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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 5. 시(詩)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본문

연재/배움과 삶

조선후기 한시 쇄신의 방향과 주자학 - 5. 시(詩)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건방진방랑자 2021. 12. 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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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 실상: 산수에의 밀착과 형신(形神)을 통한 진면목의 묘파(描破)

 

 

김창흡(金昌翕)구룡연(九龍淵)을 통해 본 특징

다음은 김창흡(金昌翕) 삼연집(三淵集)2구룡연(九龍淵)이란 연작시 몇 편을 보자.

 

2

二淵懸瓢似 瀑流喧吐呑 둘째 못은 달아 맨 바가지던가 멍멍하게 폭포 물을 삼켰다 뱉네.
誰知呀然小 逈洞搏桑根 누가 알랴? 우묵하게 고인 작은 물이 멀리 통해 부상의 뿌리에까지 맺힐 줄.

 

5

五淵急回軋 南岸側成釜 다섯째 못 급히 돌며 콸콸 대는데 남쪽 언덕 비스듬하여 솥이 되었네.
馳波迭後先 赴隘徘徊舞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달리다가 좁은 곳에선 빙빙 돌며 춤추는 듯.

 

6

六淵美如璧 清涵石紋粹 여섯째 못 아름답기 구슬 같은데 맑게 씻긴 바위 무늬 티도 없구나.
竦髮注眸深 高雲正泛翠 머리 선 채 못 깊은 곳 눈을 붙이니 높은 구름 참으로 비취 위에 떠있네.

 

8

八淵淺堪漱 潛龍易出身 여덟째 못 얕아서 양치질할 만하니 숨은 용도 쉬 몸을 드러내겠네.
日靜玩澹瀩 眞爲遭睡人 날이 고요해 못가에서 즐기다 보면 진실로 잠든 용을 만난 사람이 될 듯.

 

 

연작시는 대상의 진면목을 다양한 측면에서 관조하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는데, 이러한 장점은 산수와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산수의 진면목을 담아내려 했던 백악시단의 시적 지향과 잘 맞는다. 나아가 연작시는 형상화에 있어 형사(形似)와 심사(心似)를 보다 자유롭게 선택하여 조직할 수 있게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전대의 산수시와 비교할 때 백악시단이 연작 산수시를 상대적으로 많이 창작한 까닭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백악시단 문인들의 산수를 대하는 태도

1) 김창협(金昌協)농암집(農巖集)21 유이이생동유시서(兪李二生東游詩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조물주에게는 완전한 공력이 없고 사람의 재주 역시 치우침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산수가 모두 빼어날 수 없고 사람의 시가(詩歌) 또한 오묘한 것이 드물다. 이 때문에 평범한 경치에서 기발한 말을 구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조잘대는 소리를 가지고서 아름다운 경관을 묘사하려 들면 조금도 닮지 못할 것이다.

然造化無全功, 人才有偏蔽, 故宇內之爲山水者, 不能皆勝, 而人之於詩歌, 亦鮮造妙. 是以踐常境而求奇雋之語, 則無助, 操哇音而寫瑰麗之觀, 則未肖.

 

 

2) 김창흡(金昌翕)삼연집습유(三淵集拾遺)1 경차가군운(敬次家君韻)

上山危險不須論 산을 오르는 데 위험은 논하지 말라!
纔入氷壺可濯魂 신선경에 들자마자 혼을 씻을 만할 테니

 

 

3) 권섭(權燮)옥소고(玉所稿)』 「유행록(遊行錄)3권의 대남록(臺南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년에 금강산에 들어갔을 때 이르는 곳마다 위험한 곳을 딛고 올랐는데, 그곳에는 반드시 기이한 볼거리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미친 듯이 정신을 빼앗겨 거꾸러지는 것을 후회하지 않고 말하길, ‘늙은이가 일흔에 죽어 이 사이에 뼈를 묻어둘 수 있다면 다행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昨年金剛之入, 到處躡危, 必有奇觀. 故不悔狂而倒曰: ‘老七十而死, 藏骨於此中間幸耳.

 

 

4) 이병연(李秉淵)보덕암(普德庵)

落日行臨潭水頭 해질녘 걷다가 맑은 못가 이르니
蜿蜒銅柱影中流 구리기둥 그림자 물속에 구불구불
老龍嘘送虹千尺 늙은 용은 천척(千尺)의 무지개를 뿜어서
扶起搖搖白玉樓 흔들흔들 백옥루를 붙들고 있네. 사천시초(槎川詩抄)

 

 

5) 두타초(頭陀草)14 동유록(東遊錄)

시내 왼쪽의 좁은 길을 따라 보덕굴(普德窟)로 오르는데 돌비탈길이 구불거리는 것이 거의 수백 보()이다. 비탈길이 다하면 다시 돌층계가 있는데 그 층계를 따라 다시 수십 보()를 내려가면 비로소 굴에 이를 수 있다. 가운데에는 사대사상(沙大士像)을 봉안하였고 위는 이층집으로 덮었는데 마치 제비둥지 같다. 앞 기둥은 아래로 허공을 임하고 있는데 수십 척 구리기둥으로 받치고 또 쇠사슬로 얽어매었다. 승려 혜관(慧觀)이 마루판을 들어내고 나를 이끌어 내려다보게 하였는데 어지럽고 떨려서 오래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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