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패와 성공의 이분법, 그 너머
예전에 임용시험을 공부하던 때엔 고민되던 게 있었다. 임용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합격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합격하지 못하면 그간에 했던 공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게 되며, 치열하게 공부했다손 치더라도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임용 공부란 임용시험에 나올 것 위주로 치밀하게 공부하여 시험에서 합격이란 결과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두 가지 공부 방식
이렇게도 자명한 목표를 지닌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어떤 고민을 했다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임용시험에 나올 것 위주로 공부할 것인가, 공부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찾아다니는 공부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전자의 공부야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사서(四書: 대학, 중용, 논어, 맹자)로 기본기를 닦은 다음엔 임용시험 범위표를 참고하여 각 영역별로 내용을 정리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공부해야 할 양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꼭 여기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학습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생각 속에선 장자를 좀 더 본다거나, 한시의 진시운동(眞詩運動)에 대해 파헤쳐 본다거나 하는 생각들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으로 치부될 뿐이다.
이에 반해 후자의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겐 ‘꼭 시험에 나올 것들만 공부해야 하는 거야?’라는 불만이 있으며 그것 외에 자신이 관심 갖는 온갖 분야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니 『십팔사략(十八史略)』에 꽂혔으면 중국역사의 흐름을 공부하는 것이며, 『열하일기(熱河日記)』에 꽂혔으면 박지원이 연행(燕行)하던 그 길을 따라 함께 여행을 하듯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때 당연히 ‘이게 얼마나 임용시험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흥미가 생겼기에, 공부하고 싶기에 할 뿐인 것이다.
예전에 공부할 때 이 두 가지 공부법에 대해 고민했던 까닭은 이성적으론 전자의 방식이 합격을 위해선 당연히 맞는 방식이라 생각함에도 현실적으론 후자의 방식대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공부하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누비며 삐딱선(?)을 타고 있었고 그렇게 모르는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를 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애석하게도 5번이나 임용 시험을 봤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냉담한 현실의 목도 뿐이었다.
완전한 실패와 다양한 경험 사이
임용 공부의 결과는 ‘완전한 실패’라는 성적표로 주어졌고 5년 동안 하던 임용공부는 그즈음 그만 두게 되었다. 인생이 참 맘 같지 않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완전한 실패’가 실패이거나 헛짓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방면의 공부를 축적해왔다고 생각했으며 그게 어느 식으론 활용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발언이니 ‘너무 과거를 미화하는 거 아냐?’라고나 하려나? 당연히 임용시험 공부를 그만 두던 당시엔 온갖 불안증에 시달리기도 했고, ‘이러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하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하던 일을 그만 둬야 했기에 겪어야만 하는 감정일 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감정이었다. 그러니 그 순간을 잘 버티어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다닐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엔 대안학교에 취직을 하며 그간 해왔던 다방면의 공부들을 맘껏 풀어낼 수 있었다. 종횡무진 공부했던 것들, 그리고 임용시험 중간에 무작정 떠난 국토종단이란 경험이 막상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할 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더라. 이래서 삶은 무지 재밌다는 것이다. 실패나 성공의 이분법을 떠나 삶을 관조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경험이든, 어떤 식의 공부든 삶의 국면에 요긴하게 쓰일 때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생각을 떠나 그 당시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맘껏 해볼 일이다. 이럴 때마다 국토종단 때 강원도 고성으로 가던 길에 비를 쫄딱 맞고 새앙쥐 꼴로 걷다가 히치하이킹을 하고 트럭에 탔고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나의 말을 듣던 아저씨가 했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인생이란 긴 터널 가운데 그런 기간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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