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의 재편집을 하며 10년 전의 나를 만나다
다음블로그를 2009년에 열면서 2018년까지 장장 9년을 요긴하게 썼다. 더욱이 여기엔 단재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쓰던 글들부터 단재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한문 공부장으로 활용하며 담았던 글들까지 다채로운 글들이 담겼다.
그러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에 2019년 1월 16일(수)부터는 티스토리로 이적하며 다음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옮기기 시작했고 장장 5개월 간의 이전작업을 거치며 6월 23일(일)에야 주요 공부자료들을 옮길 수 있었다. 지금은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기에 당장 활용해야 하고 필요한 자료만 급선무로 옮긴 것이고 임용자료 외에 강의 후기나 여행 후기 같이 시간은 더 많이 들면서 직접적으로 임용과 관계없는 글들은 시간이 날 때 차차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2019년에 임용 1차 시험이 끝나고 나선 방에 틀어박혀 이런 글들을 이전하기 시작했고 그때 거의 대부분의 글들을 이전 완료했다.
재편집할 엄두를 못낸 이유
이렇게 자질구레하게 ‘블로그 이전(移轉)의 역사’의 역사를 밝히는 이유는 그렇게 블로그의 글들을 이전하며 열정을 불사르면서도 감히 이전할 엄두조차 못 내던 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에서도 넌지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을 이전’했다고 말한 것이고, 확신 가득한 어조로 ‘모든 블로그의 글들을 이전했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바로 2009년 4월 19일부터 5월 23일까지 무려 한 달동안 걸어 목포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갔던 여행기를 담은 국토종단기와 2011년 3월 23일부터 4월 30일까지 뭇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난 이야기를 담은 사람여행기다. 인생 일대 최고의 순간들임에도 감히 손댈 엄두조차 못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이유는 한 달이 넘도록 진행된 여행답게 내용이 방대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카자흐스탄 여행기만 해도 이들 여행기간보다도 짧은 3주간 여행을 갔다 온 기록임에도 무려 81편이나 되는 글로 편집이 되었고 그만큼 많은 공력(功力)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편집하는 동안에는 다른 건 전혀 하지 못하고 이것만 신경 써야 하니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언젠가 시간이 나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옮겨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놔두었다.
▲ 3주간의 첫 해외여행이자 학교 프로젝트였던 카자흐스탄 여행.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째 이유는 국토종단의 경우 벌써 12년이나 지났고 사람여행의 겨우는 벌써 10년이나 지나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게 순식간에 변하는 시대에 무려 10년이나 지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재편집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건 마치 자신의 과거담에 사로잡힌 퇴보로도 보였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새로운 글을 쓰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놔두었던 것이다.
셋째 이유는 두 여행기 모두 2015년 재편집 작업을 했으며 2017년에 국토종단 당시의 사진을 스캔하게 되면서 보강작업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이때 초기의 열정과는 달리 국토종단 여행기의 전반부 끝자락에 해당하는 진천 초평면까지만 편집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왠지 모르게 다시는 손 대고 싶어지지 않기에 그 후로 방치하게 된 것이다.
▲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을 했던 시기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모처럼 찾아온 심심함이 재편집하도록 하다
그러다 올해 임용 2차 시험까지 잘 마치고 결과 발표까지 2주라는 시간이 남았다. 작년만 해도 2차 시험이 끝나고는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그런 식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 싫었고 그냥 집에 콕 박혀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걸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재미를 붙인 ‘더 위쳐3(The Witcher 3)’라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게임만 하다가 좀이 쑤실 때면 ‘묵혀 놨던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찾아온 자유의 시간을 그저 게임만 하며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해묵은 과제(?)인 국토종단기와 사람여행기를 다시 편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 심심함이 사람을 되게 창의적으로 만들고, 귀찮다고 접어놨던 일을 기꺼이 하게 만든다.
그 덕에 2월 3일부터 국토종단기를 편집하기 시작하여 12일까지 9일 동안에 121편의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2월 14일부터 사람여행기를 편집하기 시작하여 18일까지 4일 동안에 117편의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언제는 맘은 있었지만 엄두조차 못 내던 일을 끝마치고 나니 묵은 때를 벗겨낸 것 마냥 속이 편하고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더라.
10년 전의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총 13일이란 시간 동안 두 여행기를 다시 정리하다 보니 마치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여행하던 당시엔 두 가지가 늘 나를 괴롭혔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할 것과 잠자리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여행 비용을 최소화할 것으로 정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니 때론 넉넉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한껏 어우러지며 사람 사는 이야기도 듣고 그들의 환대도 받으며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구나’라는 감상에 젖어들기도 했지만 때론 계속되는 거절을 당하며 ‘이 넓은 세상에 내 한 몸을 누일 곳, 의지할 곳 없어라’라는 비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잘 될 때는 내 덕이고 못 될 때는 남 탓하게 되더라. 여행 내내 그런 가능성과 한계의 극단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편집하면서도 그 당시의 경험은 그대로 재경험되었다. 길 위에 섰던 그때의 그 감성 그대로, 13일 동안 나도 의식의 길 위에서 배회했던 것이다.
이러하기에 여행을 기록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접 걸으며 실제적인 여행을 하지만 그걸 글이나 사진으로 기록하다 보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 순간을 다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행기를 적는 사람은 같은 장소를 두 번 여행한 셈이고, 같은 사람을 두 번 만나 진솔하게 얘기 나눈 셈이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재편집 여행’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정착하지 못하고 인생의 바다에 헤매며 도전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작년 임용에 이어 올해 임용에서도 낙방의 고배를 마시며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삶의 의미마저 사라져버렸다. 이런 때에 10년 전 세상을 향해 맘껏 나가려 했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만나려 했던 열정 가득한 나 자신을 간접 체험해보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그래 지금에 비하면 그땐 더 암담했고 참혹한 순간이었는데도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고 싶던 걸 하던 때였다. 재편집을 하며 나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각할 수 있었고, 지금은 좀 풀이 죽어 쓰러져 있겠지만 곧 훌훌 털고 일어나 내 인생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테다. 마치 10년 전에 삶이 맘대로 풀리진 않았지만 열정에 가득했던 나 자신이 10년 후에 제풀에 지쳐 쓰러진 나에게 ‘힘 좀 내! 짜샤! 다 어떻게든 살아!’라고 하는 것만 같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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