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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1.03.26 - 신나는 임용고시반 입실기 본문

건빵/일상의 삶

21.03.26 - 신나는 임용고시반 입실기

건방진방랑자 2021. 3. 26.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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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임용고시반 입실기

 

 

2018년에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전주대 진리관에 개설된 임용고시반에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2018년엔 행복한 임고반 입성이란 제목으로, 2019년엔 순조로운 임고반 입성기란 제목으로, 2020년엔 좌충우돌 임고반 입성기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 오랜만에 학교에 올라간다. 싱그러운 봄이 내려왔다.

 

 

 

임용공부를 할 거면 임고반에서

 

임용시험을 다시 시작하기 전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하니 서울에 남아서 공부할까 전주로 내려가서 공부할까 고민이 되긴 했다. 지방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임용시험을 준비하러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오기도 하는 마당에 새로 공부를 시작하느니만큼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예전에 임용공부를 해봤다 하더라도 그땐 노량진에 한 번도 올라오지 않고 전주에서만 한 것이었으니 변화를 추구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고민하긴 했지만 공부공간을 고려해보면 서울보단 전주로 자꾸 맘이 기울더라. 서울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주로 학원에서 공부할 것이며 나머지 시간엔 해공도서관이나 성내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 해공도서관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할 때 공부를 해봤지만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고 사람들도 서로를 배려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는 곳이지만 오랜 시간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선 전주대 진리관에 있는 임용고시반이 그리워지더라. 도서관은 3시간 단위로 내 자리를 계속 체크해야 하지만 임고반은 나만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고 도서관은 여러 책들을 가지고 사물함에 비치를 해야 하지만 임고반엔 나만의 책장이 있어 모든 책들을 다 가져다 놔도 되기 때문이다. 전주로 임용공부를 하기 위해 내려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임고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하나에 포함된다.

 

 

▲ 2018년에 왔을 때만해도 공용스쿠터는 없었는데 작년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아이들은 건물까지 이녀석들을 타고 다닌다.

 

 

 

코로나의 여파와 그럼에도 되찾은 일상

 

작년엔 코로나로 인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초유의 사태들이 일어났듯이 임고반도 마찬가지였다. 3월 중순쯤에 입실하는 전통을 깨고 계속 연기되더니 63일에서야 입실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두 번의 OT 때 조교는 앞에 서서 임고반의 규칙들을 자세히 설명하며 원칙을 누누이 강조했었는데 이때만큼은 그런 규칙들은 전혀 설명하지 않은 채 왠만하면 집에서 공부하여 임고반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만큼 2020년의 세계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날 정도로 모든 게 완전히 뒤바뀐 세상이었던 것이고 그 여파는 당연히 임고반에도 미쳤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여파가 과연 올해에도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불행하게도 2월까지만 해도 그 여파는 올해까지도 지속될 전망이었다. 그에 따라 임고반에서 ‘1학기 중엔 반원을 모집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내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작년과 달랐던 것은 작년엔 코로나를 처음 경험해보는 것인데 반해 올핸 1년 내내 경험해본 경험치도 사회적으로 누적되었고 백신까지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라 확산세는 확실히 꺾였으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으며 그건 임고반도 마찬가지였다. 312일쯤에 전주대 사범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을 때 모집 중이란 공지를 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나 또한 부리나케 바로 신청서를 냈기 때문이다.

 

 

▲ 1학기엔 모집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모집한다니 다행이다.

 

 

 

예년과 같은 장소에 진행되었지만 바뀐 OT

 

올핸 예년처럼 아침 8시에 교수연구동 8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되었다. 작년엔 저녁 630분에 시작됐고 그것도 학생회관 3층 대강당으로 장소가 변경되기까지 했었는데 다시 예전처럼 바뀌어서 정말 기분이 좋더라.

부푼 기대감을 안고 아침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어느덧 다가온 봄기운에 가로수에선 꽃망울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목련은 어느덧 한아름 피어올랐고 개나리도 조금씩 노란색이 짙어지고 있다. 살랑살랑 봄기운을 느끼며 진리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낯익은 듯 낯선 느낌이었다. 무려 3년 동안 이 길을 다녔으면서도 이렇듯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내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삶을 부여잡고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이의 모습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 서서히 동이 터오는 전주대의 아침.

 

 

세미나실에 들어가니 조교들만 있었다. 가장 먼저 올 생각은 없었지만 어찌 하다보니 1등으로 온 셈이 됐다. 명부에 사인을 하고 한바탕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다시 세미나실에서 OT를 한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그것도 아침 8시에 모인다는 사실이 신났기 때문이다. 85분쯤 되니 거의 모든 임고반원들이 모였고 OT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올핸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다. 위에서부터 쭉 이야기했다시피 코로나로 인해 바뀐 부분도 있지만 임고반 담당 조교와 교수의 변경에 따라 바뀐 부분도 있다. 여자 조교는 처음이라 어색한 듯 시작을 하긴 했지만 중간중간 농담까지 섞어가며 능수능란하게 OT를 진행했다. 그리고 처음 임고반을 맡는 만큼이나 임고반의 규칙이 잘 정착되며 제대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한껏 담겨 있었다. 또한 정말 오랜만에 사범대학장이 되어 임고반을 책임지게 된 서재복 교수 또한 과거에 12시까지 운영되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도 모두 나와야 했던 시기들을 언급하며 그런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줄 걸 주문했다. 그건 그만큼 임고반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열정이 있다는 것이 좋게 보였다.

 

 

▲ 반갑지만 떠나고 싶었던 OT 장소. 이렇게 다시 오게 되다.

 

 

추억의 자리에 내가 앉다

 

하지만 정작 OT에 참여하고 있는 임고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OT에서 흘러 다니는 말들이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자리는 어딜까?’하는 것이기에 OT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각 반으로 올라가 빨리 자리를 정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과연 올핸 어떻게 자리를 추첨할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올핸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한다고 하더라. 이건 아마도 조교가 바뀐 만큼 방법 또한 달라진 것이리라. 바뀐 방법이란 각 방으로 돌아가 방장에 의해 자리가 추첨되는 형식이 아닌 조교가 이미 준비해온 자리가 적힌 번호표를 그 자리에서 바로 뽑는 형식으로 말이다. 어쩐지 시작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임고반 번호에 맞게 자리에 앉도록 유도하더라니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 그리한 거였다. 501호에 지정된 사람들은 앞의 세 줄에 앉았는데 저 멀리서부터 뽑게 되었다. 이건 마치 임용 2차 시험을 볼 때 순서를 정하기 위해 관리번호를 뽑는 상황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 모처럼 간식까지 줬다.

 

 

올핸 코로나로 인해 가운데 자리가 비게 되었고 양 끝자리만 배정이 되었다. 501A반의 경우 수용인원은 30명인데 20명만 입실하게 된 것이다. 밀집도를 낮춰 코로나가 전염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으로 인해 가장 기피하는 가운데 자리는 아예 걸릴 일이 없게 됐으니 어떤 자리가 걸리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막상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전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내 눈에 보인 번호표를 뽑았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뽑았기에 별 기대 없이 번호표를 펴봤는데 그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뽑은 13번 자리는 창가 자리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2019년에 앉았던 7번 자리의 바로 뒷자리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 13번에 앉은 국교과 학생과 블라인드 신경전을 벌이기도 해서 생생히 기억에 남았던 곳이었는데 이젠 그 자리에 내가 앉게 되었다. 이래서 삶이란 반복된다고 하는가 보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말이다.

이렇듯 신나게 자리도 배정 받았고 맘껏 공부할 수 있다는 열정 그대로 21년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4년 차 임용공부에 접어든 지금, 다시 전주로 내려올 때의 심정을 떠올려본다. 징하게 한문공부가 하고 싶어 시작했던 공부는 3년 동안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두 번이나 최종에서 떨어지는 비극을 맛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최선을 다한 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좋다, 지금처럼 한 걸음씩 나의 길을 만들며 이 열정으로 또 다시 그려보자. 임고반 501A 13번 자리에서 만들어갈 올 한해의 시간들이 그래서 기대된다.

 

 

▲ 1년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인용

사진

지도

21년 글

임용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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