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죄수’로 호명되다
영화의 첫 장면. MIT 대학 교실은 대학원생들로 가득하다.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수학 수훈상 수상자답게 호기롭고 당당하다. 그는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과제를 낸다. “본관 복도 칠판에 푸리에 이론(Fourier Theory)을 적어뒀으니, 누구든 학기 말까지 풀어주기 바란다. 그걸 푼 사람은 내 수제자로서 명예와 부를 얻게 될 것이며 그 성과가 기록되고 영예로운 MIT 테크지에 이름이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시큰둥하다. 아무리 부와 명예가 좋다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라 자신이 풀어낼 리가 없다는 얼굴들이다. 수업이 끝난 후. 청소부 윌(맷 데이먼)은 칠판에 적힌 문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윌은 언제나처럼 청소기로 복도를 청소하다가 칠판 위에다 뭔가를 끼적인다.
램보는 토요일 MIT 대학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던 중 학생의 전갈을 받는다. 문제를 푼 사람이 나타났다고. 궁금해서 월요일까지 참을 수가 없다고. 램보는 교실 앞으로 가서 정답을 확인하지만, 문제를 푼 영광의 주인공은 색출하지 못한다. 월요일, 램보 교수의 강의실에는 때아닌 인파가 몰린다. 묘령의 수학 천재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 모여든 것이다. 역시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램보는 또 하나의 과제를 낸다. 자신과 동료들이 2년 넘게 걸려 간신히 푼 수학의 난제를. 그는 문제를 풀어놓고 나타나지 않는 학생의 행위를 교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이해한다. “모두에게 공표하겠다. 학생의 도전에 우리 교수진은 열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다.”
이런 소동을 알 리 없는 청소부 윌은 또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청소를 하다가 마법에 이끌리듯, 대수롭지 않게 그 문제를 풀어낸다. 드디어 램보 교수가 칠판 앞에 서 있는 윌을 발견한다. 웬 청소부가 장난으로 낙서를 하는 줄로 오해한 램보는 도망치는 윌을 뒤쫓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학생들 칠판에 낙서를 하면 어떡하나? 거기 서지 못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수학계의 거물 램보 교수도 2년이나 걸려 간신히 푼 문제를 몇 분 만에 푼 바로 그 주인공이, MIT 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소부 청년이라는 것을. 램보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윌의 행방을 찾아낸다.
이 와중에 윌은 유치원 때 자기를 괴롭혔던 아이를 우연히 만나 시비를 걸고 패싸움을 벌이다가 투옥되고 만다. 알고 보니 갓 스물한 살 청년 윌 헌팅의 전과는 화려하다. 법정에서 윌은 마치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해온 듯 능숙하게 자신에 대한 변론을 하고 있다. 판사는 윌의 화려한 수사학과 능청맞은 태도에 치를 떨다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윌에게 말한다.
“지금까지 10분 간 자네 이야기를 들으며 자네 전과 기록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놀랍더군. 93년 6월, 폭행죄 입건. 93년 9월 또 폭행죄. 92년 2월에는 차량 절도죄. 게다가 그땐 자기변호를 해서 1798년 마차 소유권을 인용해 기각시켰더군. 95년 1월에는 경관 사칭죄. 상해, 절도, 체포불응죄. 모두 패소판정을 받아냈어. 물론 피고가 몇 번이나 입양됐다 파양됐고 그 중 세 번은 학대로 인한 강제 파양이란 거 아네(이 순간 여유 만만했던 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하지만 경찰을 친 건 용납할 수 없어. 따라서 기소 기각 신청은 기각한다. 보석금은 5만 달러로 책정한다.”
램보 교수는 윌이 판결을 받는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윌은 램보 교수에게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법정에서 ‘죄수’로 호명되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알튀세는 누군가를 이름 붙여 호명하는 것 자체가 권력을 생산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행인에게 “어이, 이봐!”라고 불러 세우는 순간, 행인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180도 몸을 돌려 경찰을 바라본다. 1초도 안 되는 이 짧은 순간, 행인을 불러 세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권력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은 아무나 불러 세울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을 발동시킨 것이고,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한 시민은 그 권력의 효과를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전 손택은 ‘암 환자’라고 호명되는 순간, ‘에이즈 환자’라고 호명되는 순간, 그 사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물을 예리하게 감지했다.
수전 손택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폐병으로 잃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에이즈로 잃고, 자신은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고통받았다. 수전 손택은 정작 질병의 치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은, 때로 질병 자체보다 환자를 더 괴롭히는 것은, 환자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갑론을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질병에 대한 각종 환상과 왜곡된 이미지, 질병과 환자를 둘러싼 제3자들의 열띤 논쟁들이 오히려 질병을 타자화시키고 환자를 소외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재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천재도, 크게 보면 이 사회에서 ‘환자’처럼 낙인찍히는 효과가 있다.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재능’과 ‘IQ’, 그의 ‘이용 가치’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의 진심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램보 교수는 윌 헌팅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천재’로 호명하지만 윌 헌팅이라는 인간 자체에게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램보 교수는 윌의 인생에 있어 구원의 메신저 같은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윌은 어쩌면 평생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폐적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윌의 재능이 중요할 뿐 윌이 빠져 있는 고통은 윌의 천재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는 윌의 고통이 자가증식한 나머지 윌의 정체성 자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되어 있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치유되어야 할 바이러스, 제거되어야 할 병균으로서의 고통. 램보 교수는 천재소년 윌 헌팅을 발견하는 순간, 범죄자 윌 헌팅의 골치 아픈 인생과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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