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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3. 꿈[夢]으로부터의 깨어남[覺], 자아의 상이한 형태 본문

고전/장자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Ⅵ. 꿈과 깨어남 - 3. 꿈[夢]으로부터의 깨어남[覺], 자아의 상이한 형태

건방진방랑자 2021. 7. 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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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아의 상이한 형태

 

 

얼마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최소 6개월 이상은 가끔 잊는다고 한다. 아내를 사고로 잃은 어떤 남자를 생각해보자. 그는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안방 문을 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찾곤 한다. 그러다가 방에 걸린 아내의 영정을 보고서야 그는 아내가 죽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을까? 아내에 대한 지고한 사랑 때문인가? 아니다. 이것은 이 남자가 자신의 자기의식을 동일하게 유지하려는 무의식적인 의지 때문이다. 아내의 죽음은 사유의 연속성, 인칭적 자아의 동일성을 부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사유는 계속 관성(기억ㆍ지각ㆍ예기)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착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안방 문을 열 때 이 사람은 두 가지 현재에 살게 된다. 하나는 사유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현재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당분간 아내가 자신을 안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또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존재 현실 속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예기치 못한 타자와 사건의 도래는 기억ㆍ지각 예기라는 사유의 연속성을 파괴해버린다. 그래서 기억은 기억대로, 지각은 지각대로, 예기는 예기대로 산산이 흩어져 이 남자 주변에 머물게 된다. 어떤 때는 문득 아내와 차를 마시던 기억이 떠오르고, 어느 때는 문득 길을 걷다가 옆에 아내가 있는 듯이 지각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내와 여행을 가려던 약속을 떠올리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이 남자는 존재 현재로 내던져진다. 희미한 미소와 한 줄기의 눈물이 교차한다. 이런 분열과 그로부터 생기는 감정의 동요는 결국 자아의 인칭적 동일성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자아의 인칭적 동일성, 나는 나다라는 자기의식적 동일성은 사유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근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압도하는 사건과 타자의 도래는 사람을 일순간 멍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쟁으로 자신의 일가족을 잃게 된 이라크의 어느 가장의 멍한 얼굴을 기억해 보라. 우리는 이 이라크 남자의 얼굴에서 인칭적 동일성이 와해되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유 현재와 존재 현재가 함축하는 더 중요한 점은 두 경우에 자아가 상이한 형태를 띠게 된다는 데 있다. 사유 현재에서는 나는 나다라는 인칭성이 유지된다면, 존재 현재에서는 나는 나다라는 인칭성이 파괴되고 비인칭성이 도래한다는 점이다. 물론 언젠가 아내를 잃은 그 남자도, 일가족을 잃은 이라크의 그 가장도 나는 나다라는 인칭적 동일성을 또 다시 구성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다시 인칭적 동일성을 구성하지 못한다면, 이 두 사람은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심하게는 자살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롭게 구성된 이들의 인칭적 동일성은 아내나 자신의 가족의 죽음 이전과 더 이상 같을 수는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다음과 같이 말해도 좋을 것이다. 즉 아내의 죽음으로 그 남자도 죽은 것이고, 자신의 일가족의 몰살로 그 이라크 가장도 죽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이 계속 살아간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자신으로, 전혀 다른 인칭적 동일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결국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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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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