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한문임용 최종 불합격기
처절하게 실패하다
작년에 최종 시험에서 떨어지고 나서 충격에 휩쓸릴 여유도 없이 무작정 내달렸다. 합격을 코앞에까지 두고서 결국은 떨어졌다는 게 가슴 아프긴 했어도 한문을 다시 공부한 지 2년 만에 이런 성과를 이뤘다는 게 나 스스로도 대견하고 고무적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2010년을 한문공부로 하얗게 불태우다
‘이렇게만 공부하면 좋은 결과는 나온다’는 걸 몸소 체험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한문공부도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며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공부하는 재미도 부쩍 붙었기 때문에 작년엔 더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다. 물론 더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던 데엔 코로나19로 인해 공공장소인 임용고시반이나 도서관 같은 공간들이 모두 문을 닫은 초유의 사태가 한 몫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공부해야 하는 만큼 임고반에선 할 수 없는 작업을 해보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그 결과 늘 맘에 짐처럼 남겨두고 있었던 연암 관련 책들(『연암을 읽는다』ㆍ『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이조시대 서사시』와 같은 책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만약 코로나가 오지 않았고 임고반에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원래대로 시간대로 나누어 오전 오후 저녁 시간으로 나누어 보는 것들을 세분화하여 조금씩 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을 것이기에 이런 식으로 하나씩 공부할 것들을 정하고 끝내가는 맛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코로나19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불행보단 오히려 ‘하나에 집중하며 공부하는 맛을 알게 해준 계기’라고 해야 맞으리라.
이런 식으로 그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원 없이 하며 임용시험을 대비했기 때문에 임용시험을 맞이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자신이 있다는 표현보단 그래도 여느 때에 비하면 좀 더 해볼 만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래서 1차 시험을 보러 천안에 올라간 날에 ‘D-1일, 이제 집대성을 보일 차례’라는 글을 쓰며 의기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공부한 한 해였던 만큼, 그리고 한 번 최종시험에서 떨어진 경험도 해본 만큼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만 잘 소화해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패라는 처절함
하지만 이미 제목에서도 밝혔다시피 결과는 ‘처절한 실패’다. 이번 시험에서도 최종시험까지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긴 했지만 합격은 좀처럼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2차 시험을 보고 나올 때도 준규쌤과 동섭쌤을 만나러 제주도에 갔을 때도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합격 발표가 나오면 어떻게 집을 알아볼지, 그리고지역을 옮기는 이사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일사천리로 고민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최종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말뿐이었다는 사실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탓인지, 작년에 떨어진 경험이 있는 만큼 올핸 꼭 될 거란 희망이 있던 탓인지 불합격 소식은 나란 존재를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예전에 단재학교에 다닐 때 여러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에겐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고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게 실패한 아이에게 “그 순간은 맘이 찢어들 듯 힘들지만 이 순간만 잘 넘어가면 너에겐 오히려 큰 자산이 될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물론 여전히 이성적으론 매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패의 충격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그런 식의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겠더라.
실패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며, 한 치 앞도 모를 세상에서 주저앉게 만든다. ‘그걸 극복하면’이란 단서를 달면서 좋은 경험 운운할지 모르지만 누군들 극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단지 그게 맘처럼 쉽지 않은 게 문제인 것을.
영화 『엑시트』에선 이런 상황을 살인연기 테러라는 기발한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며 보여준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도전하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1시간 40분 동안 보여주는 것이다. 조정석과 윤아는 클라이밍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저력을 불태우며 연기에 닿지 않도록 건물의 옥상들을 넘어 다닌다. 그러다 한 번 삐끗하기라도 하면 그들은 건물에서 떨어져 낙사를 하든, 연기에 질식되어 죽든 하고 말 것이다. 실패는 그냥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정도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뽑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해야 맞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실패해도 괜찮아’라거나 ‘실패할 기회는 많을수록 좋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로를 가장한 저주의 말에 다름 아니리라. 이런 말이 가능하려면 실패가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회 안전망, 사람들의 실패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한 것을.
시린 봄날에
그 결과 1차 시험을 보기 전에 당당하게 ‘D-1일, 이제 집대성을 보일 차례’라고 외쳤던 다짐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집대성은커녕 나 자신의 한계만을 여실히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2021년은 나에겐 가슴 시리도록 처절한 아픔이 담긴 한 해일 수밖에 없다. 어느덧 봄이 와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나고 향긋한 봄내음이 코끝을 스쳐 살아볼 만하단 인상을 갖게 만들지만, 딱 그만큼 지금의 봄은 더욱 시리게만 느껴진다. 맘 같지 않은 현실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21학년도 임용에서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 결과가 나온 지 두 달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몇 자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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