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資治通鑑)』을 얻어 보고서
득통감(得通鑑)
김시습(金時習)
諸史紛紛立意乖 宋朝涑水辨參差
勸懲揮筆明如日 衮鉞措辭謹亦佳
天下幾經吳魏晉 民生多被犬狼豺
漢唐隋業規模大 那及虞庭庶尹諧 『梅月堂詩集』 卷之十二
해석
諸史紛紛立意乖 제사분분립의괴 |
여러 역사들이 어지럽게 뜻을 세운 게 어긋나 |
宋朝涑水辨參差 송조속수변참치 |
송나라 조정의 속수선생【속수(涑水):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을 가리킨다.】이 들쭉날쭉한 걸[參差] 분별했네. |
勸懲揮筆明如日 권징휘필명여일 |
권선징악으로 붓을 휘둘러 분명하기가 해 같고 |
衮鉞措辭謹亦佳 곤월조사근역가 |
곤룡포로 기림과 도끼로 깎아내림【곤월(袞鉞): 공자가 실제로 정치할 수 없게 되자 《춘추》를 지었는데, 한 (字)로 표창한 것이 곤룡포[袞]보다 영광스럽고 한 자로 깎은 것이 도끼[鉞]보다 무섭다 하였다.】을 말을 빌려 삼가기가 또한 아름답다. |
天下幾經吳魏晉 천하기경오위진 |
천하가 몇 번이나 오나라 위나라 진나라를 겪었던가? |
民生多被犬狼豺 민생다피견랑시 |
백성의 삶이 개와 이리와 승냥이의 피해를 많이 받았었지. |
漢唐隋業規模大 한당수업규모대 |
한나라와 당나라와 수나라의 왕업의 규모가 크다 해도 |
那及虞庭庶尹諧 나급우정서윤해 |
어찌 순임금 조정의 뭇 관리들이 사이 좋은 것에 미치랴? 『梅月堂詩集』 卷之十二 |
해설
이 시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얻어 보고 지은 시로, 민생(民生)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그의 역사관(歷史觀)을 읽을 수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역대 왕조의 입의(立意)의 어긋난 점을 드러내고 차이점을 변별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붓을 휘두르니, 해와 같이 밝고 포폄(褒貶)의 말도 근엄하면서 아름답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와 한(漢)ㆍ당(唐)ㆍ수(隋) 등의 왕조가 교체하는 변혁기에 민생(民生)들은 개ㆍ이리ㆍ승냥이 같은 군주들에게 받은 피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한ㆍ당ㆍ수 등 규모가 큰 나라도 순(舜)임금이 통치하던 시절 조정의 백관(百官)들의 화락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김시습은 오세신동(五歲神童)으로 유명한데, 「본전(本傳)」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열경(悅卿)은 난 지 여덟 달 만에 능히 글을 읽을 줄 알았다.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민첩하여 입으로 읽지는 못하였어도 뜻은 모두 통하였다. 세 살에 유모가 맷돌에 보리 가는 것을 보고 또렷이 옮기를, ‘비는 안 오는데 우렛소리는 어디에서 울리는가? 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하니,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세 살 때에 그 할아버지에게 묻기를, ‘시는 어떻게 짓습니까?’ 하니, 할아버지가, ‘일곱 글자를 이어 놓은 것을 시라고 한다.’고 대답하였더니, ‘그렇다면 일곱 자를 엮을 테니 첫 글자를 불러 보시라.’고 하였다. 할아버지가 춘(春) 자를 부르자, 곧 응하기를, ‘봄비가 새 휘장 밖으로 내리니 기운이 열리도다’ 하여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다섯 살에 시를 짓기에 능하니, 세종이 그 말을 듣고 승정원으로 불러, 지신사(知申事) 박이창(朴以昌)에게 명하여 임금의 뜻을 전하고 사실인지 아닌지 묻는데, 안아 무릎 위에 놓고 이름을 불러 이르기를, ‘네가 시구를 지을 수 있느냐?’ 하니, 곧 응하기를, ‘올 때 포대기에 쌓인 김시습’ 하였다. 또 벽 위의 산수도(山水圖)를 가리키면서, ‘네가 또 지을 수 있겠느냐?’ 하니 곧 ‘작은 정자와 배 안에는 어떤 사람이 있는고?’ 하였다. 그가 지은 시와 글이 적지 않다. 곧 대궐로 들어가 아뢰니 전교(傳敎)를 내리기를, ‘성장하여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기용하리라.’ 하며, 크게 칭찬하고 비단 30필을 주고 제가 가지고 가라고 하였더니, 드디어 그 끝을 이어 가지고 끌고 나가므로 사람들이 또한 기특하게 여겼다[悅卿離胞八月, 能知讀書. 語遲而神警, 口不能讀, 而意則皆通. 三歲乳母碾麥, 朗然吟之曰: ‘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人神之. 三歲謂其祖曰: ‘何以作詩?’ 祖曰: ‘聯七字謂之詩.’ 答曰: ‘如此則可聯七字, 呼首字可也.’ 祖呼春字, 卽應曰: ‘春雨新幕氣運開.’ 人嘆服. 五歲能作詩, 我英廟聞之, 召致于政院, 命知申事朴以昌, 傳旨問虛實能否, 以抱置膝, 上呼名曰: ‘汝能作句乎?’ 卽應曰: ‘來時襁褓金時習.’ 又指壁上山水圖曰: ‘汝又可作?’ 卽應曰: ‘小亭舟宅何人在?’ 所作詩文不少. 卽入啓, 傳曰: ‘待年長學成, 將大用之.’ 大加稱嘆. 賜帛三十段, 使之自輸, 遂各綴其端曳之而出, 人亦奇之.].”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03~105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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