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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 철학의 멘토, 영화의 테라피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 철학의 멘토, 영화의 테라피

건방진방랑자 2021. 7. 2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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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멘토, 영화의 테라피

 

 

1. 철학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문학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한때는 그 쓸모없음이 매력적으로 보였고, 한때는 애써 뭔가 가시적인 쓸모를 찾느라 남몰래 혈안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질문을 받아도 굳이 흥분하지 않는다. 영혼의 추위에 떨던 내 인생 하나를 구제해준 것만으로도 인문학의 쓸모는 충분히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 스스로가 질문한다. 인문학이 정말 쓸모없을까? 인문학은 정말 필요 없는이라는 단죄를 받아도 싼 것일까. 요즘 내 생각은 바뀌었다. 인문학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의 범위가 잘못 규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인문학은 마케팅 전략이나 주식투자비법을 찾을 때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르지만,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길, 동서남북으로 도식화할 수 없는 복잡한 인생의 나침반을 설정하는 비법, 사랑하는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내 곁에 머물게 하는 기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 너무도 절실히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숱한 자기계발서나 심리 치유 에세이를 모조리 통독해도 얻을 수 없는 지식들이 있다. 진정한 존재의 독립을 꿈꿀 때, 나와 타인, 타와 세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때, 예술과 역사와 문학이 바꾼 세계의 지형도에 눈뜰 때, 우리는 인문학의 멘토링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한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던 즈음, 나만의 주거공간을 만들고 나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는 서툰 정신의 걸음마를 시작하던 무렵,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철학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는 철학의 도움을 시도 때도 없이 받으면서도 그것이 철학 탓이라고 생각할 줄을 몰랐다. 눈앞에 주어진 단기적 미션을 해결하는 데 바쁜 삶이 아니라, 뭔가 지금과는 다른 삶, 세속적인 삶의 목표에 찌들지 않는 삶,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인생의 퍼즐을 해체하여 처음부터 새로운 판짜기를 하고 싶었던 순간, 철학은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와는 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로 들렸던 머나먼 철학의 메시지가 나를 위한 맞춤서비스처럼 한없이 친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 너무 어렵고 힘겨워 인생의 핸들을 불현듯 탁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철학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에 철학의 메시지가 직접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포착한 철학의 포토앨범 같은 책이다. 우리들의 라이프스토리를 닮은 대상 중 영화만큼 친밀한 장르도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눈과 귀를 빌려 철학의 입술이 속삭이는 언어를 채취하고 싶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바로 저거야! 저게 내가 처한 상황이야!’라고 느끼는 순간들, ‘! 나는 절대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은데하고 안타까워하는 순간들, 바로 그 결정적인 인생의 문턱에서 내가 사랑하는 철학자들은 어떤 조언을 해줄까 하는 행복한 상상 속에서, 이 책은 만들어졌다. 영화라는 욕조에 온몸을 푹 담근 철학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릴렉스된 표정으로 우리에게 수다를 떨어주었고, 나는 기쁘게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 적었다.

 

 

▲ 일러스트 - 백진규

 

 

2. 행복한 오독의 막춤

 

 

삶이 잠시만 얼음 땡해주었으면 할 때가 있다. 놀이할 때 타임!’이라고 외치면 잠시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게임의 법칙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쉽게도 인생에는 그런 얼음 땡이나 타임이 없어서 탈이었다. 잠시만 삶의 속도를 제로로 만들고 싶을 때, 그럴 땐 어떤 따스한 위로도 어떤 그럴듯한 자기합리화도 먹히지 않는다. 그럴 땐 나는 주로 기약 없는 겨울잠을 청하지만, 그것조차 효과가 없을 땐 할 수 없이 책을 읽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랫동안 좋은 책인 건 알았지만 절대 펼쳐보지 않았던 책들을 꺼내 읽는다. 먼지 쌓인 이 책들 대부분은 어렵다, 머리 아프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철학서들이다.

 

스스로에게 어떤 처방전도 통하지 않을 땐 신기하게도 이런 극약처방이 뜻밖의 약효를 발휘한다. 그제야 좀처럼 인간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던 철학자들의 명강의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오래된 LP판에서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반의 명연주처럼 마음속에서 따스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렇게 내 마음에 뒤늦게 문을 두드린 철학자들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향해 보낸 메시지를, 내가 사랑한 영화의 언어를 빌려 믹싱한 컴필레이션 음반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철학에 손쉽게 다가가기 위한 몸짓이 아니다. 어쩌면 철학 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책은 철학과 전혀 인연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를 통해 철학자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졌을 때, 인생에서 너무 커다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정말 필요한 실용적(?)’ 에너지를 철학자의 문장에서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에서 우리가 함께 만나는 철학자는 중요한 철학자라기보다는 철저히 내가 편애하는 사람들이며, 이 글은 그들의 목소리를 음악 삼아 추는, 내 행복한 오독의 막춤이다.

 

그들은 내가 꿈꾸는 세상의 목소리를 번역하는 뮤즈가 되어주었고 나는 그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매일 밤 받아쓰기하며 나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졌다. 철학책을 읽는 것은 시험이나 논문이나 강의를 비롯한 각종 아는 척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 내 삶으로, 몸으로, 맘으로 침투하여 그 모두를 철학의 빛깔로 물들이는 새로운 경험이다. 더구나 글쓰기의 과정이 인터넷 일일 연재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의 글쓰기는 어느 때보다 덜 외롭고, 덜 지치고, 덜 힘들었다. 누군가 실시간으로 내 작업의 과정을 엿보고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응원의 마사지가 될 줄은 몰랐다.

 

 

 

 

3.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과 철학이 입맞추는 순간

 

 

현대인은 달콤한 심리 치유 에세이스파르타식 자기계발서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철학은 심리 치유 에세이처럼 친절하게 위로해주지도 않고, 자기계발서처럼 손쉽게 성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철학은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 저마다의 사정을 절대 봐주지 않는다. 나는 철학의 그 가차 없음, 인정사정없음이 마음에 든다. 철학의 무대 앞에 서는 순간, 우리들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조건들은 잠시 사라지고, 우리는 무장해제 상태로 평등해진다. 니체의 말처럼 철학은 모두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비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의 귀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냐에 따라, 철학의 메시지는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지 영화와 철학의 만남만은 아니다. 영화와 철학을 핑계로 우리가 이 광막한 혼돈의 세계를 견디기 위해 필요로 했던 삶의 에너지를 찾는 과정의 이야기다. ‘개념의 명료성으로 다가온 철학자들이 아니라 기이한 파동으로 내 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철학자들이 내게 걸어온 말 밖의 말(言外言, 언외언)’의 메시지를 들을 담고 싶었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주요개념 총정리와는 아무 인연이 없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굳이 철학책을 뒤져 개념 정리를 하지 않더라도, 도저히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미션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사랑에도 일에도 인생에도 실패한 것만 같을 때, 내가 사랑한 철학자들의 문장들을 안락의자 삼아 잠시 삶의 질주를 멈추고 몽상과 휴식을 만끽하기를 바란다. 나는 철학적 개념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우리의 삶과 철학이 아슬아슬하게 입 맞추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나는 시네필 다이어리가 단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생활의 연료가 아니라, 때로는 인생 전체에 잠시 인터미션을 가지면서 처음부터 삶을 리모델링하는 인생의 쉼표가 되기를 빌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가 되고 싶은 책, 느낌표보다는 물음표가 되고 싶은 책, 다이어리라기보다는 러브레터처럼 읽히는 책이 되고 싶어 한다. 당신이 가장 외로울 때, 당신이 가장 힘겨울 때, 이 사랑스런 철학자들의 독백은 오직 당신의 심장에만 남모르게 꽂히는, 유독 당신에게만 다른 아픔으로 꽂히는 달콤한 불화살이 될 것이다.

 

P.S. 눈 밝은 독자는 내가 철학과 영화 사이의 미팅을 주선한답시고 불쑥불쑥 꿈보다 해몽식의 각종 오버를 감행하고 있음을 눈치 챌 것이다. 그 난데없는 오버액션은 바로 영화나 철학을 핑계로 내가 꿈꾸는 우리의 미래를 살짝 끼워 팔기(?)하는 것이다. 우리 함께 이런 꿈을 꾸어보지 않겠냐고 유혹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꿈을 꾸어도 되겠느냐고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쁘고 힘든 시간에도 내 블로그에 마실을 와준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용기를 내어 감히 꿈꾸고 감히 사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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