獨來 얼마 전엔 이웃 아이와 함께 놀았는데 오늘은 이웃 아이만 홀로 왔구나.
東風芳草色 忽復滿池臺 봄바람이 곱디고운 풀빛으로 어느새 못가 누대 뒤덮었는데.

 

 

홍중성(洪重聖) 운와집(芸窩集)2 곡묵아(哭墨兒)

作人如汝者 今世鮮其匹 사람이 되어 너 같은 이 금세엔 짝할 이 드물었단다.
眉眸細如畫 肌肉瑩勝雪 얼굴은 그린 듯이 예쁘고 피부는 눈보다 더 뽀얬는데
學語又學步 婉孌戲我膝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워서는 내 무릎에 앉아 얌전히 노니
見者無不愛 如睹瑞世物 보는 이마다 다들 사랑스럽다면서 이 세상 보물처럼 보았단다.
珊珊步出來 手弄床頭筆 아장아장 걸어 나와 책상 위 분들을 만지작거리다
時復散棊子 或又亂書帙 때로는 또 바둑돌을 흩어버리고 이따금 또 책들을 어지럽혀도
愛極任爾爲 不忍少嗔喝 얼마나 예쁘던지 네 하는 대로 둘 뿐 차마 성내며 꾸짖을 수 없었단다.
今焉那復得 如寶手中失 이제 어찌하면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치 손에 있던 보물을 잃은 것만 같아
勿使眼中物 依舊置我室 눈앞의 물건들마저 전처럼 두지 못하겠구나.

 

 

권섭(權燮) 옥소고(玉所稿)』 「() 13

병자년 1227, 어린 손자 신응(信應)의 아들 구동(九同)이 병도 없이 죽었으니 참담하고 애통한지고, 아이가 태어남에 풍모(豊貌)는 준위(雋偉)하고 영재(英才)는 경절(警絶)하여 말도 하기 전에 글자를 알았고, 다박머리 늘어져선 독서를 좋아하여 손에서는 붓을 멈추지 않았으며 입으로는 송독을 그치지 않았다. 엉엉 울다가도 부르면 곧 순응하고 밥상을 차릴 때면 물러나 앉아내려주길 기다렸으며 이따금 시좌(侍坐)하는 곁으로 와서는 명이 없으면 물러가지 않았다. 나의 각별한 사랑이 여타 자손과는 달랐건만, 지금 그 아이가 죽었도다. ! 나약한 뭇 손들로는 한 구석도 채울 수 없구나. 유독 네 명의 손이 있어 기대가 적지 않았는데 임신년에 시응(時應)이가 스물두 살로 죽었고 계유년엔 을경(乙慶)이가 열아홉 살로, 현남(玄男)이가 아홉 살로 죽었으며 지금 구동(九同)이가 다섯 살로 죽었다. 이 모두가 나의 액운이 아손(兒孫)들에 미쳐 이리 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이 몸뚱이 진즉 죽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원통함을 멈출 수 없어 이에 시 한 수를 쓴다.

丙子臘月卄七日, 小孫信應之子九同不病而死, 慘矣痛惜. 兒之生, 豊貌雋偉, 英才警絶, 未語而知書字, 垂髫而喜讀書, 手不停筆, 口不離誦, 啼哭時, 呼之則卽應; 設飯時, 退坐而待賜. 時時出來侍坐傍側, 不命則不退, 我甚愛憐異於他孫, 今其死矣. 嗚呼! 衆孱不足以滿隅. 獨有四孫, 期待不少, 壬申時應二十二而死, 癸酉乙慶十九而死, 玄男初九而死, 今又九同初五而死, 此皆我厄運移及於兒孫如此耶! 只怨此身之未卽死, 寃呼不已, 題此一詩.

 

是老終何命 奇孫箇箇埋 이 늙은이 끝내 무슨 운명인가? 기특한 자손들을 하나하나 묻었으니
寒風未死淚 揮洒夕陽階 찬바람 맞으며 죽지 못한 이 눈물을 노을 지는 섬돌에서 흩뿌린다네.

 

 

김시민(金時敏) 동포집(東圃集)4 만손자행주래용전운(晩孫自幸州來用前韻)

此老從今至樂存 이 늙은이 이제부턴 지극한 즐거움만 남았구려.”
回頭爲向室人言 고개 돌려 아내에게 말을 건넸네.
家無甔石休愁歎 집안에 양식 없어도 시름겨운 한숨소리 그치게 된 건
膝右男孫左女孫 오른 무릎에 손자가, 왼 무릎에 손녀가 있어서라네.

 

 

김시보(金時保) 모주집(茅洲集)8 우중만장여행(雨中挽長女行)

不有田家雨 行人得久淹 농가에 비가 내리지 않았던들 갈 사람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었겠나.
喜逢子孫醉 睡過卯時甘 딸아이 만나서 기뻐 취하고 묘시가 넘도록 달게 잤더니
川漾萍樓埭 風廻花撲簾 냇물 불어 개구리밥 보에까지 붙고 바람 불어 꽃잎은 주렴을 치는구나.
吾詩殊未就 莫謾整歸驂 내 시가 아직 안 되었다 자꾸만 타고 갈 말 챙기지 말렴.

 

 

이하곤(李夏坤) 두타초(頭陀草)8 사가(思家)

風急天將黑 山寒路自斜 바람 거세고 날도 어둑해지려는데 산은 춥고 길은 자꾸만 오르막이라.
來時愁雪片 歸日對梅花 올 적엔 눈송이를 걱정했는데 돌아가면 매화를 마주하겠네.
臘盡還爲客 年衰漸戀家 섣달이 다 되도록 아직도 나그네 신세인데,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집 생각이 간절하네.
遙憐少兒子 新學喚爺爺 저 멀리서 어여쁜 우리 꼬맹이 새로 배워 아빠 아빠불러대겠지.

 

 

이병연(李秉淵)사천시선비(桂川詩選批)권하(卷下) 견사매(見舍妹)

官栢蒼蒼妻 伊誰上任新 관가의 잣나무 짙푸른 속에 저 누가 새로이 부임 하였나? 사 부임.
吾家小娘子 今日縣夫人 우리 집 어린 낭자가 오늘은 현감부인(縣監夫人) 되었구나.
兒女携來飽 民筵左右陳 아녀자들 데리고 와 음식을 준비하고 좌우에 병풍과 자리 펼쳐 두었네.
見余言欵欵 多及昔年貧 나를 보며 곡진하게 말을 하는데 자주 지난날의 가난함을 언급하네.

 

 

이병연(李秉淵)사천시선비(桂川詩選批)권하(卷下) 차사반치옹(次謝半癡翁)

我是全癡君半癡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五更呼喚句成時 오경에도 시를 지어 그댈 부르네,
待君不至重尋夢 기다려도 오지 않아 꿈에까지 있건만
君到吟詩我不知 그대 와서 읊조릴 적 나는 일시 못했다.

 

 

김부현(金富賢) 항동고(巷東稿)』 「북촌로상(北村路上)

袒褐隨秋色 蕭然白髮長 웃통 벗고 기을빛을 따라나서니 엉성한 백발이 흩날리는데
看雲歌且笑 行路謂余狂 구름 보고 노래하다 웃음 지으니 행인이 나를 보고 미쳤다 하네.

 

 

 

 

인용

강의 / 후기

서사한시 / 한시미학 / 한국한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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