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따라 벗을 따라 길을 가다
며칠 전에 한 후배와 통화를 하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여 다닐 때도 그랬지만 한문교육과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엔 막상 한문공부엔 뜻이 별로 없지만 성적에 따라 왔다던지, 사범대라는 간판이 맘에 들어 왔다던지, 20살 때엔 대학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따라 왔다던지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물론 이건 우리 대학교에 한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란 ‘자신이 좋아하던 공부를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을 갖기 위해, 대학교 간판으로 취업에 유리하기 위해 진학’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할 수 있다.
한문 공부가 재밌어요
이런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후배에게서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한문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어찌저찌 한문교육과에 왔으니 임용시험을 준비한다는 그런 투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후배는 그와 같은 상식(?)을 단번에 깨뜨리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은 한문 공부가 재밌고 한문공부가 좋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렇게 한문만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에잇~ 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럴 거면 입에 침이나 바르고 얘기해야지’라고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영어나 수학 같이 세상에 쓰임새가 많은 학문의 경우 이 후배가 했던 말과 같이 신나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건 공부한 만큼 세상에 쓰임새도 많기 때문이며 자신의 가치도 상승하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쉽고 공부의 맛도 순간순간 느끼기도 수월하다. 그에 반해 한문은 지금 사회에선 사장화(死藏化)된 학문이기에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손 치더라도 한문교사가 되거나 번역자가 아니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공부를 신나게 하기도 쉽지 않고 이걸 통해 나의 자아실현을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즉, 한문을 공부하며 현실적인 욕망을 추구하긴 힘들며 그렇기 때문에 한문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한문공부를 하는 게 좋을 순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후배의 말속에선 흔들림이나 주저함이 없는 단단한 마음이 읽혀졌다. 드라마 미생 1화에선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자격증 하나도 따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닌 장그래의 사수가 된 김동식 대리는 그런 한심한 상황을 알고서 “아주 보기 드문 청년이네~~”라는 말로 비꼬았다. 이 드라마에선 그 의미가 매우 나쁜 의미로 쓰였지만, 저 말은 바로 이런 후배와 같은 사람을 대했을 때 써야 하는 말이다. 한문이 좋아 한문교육과에 왔고 그 누구보다도 신나게 공부하고 있는 아주 보기 드문 청년의 사례이니 말이다.
꺼져가던 불씨에 불어온 한가닥 바람
이런 보기 드문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 한 구석이 마구 뛰어왔다. 스무살에 전주대 한문교육과에 들어왔을 때의 나 또한 한문이 좋아서 이 길로 왔기 때문이고 연거푸 임용에 떨어지며 2010년에 한문공부를 그만뒀다가 무려 8년 만에 다시 한문공부를 시작하게 됐을 때의 나 또한 한문이 좋아 돌고 돌았지만 이 길로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그런 들뜬 마음들은 무뎌졌고 연거푸 시험에서 떨어지며 심지만 겨우 타고 있던 열정의 촛불은 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단재학교에 다닐 때 아이들에게 “실패야 말로 축복이니 실패했다고 주눅 들지 말고 오히려 실패하지도 못할 정도로 도전하지 않는 것에 맘 아파하자”라고 누누이 말했지만 막상 내가 닥쳐보니 그건 말처럼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실패를 통해 고찰하고 나아가면 더 큰 성취를 분명히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의 쓰라림,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막막함을 버텨내기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실패가 누적되면 될수록 존재는 위축되고 의욕은 사라진다. 이렇게 처음의 의욕이나 희망 따위는 서서히 꺼져 가고 있을 때 후배의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니, 왜 두근거리지 않겠는가. ‘맞다, 저 말이야말로 내가 다시 이 길로 들어설 때 나에게 했던 말이자, 희망이었지’
자신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마구 뽐어내는 그 말 한 마디는 꺼져가던 열정의 불씨를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지금은 어찌 되었든 최종 시험까지 볼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 스터디를 통해 함께 공부할 도반(道伴)들이 있다는 사실이 여느 때에 비하더라도 최상의 조건인 것만은 분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여전히 한문공부가 재밌으며 ‘20년 공부의 성취와 21년 상반기에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란 글을 쓸 정도로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많기만 하다. 그건 곧 아직도 한문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고, 그런 만큼 조금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스터디의 태가 달라지다
이렇게 하나하나 마음을 잡아가고 있을 때 스터디를 한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2018년엔 일면식도 없는 교수님 스터디에 무작정 들어가 청강을 하며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벌써 4년째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작년의 경우엔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도 개강하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고 그에 따라 당연히 스터디 또한 5월에야 시작하게 됐다. 그것도 그나마 김형술 교수가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강의실을 빌려줄 수 없다던 학교를 벗어나 커피숍에서라도 모이며 진행한 끝에 시작된 것이다. 그에 반해 올핸 작년보단 그나마 코로나가 잠시 안정세에 접어들며 대학교도 어느 정도 정상화되어 스터디도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의 스터디엔 크나큰 변화가 생겼다. 그건 다름 아닌 스터디 교수진이 확 바뀐 것이다. 3년 동안은 김형술 교수 혼자서 진행을 하며 교수님이 전해주는 한문공부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 사람의 방향성에 따라 흘러가는 스터디가 아니라 교사가 된 선배들도 교수진으로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스터디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두 명의 교사가 교수진으로 참여했고 2명의 교사가 한 꼭지씩을 책임지게 되며 스터디 형식의 다양화가 모색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과 선배 교사와의 주기적인 만남이 기획되고 그들이 쌓아온 학문의 정수(精髓)를 맛볼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꿈을 지니고 열정을 불살랐던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공부에 대한 열정을 지켜보며 공부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종횡무진 한문 공부
교수님은 한 달에 두 번 스터디를 진행하는데 올해는 작년부터 계속 하고 있었던 서사한시와 『백운소설(白雲小說)』ㆍ『용재총화(慵齋叢話)』와 같은 시 비평집과 몇 종류의 산문을 함께 보는 것으로 커리큘럼이 꾸려졌다. 이렇게 여러 작품을 정하고 함께 보도록 기획한 데엔 당연히 교수님의 열정이 담겨 있다. 함께 만나 공부를 하는 동안엔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보며 원문에 대하는 시각을 점차 넓히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솔직히 한 번 공부를 할 때 너무도 많은 양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대충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과 스터디를 통해 공부의 고양감(高揚感)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기에 수긍하게 되었다.
좋다~ 바로 이처럼 지금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모르는 게 있어도 충분히 물어보고 자문을 구할 도반(道伴)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이만큼 공부를 하기 좋은 여건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부족한 실력 그대로, 한문 공부가 좋아 시작했던 그 마음 그대로 한문공부의 세계에서 도반(道伴)들과 함께 좌충우돌해볼 것이다. 2021년의 한문공부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회차 |
일자 |
강독내용 |
발표 배정 |
비고 |
1 |
4.7(수) |
김근영 |
1. 발표일 2일 전 월요일까지 발표자료 완성하여 담당 교수에게 카톡으로 송부할 것
2. 스터디 참여 인원에게는 단톡방을 활용하여 게시할 것
3. 발표준비를 하면서 ① 서사한시는 전처럼 발표자가 문제를 만들어 제시하고 ② 시화 및 비평 자료는 번역하면서 이해 안 되는 곳 질문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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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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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순 「此君軒記」 |
이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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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수 「潛女歌」 |
강나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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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4.28(수) |
김지원 |
||
김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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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하 「送鄭生來僑讀書牛峽序」 |
김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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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 「寺奴婢」 |
박민규 |
|||
3 |
5.12(수) |
김근영 |
||
이규보 「論詩中微旨略言」 |
김여경 |
|||
이익 「顰笑先生傳」 |
이소라 |
|||
이광려 「良丁母」 |
장운호 |
|||
4 |
5.26(수) |
강나온 |
||
김진환 |
||||
정내교 「金聖基傳」 |
이종환 |
|||
홍양호 「戍卒怨」 |
박소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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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6.9(수) |
홍석주 「原詩」 上 1 |
최영준 |
|
홍석주 「原詩」 上 2 |
김경운 |
|||
오광운 「昭代風謠序」 |
이도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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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僧拔松行」 |
박민규 |
|||
6 |
6.30(수) |
홍석주 「原詩」 中 1 |
이종환 |
|
홍석주 「原詩」 中 2 |
임오규 |
|||
조구명 「病解」 二 |
김여경 |
|||
정약용 「田間紀事 有兒」 |
장운호 |
|||
7 |
7.14(수) |
홍석주 「原詩」 下 1 |
최영준 |
|
홍석주 「原詩」 下 2 |
이종환 |
|||
이천보 「題默窩詩卷後」 |
이소라 |
|||
이학규 「己庚紀事 虎狼」 |
이윤서 |
|||
8 |
7.28(수) |
이재연 |
||
용재총화 2 |
이다영 |
|||
이천보 「自知菴記」 |
김여경 |
|||
이학규 「己庚紀事 北風」 |
임성재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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