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욕망의 수업
우리가 학창 시절에 자주 들었던 말이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말은 “지금은 참아라. 대학에 가면 그땐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으니”라는 말이었다.
▲ 서양과 동양이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하나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
지금은 참아라, 나중에 원하는 건 다할 수 있다
이 말은 현재 하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을 가로막고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할 때 쓰이며, 여기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게 한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을 알기에, 그것 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 머물다 보니 자연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사라져 갔고, 으레 해야 할 것들만 남게 되었다.
이럴 때 헛갈리는 건 ‘과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하는 점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를 욕망하면 욕망할수록 갈등만 키운다’는 인상이 짙게 남게 된다. 그런다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가족 구성원에게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욕심’이자, ‘철없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그런 말을 듣기도 전에 알아서 박박 기며, 나의 욕망들을 거세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닐은 편집장의 일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가로 막았다. 그러면서 그런 욕망 자체를 원천 봉쇄한다.
지금은 참지 말고 욕망하라
그렇게 우리는 어른의 세계에, 일상의 세계에, 당연의 세계에, 물론의 세계에 길들여져 갔다. 길들여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보니, 처음엔 ‘내 의지론 어쩔 수 없어서 어른의 말을 따른다’고 생각되던 게, 어느 순간엔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어색하고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던 게 점차 당연해지고 익숙해지게 되었고, 그렇게 나를 옭아매어 답답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어느 순간엔 편안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불편함이 당연함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무지개 너머에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Somewhere Over The Rainbow)가 있다고 믿으며 미소를 짓거나,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짓던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이젠 그저 현실의 칙칙함에 희노애락조차 느끼지 않는 무표정한 사람만이 남게 된 것이다. 아마 우리가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의 첫 장면에서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볼 때 보게 되는 표정이야말로 이 표정이라 할 수 있다.
▲ 무지개 너머를 그리는 건, 감성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런 희망조차 갖지 못하면 죽음의 그림자가 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교실에 앉아 있을 땐 한껏 억눌려 있어 표정도 매우 어두웠지만, 그들이 교실을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찾아 라디오 수신기를 만들어 대중가요를 들으려고 노력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자전거를 타고 학교문을 나설 때, 자신의 재능을 알고서 연극무대에 오르려 할 때, 밤마다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일탈의 스릴을 맛볼 때 그들의 표정은 살아나고 천진난만해진다. 흡사 아이들이 세상을 보며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연신 웃어 재낄 때의 그런 해맑음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건 곧 그들은 아직까지 가슴 깊은 곳엔 억눌리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며, 낭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들은 비밀 동아리의 회합장소에 있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밝고 활기차다.
그런 그들에게 키팅은 ‘지금은 참아라’라고 말하지 않고, ‘지금 욕망하라’고 말하는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서서히 잃어가고 있던 낭만적인 시선, 이상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과연 그들에게 키팅은 달콤한 속삭임을 주는 나쁜 존재일까? 자신들의 본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존재일까?
▲ 키팅의 말은 달콤하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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