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포정 이야기의 중층구조
「양생주(養生主)」편을 시작하는 동시에 이 편을 상징하는 포정 이야기는 삶을 기르는 방법을 상징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포정의 소 잡는 이야기를 듣고 문혜군은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훌륭하다!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것[養生]이 무엇인지를 알았다[善哉! 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문혜군이 어디서 양생의 지혜를 얻었을까? 그는 바로 수천 마리의 소들을 잘라도 아직도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롭게 자신을 보존하고 있는 칼에서 그 지혜를 얻었던 것이다. 왕으로서의 문혜군은 바깥으로는 다른 호전적인 제후국들에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어찌 이런 무수한 타자들이 수천 마리의 소들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혜군은 바로 포정으로부터 이런 타자들과 소통해서 자신의 삶을 보존하는 방법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는 더 생각할 볼 문제가 있다.
문혜군은 포정으로부터 삶을 기르는 방법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원문으로부터 우리는 이런 의문을 해결할 단서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문혜군은 포정의 칼에 너무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문혜군은 포정과 관련된 주체 변형의 측면을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혜군은 ‘포정 이야기’가 함축하는 의미 중 오직 절반만을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포정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시적인 층위에서 포정이라고 불릴 어떤 사람이 소와 조우함으로써 포정이 될 수 있다는 주체 변형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면 미시적 차원에서는 포정의 칼이 소의 몸과 조우함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전자가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불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변화와 불변은 동중지정(動中之靜)ㆍ정중지동(靜中之動)이라는 상투적인 표어처럼 포정 이야기 속에 말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이야기로부터 주목해야 할 것은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칼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사태란 어떤 사람이 포정이라는 훌륭한 도살꾼이 된 사태와 동시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문혜군이 포정 이야기의 이런 중층 구조를 파악했다면, 그가 폭력적인 타자와 조우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그는 자신이 왕이라는 고착된 인칭적 마음을 버리고, 유동적인 비인칭적 마음을 회복해서 타자의 목소리와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주체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어쩌면 그는 자신의 동일성을 규정하는 왕이라는 자리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마음을 확보해서 타자에 민감하게 조우한다고 하더라도 문혜군이라고 한때 불렸던 사람이 완전하게 자신의 삶을 보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마치 포정이 매번 ‘뼈와 살이 엉킨 곳[族]’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듯이, 그도 다시 전혀 예기치 못한 타자와 다시 조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포정의 칼이 상징하고 있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왜냐하면 주체를 상징하는 포정과 타자를 상징하는 소 사이의 관계는 결국 포정의 칼과 소의 몸 사이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포정 이야기는 중층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시적인 층위에서 포정이 소와 조우함으로써 포정이 될 수 있다는 주체 변형의 이야기, 주체 변화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미시적 차원에서 포정의 칼이 소의 몸과 조우함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는 의미, 즉 불변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수천 마리의 소를 잘랐음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망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이제 포정이 비인칭적인 마음을 회복했기 때문에 감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마음으로 소의 뼈와 뼈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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