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무
고목(枯木)
김시습(金時習)
長枝蟠屈小枝斜 直幹亭亭聳碧霞
幾歲倚巖排雨雪 何年趠走化龍蛇
春至無心天亦惜 敎藤爲葉蘇爲花 『梅月堂詩集』 卷之十四
해석
長枝蟠屈小枝斜 장지반굴소지사 |
긴 가지는 둘러 굽었고 작은 가지는 비스듬하며 |
直幹亭亭聳碧霞 직간정정용벽하 |
곧은 줄기만이 우뚝 솟아 푸른 노을까지 솟았네. |
幾歲倚巖排雨雪 기세의암배우설 |
몇 년동안 바위에 기대 비와 눈을 밀쳐냈느라 |
何年趠走化龍蛇 하년초주화룡사 |
어느 해에 달려 용과 뱀으로 변할 텐가? |
瘤皮臃腫莊生木 류피옹종장생목 |
혹 난 껍질엔 부스럼 나서 장자의 나무인 듯하고 |
奇狀巃嵷漢使槎 기장롱종한사사 |
기이한 모양은 튀어나와 한나라 사신의 뗏목【한나라 사신이라 함은 장건(張鶱)을 말함인데, 나무가 그런 사람의 뗏목이 될 만하다는 말이다.】인 듯하네. |
春至無心天亦惜 춘지무심천역석 |
봄이 왔지만 무심하여 하늘 또한아까워하는 듯하지만 |
敎藤爲葉蘇爲花 교등위엽소위화 |
등나무로 잎사귀를 만들어 소생하여 꽃이 되었구나. 『梅月堂詩集』 卷之十四 |
해설
이 시는 마른 나무를 읊은 영물시(詠物詩)로 고목(枯木)에 자신을 의탁(依託)하고 있다.
고목(枯木)의 긴 가지는 서려서 굽어 있고 작은 가지는 기울어졌는데, 곧은 줄기는 푸른 하늘로 꼿꼿하게 솟아 있다. 고목은 바위에 기댄 채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비바람의 풍상을 겪었으며, 어느 때 멀리 달려 용과 뱀처럼 될 수 있을 것인가? 장자(莊子)가 산속을 지나다 본 무용(無用)한 나무가 유용(有用)하듯 울퉁불퉁 껍질에 혹이 나 있고, 월지국(月氏國)으로 사신 가다가 흉노족에 사로잡혀 10여 년간 포로 생활을 하였던 장건(張騫)이 타고 가던 뗏목인 양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봄이 와도 나뭇잎을 피우지 못하는 고목을 하늘도 애석하게 여겼던지 등나무로 잎을 만들고 이끼로 대신 꽃을 피웠다.
김시습(金時習)은 지금은 고목(枯木)이 되어 하늘마저도 애석하게 여기는 처지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길게 뻗은 가지와 곧은 줄기가 하늘 높이 솟아 있던 고목(高木)이었다. 고목에 자신의 삶을 기탁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호학군주(好學君主)였던 정조(正祖)가 “매월당은 절개만 기이한 것이 아니라 그 시도 매우 기이하다. 내가 반드시 모아 오래도록 전하려고 하는 것은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梅月堂非但節槩殊異, 其詩絶奇. 予之必收輯裒稡, 俾壽其傳者, 非偶爾也. 『弘齋全書』].”라고 언급한 것은 위의 시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13~114쪽
인용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시습 - 제금오신화(題金鼇新話) (0) | 2021.04.05 |
---|---|
김시습 - 석서(碩鼠) (0) | 2021.04.05 |
김시습 - 영산가고(詠山家苦) (0) | 2021.04.05 |
김시습 - 유산가(遊山家) (0) | 2021.04.05 |
김시습 - 득통감(得通鑑) (0) | 2021.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