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6/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 -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 -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건방진방랑자 2021. 7. 21. 14:18
728x90
반응형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1. 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버린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중에서.

 

 

현대인에게는 눈물의 에티켓이 있다. 이토록 쿨한 세계에서는 아무 데서나 주책없이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 사방이 꽉 막힌 스크린 앞에서, 혹은 아무도 우는 내 모습을 보지 않는 텅 빈 방 안의 TV를 보면서. 화면 안에서는 저토록 넘쳐나는 눈물이 현실 속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현대인은 미디어의 화면을 핑계로, 구실로, 울고 웃고 떠드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현실을 가장 리얼하게 재현한다고 믿어왔던 사진을 보면서도 울 수 있을까.

 

사진에는 무엇보다 소리가 없다. 소리에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특유의 힘이 있다. 우리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해 비치는 화면을 보며 울지만 정작 거기서 사운드가 빠진다면 화면 속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포토저널리즘이 극대화된 현대의 사진문화 속에서 대부분 세련되게 다듬어진, ‘연출된 사진 이미지에 익숙해진 우리는 사진이 막상 지나치게 리얼한(?) 이미지를 담고 있을 때 고개를 돌린다. 너무 끔찍하거나, 너무 날 것이거나, 그 고통이 내게 전염될까 봐, 혹은 사진으로 전시된 고통이 너무 생생해 구역질이 난다는 이유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유명한 평론가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머나먼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구경거리로 만드는 각종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유통시키는 저널리즘을 비판했다. 수전 손택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매일 보는 재난 사진이야말로 현대인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드는 가장 일상적인 매체임을 지적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하게 전시하는 사진 이미지를 보며 고통에 공감함으로써 함께 아파하기보다는 전시된 고통의 이미지에 마취되어,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끝내는 고통을 타자화시킨다는 것이다.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 그런 사진이 촬영됐던 군사 병원의 외과 의사)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어떤 경우가 됐든 간에, 이런 섬뜩함은 우리를 구경꾼이나 겁쟁이로 만들어버린다. 그 자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사람들로.”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67~68.

 

 

수전 손택이 비판한 것은 사진이라는 미디어로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기 쉽게편집하고 수정하여 유통시키는 현대인의 잔혹성이다. 그녀의 사진론은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진짜 고통과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 영화도 미디어일 뿐이다. 영화는 두 시간 만에 끝나버린다. 그런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평생 동안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아주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소중한 메시지의 통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게 굿 윌 헌팅천재 소년의 성장 스토리라기보다 타인의 고통에 눈뜨는 소년의 내밀한 고백으로 다가왔다. 자기 고통에 골몰하느라 이 세상 그 누구의 고통에도 무관심하던 한 소년이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몇 번이나 입양되고 파양되었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양아버지의 매일 밤 계속되는 린치에 학대당하던 소년. 자신의 고통을 반복하여 곱씹으며 매일매일 영화처럼 리와인드하던 소년. 그 고통에 중독되어 한 번도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던 한 소년이, 그래서 세상 모든 일이 사진 속의 아련한 풍경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소년이,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만나 액자 속에 갇혀 있던 세상을 비로소 날 것으로 만나는 이야기 말이다.

 

 

▲ 사진 - 어느 (공화파)병사의 죽음’(1936, 스페인 코르도바) / 로버트 카파

 

 

 

2.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죄수로 호명되다

 

 

영화의 첫 장면. MIT 대학 교실은 대학원생들로 가득하다.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수학 수훈상 수상자답게 호기롭고 당당하다. 그는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에게 과제를 낸다. “본관 복도 칠판에 푸리에 이론(Fourier Theory)을 적어뒀으니, 누구든 학기 말까지 풀어주기 바란다. 그걸 푼 사람은 내 수제자로서 명예와 부를 얻게 될 것이며 그 성과가 기록되고 영예로운 MIT 테크지에 이름이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시큰둥하다. 아무리 부와 명예가 좋다지만 워낙 어려운 문제라 자신이 풀어낼 리가 없다는 얼굴들이다. 수업이 끝난 후. 청소부 윌(맷 데이먼)은 칠판에 적힌 문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윌은 언제나처럼 청소기로 복도를 청소하다가 칠판 위에다 뭔가를 끼적인다.

 

 

 

 

램보는 토요일 MIT 대학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던 중 학생의 전갈을 받는다. 문제를 푼 사람이 나타났다고. 궁금해서 월요일까지 참을 수가 없다고. 램보는 교실 앞으로 가서 정답을 확인하지만, 문제를 푼 영광의 주인공은 색출하지 못한다. 월요일, 램보 교수의 강의실에는 때아닌 인파가 몰린다. 묘령의 수학 천재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 모여든 것이다. 역시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램보는 또 하나의 과제를 낸다. 자신과 동료들이 2년 넘게 걸려 간신히 푼 수학의 난제를. 그는 문제를 풀어놓고 나타나지 않는 학생의 행위를 교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이해한다. “모두에게 공표하겠다. 학생의 도전에 우리 교수진은 열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다.”

 

 

 

 

이런 소동을 알 리 없는 청소부 윌은 또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청소를 하다가 마법에 이끌리듯, 대수롭지 않게 그 문제를 풀어낸다. 드디어 램보 교수가 칠판 앞에 서 있는 윌을 발견한다. 웬 청소부가 장난으로 낙서를 하는 줄로 오해한 램보는 도망치는 윌을 뒤쫓으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학생들 칠판에 낙서를 하면 어떡하나? 거기 서지 못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수학계의 거물 램보 교수도 2년이나 걸려 간신히 푼 문제를 몇 분 만에 푼 바로 그 주인공이, MIT 학생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소부 청년이라는 것을. 램보 교수는 우여곡절 끝에 윌의 행방을 찾아낸다.

 

 

 

 

이 와중에 윌은 유치원 때 자기를 괴롭혔던 아이를 우연히 만나 시비를 걸고 패싸움을 벌이다가 투옥되고 만다. 알고 보니 갓 스물한 살 청년 윌 헌팅의 전과는 화려하다. 법정에서 윌은 마치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해온 듯 능숙하게 자신에 대한 변론을 하고 있다. 판사는 윌의 화려한 수사학과 능청맞은 태도에 치를 떨다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윌에게 말한다.

 

지금까지 10분 간 자네 이야기를 들으며 자네 전과 기록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놀랍더군. 936, 폭행죄 입건. 939월 또 폭행죄. 922월에는 차량 절도죄. 게다가 그땐 자기변호를 해서 1798년 마차 소유권을 인용해 기각시켰더군. 951월에는 경관 사칭죄. 상해, 절도, 체포불응죄. 모두 패소판정을 받아냈어. 물론 피고가 몇 번이나 입양됐다 파양됐고 그 중 세 번은 학대로 인한 강제 파양이란 거 아네(이 순간 여유 만만했던 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하지만 경찰을 친 건 용납할 수 없어. 따라서 기소 기각 신청은 기각한다. 보석금은 5만 달러로 책정한다.”

 

램보 교수는 윌이 판결을 받는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윌은 램보 교수에게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법정에서 죄수로 호명되는 아이러니에 빠진 것이다.

 

알튀세는 누군가를 이름 붙여 호명하는 것 자체가 권력생산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행인에게 어이, 이봐!”라고 불러 세우는 순간, 행인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180도 몸을 돌려 경찰을 바라본다. 1초도 안 되는 이 짧은 순간, 행인을 불러 세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권력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은 아무나 불러 세울 수 있는 자신의 권력을 발동시킨 것이고,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한 시민은 그 권력의 효과를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전 손택은 암 환자라고 호명되는 순간, ‘에이즈 환자라고 호명되는 순간, 그 사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물을 예리하게 감지했다.

 

수전 손택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폐병으로 잃었다. 사랑하는 친구를 에이즈로 잃고, 자신은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고통받았다. 수전 손택은 정작 질병의 치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은, 때로 질병 자체보다 환자를 더 괴롭히는 것은, 환자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갑론을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질병에 대한 각종 환상과 왜곡된 이미지, 질병과 환자를 둘러싼 제3자들의 열띤 논쟁들이 오히려 질병을 타자화시키고 환자를 소외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재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천재도, 크게 보면 이 사회에서 환자처럼 낙인찍히는 효과가 있다. 천재로 호명되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재능‘IQ’, 그의 이용 가치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의 진심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램보 교수는 윌 헌팅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천재로 호명하지만 윌 헌팅이라는 인간 자체에게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램보 교수는 윌의 인생에 있어 구원의 메신저 같은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윌은 어쩌면 평생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폐적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윌의 재능이 중요할 뿐 윌이 빠져 있는 고통은 윌의 천재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는 윌의 고통이 자가증식한 나머지 윌의 정체성 자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되어 있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치유되어야 할 바이러스, 제거되어야 할 병균으로서의 고통. 램보 교수는 천재소년 윌 헌팅을 발견하는 순간, 범죄자 윌 헌팅의 골치 아픈 인생과 맞닥뜨리게 된다.

 

 

 

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질병에 대한 가장 악질적인 환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범죄가 범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질병도 환자의 소유물이라는 환상이 아닐까. 아픈 사람 스스로가 병을 만든다든지, 환자 자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범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듯 질병 또한 환자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에이즈 인권 운동 포스터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단지 내가 HIV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내가 죽음의 전문가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오직 을 향해 쏟아 붓고 있다.” “나는 HIV 보균자 그 이상의 존재다I’m more than HIV-Positive.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신나게 춤추러 가고 싶고, 포켓볼도 치러 가고 싶다. 내 친구들과 함께.”

 

그렇다. 사람들은 누군가 HIV 보균자라는 정보를 입수한 순간, 그 사람의 이름도, 존재도, 희망도, 취미도 깡그리 잊어버린다. 단지 ‘HIV 보균자라는 사실만으로 (아직 발병하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존재 전체가 그 새빨간 낙인 속에 갇혀버린다.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낱말을 떠올리는 순간 동시에 죽음을 떠올린다. 마치 에이즈 환자라면 당연히 죽음에 대해서는 훤하게 통달했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정작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이다.

 

윌의 상처 또한 그렇다. 사람들은 윌 헌팅이 천재라는 것을 안 순간 그가 왜 천재답게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끊임없이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지, 자신의 재능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써먹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램보 교수는 윌의 이 병적인 행동만 교정하면 윌이야말로 세계 수학계를 뒤흔들 재목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윌의 천재적인 재능이 그의 트라우마 혹은 정신질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윌의 입장에서 이 공격적인 태도는 질병의 발현이라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 혹은 공격적인 방어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어쩌면 이 영화의 트릭(trick, 속임수)이다. 그는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를 천재라는 화려한 커튼 뒤로 철저히 은폐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상처는, 그의 고통은 천재라는 꼬리표로도, ‘트라우마라는 진단으로도, ‘자기애성 인격장애라는 병명으로도 완전히 담을 수 없는 불가해한 미로이므로.

 

램보 교수는 구치소에 갇힌 윌을 빼내기 위해 협상을 한다. 판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보호하에 윌을 석방하기로. 램보 교수는 윌에게 면회를 가서 그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첫 번째 조건은 매주 자신과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조건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윌은 피식 웃는다. 램보는 심각하다. “내겐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거든. 둘 중 어느 조건이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남은 복역기간을 채워야 해.” 윌은 이 조건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램보 교수와 함께 하는 수학 공부는 견딜 만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죽을 맛이다.

 

 

 

 

윌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치료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더불어 정신과 치료의 엄숙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마치 구원의 대상인 양 그를 딱하게 바라보는 의사들의 눈빛을 그는 견디지 못한다. 윌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에게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치료로 해결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언한다. 최면을 걸려는 의사 앞에서 최면에 빠진 양 가짜 연기를 하고, 상담을 하려는 의사에게 당신 게이지? 지금도 날 덮치고 싶지?”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치료는, 아니 환자라는 낙인은 윌을 더욱 나쁜 상태로 몰고 간다.

 

 

질병은 두 가지 가설을 통해 확대됐다. 첫 번째 가설은 모든 사회적 일탈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범죄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었으며, 범죄자는 비난받거나 처벌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가 그를 이해하듯이) 이해되고, 치료받고, 교정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 가설은 모든 질병이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질병은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사건으로 해석됐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 원했기 때문에 병에 걸리게 된 것이며, 의지를 사용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으며, 질병으로 죽지 않기를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다고 믿도록 유도됐다. (……) 질병을 심리학적으로 다루는 이론은 환자를 비난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스스로 질병을 가져 왔다는 통고를 받게 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병을 앓을 만한 짓을 했을 것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86~87.

 

 

지금 윌에게 필요한 것은 진단이나 치료가 아니다. ‘너의 성격 때문에 너의 천재성이 질식당한다느니, ‘너의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면 너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느니, 이런 식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은 윌에게 먹히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해줄 사람이 아니라, 겹겹이 닫혀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그의 마음의 문을 열어줄 사람이다. 그의 천재적인자기방어의 치밀한 방범시스템을 뚫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 자신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줄 사람. 이 가망 없는 게임에 드디어 구원투수가 나타난다.

 

 

 

 

 

4. 당신의 불행이 당신의 질병을 부른다?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아프답니다. 폐 속의 질병은 내 정신적 질병이 넘쳐흐른 것에 불과하지요.” 이런 식으로 정신적 요인을 질병의 원인으로 치환시키는 사고법은 당신의 성격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 ‘암을 유발하는 특별한 성격이 있다’, ‘암 환자는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된 사람이다라는 식의 당혹스런 논리를 대중적으로 유포시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16세기 후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부터 유포된 낭만적 환상이었다. 감정이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논리, 질병의 원인 자체가 개인의 불행 혹은 악행에 기반한다는 상상은 수전 손택이 열렬히 비판했던 질병에 대한 은유의 시스템이었다. 질병을 정신적으로 치환할수록 질병의 실체는 타자화된다. 모든 일탈이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됨으로써 사람들은 일탈의 원인 제공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순환논리에 빠져든다.

 

수전 손택이 보기에 이런 관점은 질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덮어씌우는 폭력이며, 의학적 치료의 필요성과 과정을 알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꺾어버릴 뿐 아니라, 환자가 의학적 치료자체를 회피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환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당혹스런 환상이 유포되는 것이다.

 

윌은 소년의 불행이 정신질환을 낳았고, 소년의 정신질환이 범죄를 낳았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기성세대의 판결에 저항한다. 윌은 자신의 불행과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모든 권력에 구토를 느낀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천재 길들이기를 위한 정신분석 맞춤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램보의 노력을 무시한다. 램보의 대학 동창 숀(로빈 윌리엄스)은 램보가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정신과 의사다.

 

 

 

 

윌은 이번에도 또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려는 의사의 속셈을 속전속결로 격파하겠다는 듯, 시건방진 표정으로 숀의 진료실을 두리번거린다. 윌은 너의 불행은 네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 때문에 너는 악행을 저지르거나 질병에 걸린다는 식의 태도를 혐오한다. 그러나 윌 또한 이러한 전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윌은 숀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 스민 내면의 상처를 투시하여 숀의 인생을 속속들이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그림 한 장으로 숀의 인생 전체를 MRI 스캐닝하듯 훤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득의양양하다.

 

 

: (건들거리며) 누구누구처럼 선생님도 곧 귀를 자를 것 같네요.

: 그래? 당장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서 고흐로 이름이라도 바꿀까?

: 풍전등화(風前燈火)라는 말 알아요? 어쩌면 선생님이 그런 격인지도 모르죠.

: 어째서?

: 폭풍 속의 항구처럼 위태위태해 보여요. 머리 위의 사나운 폭풍우와 집채만 한 파도. 게다가 노는 부러질 것 같고. 너무 놀라 혼비백산(魂飛魄散)할 지경이라 있는 힘을 다해 항구로 치닫는 꼴이라구요. 어쩌면 힘든 현실을 피하려고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도 모르죠.

: 맞아, 그거야! 그러니까 직분을 다 해야지. 빨리 시작하세(숀은 그 정도의 예리한 분석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인정한다. 그러나 윌은 얼핏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 속을 꿰뚫어볼 듯한 표정으로 숀에게 뇌까린다.).

: 잘못된 짝과 결혼했나 보군요.

: (이번에는 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입 조심해. 조심하라구, 알았어?

: (숀의 분노에도 아랑곳 않고 더욱 잔인한 표정으로, 더욱 오만하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숀을 밀어붙인다) 내가 맞춘 거죠? 부인을 잘못 얻은 거죠? 왜요? 배신하고 도망갔어요? 딴 남자랑 눈 맞아서?

: (윌의 멱살을 잡고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다시 내 아내를 모욕했다간 널 그냥 안 두겠어. 그냥 안 두겠다구! 알아들었어?

: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을 애써 숨기며 애써 쿨한 척) 시간 다 됐네요.

: 그렇구나.

 

 

윌은 웬만한 의사나 교수의 실력보다 자신의 직관과 지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윌 스스로가 나보다 나은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윌은 이번에도 자신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의 자존심을 가차 없이 꺾어 자신에게는 치료가 필요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숀의 붓 터치와 색감을 분석하여, 숀의 심리를, 숀의 과거를 난도질한다. 숀의 표정은 지금까지 윌에게 봉변을 당한 다른 의사들처럼 오늘 똥 밟았네!’ ‘재수 옴 붙었네!’ 같은 표정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처 입은,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이다. 윌은 숀의 고통을 규격화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숀의 과거를 도륙한다. 이로써 숀은 말썽꾸러기 윌이 처음으로 끝까지 상담 시간을 지킨 생애 최초의 정신과 의사로 등극한다. 결과는 막돼먹은윌 군의 판정승일까?

 

 

 

 

 

5. 전시되는 고통, 소외되는 인간

 

 

눈앞에서 끔찍한 현실을 목격했을 때 세상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리얼한화면을 발견했을 때 정말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데!’라고 감탄하는, 스펙터클의 사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 영화 라이온 일병 구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관객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의 극치라며 전투 장면의 현장감을 극찬했다. 그러나 라이온 일병 구하기의 숨 막히는 전투 신이 과연 사실적이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일까. 사실감이란 본래 현실과 재현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 후 판단되는 감각 아니었는가.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은 총알이 눈앞에서 난사되고 사람이 피와 내장을 흘리며 죽어가는 실제 전투를 겪어본 적이 없다. 재현은 있지만 현실은 없다. 그러므로 재현과 현실 사이의 거리또한 측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 이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걸!’이라고 느끼는 바로 이 리얼함의 감각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일까.

 

 

2001911일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했을 때 그 건물에서 간신히 피해 나왔던 사람들이나 근처에서 그 장면을 그대로 봤던 사람들은 처음 그 공습을 설명하면서 믿을 수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 같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할리우드 재앙 영화가 만들어진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결국 어떤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자신이 짧은 시간 동안 겪었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을 마치 꿈처럼 느껴져요라는 말 대신에 마치 영화처럼 느껴져요라는 말로 표현하는 상황이 닥쳤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43.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거대한 스펙터클로 재창조하여 미디어에 전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라크전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전대미문의 충격과 공포를 자아냈던 방법은 바로 컴퓨터 전쟁 게임 같은 화면을 이라크 현장에서 연출하여 전쟁을 영화같이만든 후 그 편집된 화면을 전 세계에 방영하는 미디어 전략이었다. 현대인은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볼만한 구경거리, 화려한 스펙터클로 전시한다. 우리는 기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등지에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의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고, ‘전쟁하면 할리우드 영화나 컴퓨터 3D 전쟁 게임에서 본 스펙터클을 떠올린다. 미디어가 규격화하여 보여주는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공감(共感) 능력을 규정하고 한계 지운다. 고통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고통이 주는 공포 혹은 내가 저 고통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리얼하게 보였던 것은,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감독이 연출해낸 장면의 자극이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훈련시키는 것만큼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미디어 사이보그가 되어가는 걸까.

 

 

 

 

윌에게 상처 입은 숀이 깨달은 윌의 허점도 바로 그것이다. 윌은 모든 것을 다 안다. 그의 천재성은 단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독서량과 기억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윌은 그림 하나에 얽힌 인간의 심리를 눈앞에서 보듯 생생히 그려낼 정도로 상상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윌의 모든 지식은 책이라는 미디어와 머릿속의 상상력을 통한 간접 체험이다. 그는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광기 어린 사랑을 문학작품을 통해서만 경험해본 책상 위의 천재인 것이다. 이제 숀의 반격이 시작된다.

 

두 번째 정신과 상담. 윌의 난데없는 선제공격에 고통스러워하던 숀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숀은 이제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생각하다가 갑자기 얻은 깨달음이 있다고. 그건 바로 윌, 네가 어린애라는 것이었다고.

 

 

: 넌 네가 뭘 지껄이는 건지도 모르고 있어.

: 알아줘서 고맙네요.

: 당연한 거야. 넌 보스턴을 떠나본 적이 없으니까.

: 그렇죠.

: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그에 대해 잘 알 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본능까지도 알 거야, 그치?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 여자에 관해 물으면 네 타입의 여자들에 관해 장황하게 늘어놓겠지. 벌써 여자와 여러 번 잠자리를 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여인 옆에서 눈뜨며 느끼는 행복이 어떤 건진 모를걸.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다시 한 번 돌진하세, 친구들이여, 하며!

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 건지……. 사랑에 관해 물으면 너는 한 수 시까지 읊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로가 되어본 적은 없을 걸……. 그녀의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께서 너만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로 착각하게 되지……. 절망의 늪에서 널 구하라고 보내신 천사……. 또한 한 여인의 천사가 되어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그 사랑은 어떤 역경도, 암조차도 이겨내지……. 죽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달이나 병상을 지킬 땐,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윈 의미가 없어져…….

: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감정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처음으로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잠자코 듣고만 있다.)

: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진정한 상실감이란, 타인을 네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아마 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을 걸?

: …….

 

 

윌은 숨 돌릴 새 없이 이어지는 숀의 일갈에 허를 찔려 뜨끔하면서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모두들 엄마 손에 이끌려 떠난 후 황혼 속에 혼자 남은 아이처럼, 막막하고 슬픈 표정이다.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나만의 고통에 빠진, 고독한 천재 소년. 윌은 자신의 고통을 말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내면을 보게 되는 순간 얼굴을 돌려버릴 것을 알았다. 그 또한 오랜 차별과 핍박의 경험이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지식이었다. 윌은 천재로 판단되어 호명되는 순간 천재라는 존재를 길들이는 사회의 호명체계 속에 갇히게 된다. 그의 캐릭터에서 천재 이외의 것을 보려 하는 사람, 그의 명석한 두뇌 회전의 광휘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상처의 풍경을 본 사람, 그가 바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6. ‘가위손을 닮은 천재 소년, 사랑에 빠지다

 

 

영화 가위손에서는 흥미로운 퀴즈가 등장한다. ‘가위손에드워드(조니 뎁)의 기이한 외모와 천재적 재능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킴(위노나 라이더)과 가족들. 킴의 아버지는 에드워드의 정상성을 시험하기 위해 퀴즈를 낸다. “네가 길에서 돈가방을 봤다고 하자. 주위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어떻게 하겠니? A. 돈을 갖는다. B. 친구나 사랑하는 이에게 줄 선물을 산다. C. 불쌍한 이들에게 나눠준다. D. 경찰에 신고한다.” 킴의 동생들은 나라면 그냥 갖겠다, 에드워드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시시덕거린다. 에드워드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킴의 눈빛도 덩달아 흔들린다. 에드워드는 창백한 얼굴에 투명하게 묻어나는 진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킴의 눈동자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주겠어요.” 킴의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러고 싶겠지만 그래선 안 돼라고 타이르고, 아이들은 에드워드를 한껏 놀리며 바보야, 누구나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걸 알아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 순간 킴은 가위손을 향한 사랑에 빠진다.

 

에드워드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이 다가가는 모든 존재에게 가위손이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한다. 가위는 에드워드의 천재적 재능을 실현시키는 도구지만 본의 아니게 킴의 물침대에 구멍을 내고, 킴의 동생을 자동차 사고에서 구해주려다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 여기저기에 난 그로테스크한 흉터 또한 스스로 낸 상처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는 순간 가위손은 상처를 내고 만다. 그가 사랑하는 자리마다 폐허의 공포가 드리운다. 에드워드는 킴을 안고 싶지만, 킴이 가위에 찔릴까 봐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킴은 에드워드를 사랑하기 위한 좁은 문을 발견한다. 그의 가위손을 겁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에드워드의 등 뒤로 다가가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정면의 포옹이 열정적인 욕망이나 달콤한 행복의 표현이라면, 등 뒤의 포옹은 당신의 등 뒤에 내가 있으니, 불안해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는 따스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 아름다운 백 허그(back hug)는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거나 해부하지 않고 다만 등 뒤에서 조용히 껴안는, 사랑의 묘약이 된다.

 

 

 

 

우리의 천재 소년 윌 헌팅도 에드워드를 닮았다. 윌의 내면은 가위손의 얼굴처럼 상처투성이다. 양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밤마다 계속되는 린치, 몇 번이나 버려지고 파양되었다는 사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공포는 윌의 치명적인 내상을 더욱 깊게 만든다. 윌은 자신의 상처가 폭로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처가 지닌 기묘한 전염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이 닿는 곳마다 딱딱한 황금으로 변해버리듯이, 자신의 손이 닿는 곳마다 폐허로 변해버릴까, 윌은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길을 택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랄한 하버드생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스카일라와 데이트는 하지만 그녀에게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윌은 알고 있다. 스카일라와의 만남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숀과 가까워지는 윌은 스카일라와의 만남도 그에게 털어 놓는다. 호감은 가지만 자신이 먼저 전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게 다 작업의 기술이라고.

 

 

: 그 여자 애는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어요. 그간 사귄 여자들하고는 달라요.

: 그럼 전화해, 로미오.

: 왜요? 그러다 똑똑치도 않고 재미없는 여자란 것만 알게? 지금 그대로가 완벽하다구요. 이미지 망치기 싫어요.

: 반대로 완벽한 네 이미지 망치기 싫어서겠지. 정말 대단한 인생철학이야! 평생 그런 식으로 살면 아무도 진실 되게 사귈 수 없어.

: …….

: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곤 했었어. (죽은 아내가 생각나 애틋하지만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러 가지 앙증맞은 버릇이 많았지만 자면서까지 방귀를 뀌곤 했어. (이때부터 숀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말 해서 미안하군, 큭큭. 어쨌든 어느 날 밤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강아지까지 깼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당신이 뀌었수?’ 하길래, 차마 용기가 안나 얼떨결에 !’ 하고 말았다니까!

: (키득거리며) 자기 방귀에 놀라서 깨요?

: 아내가 세상 떠난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런 기억만 생생해. 멋진 추억이지. 그런 사소한 일들이 말야. 제일 그리운 것도 그런 것들이야. 나만이 알고 있는 아내의 그런 사소한 버릇들. 그게 바로 내 아내니까.

: (웃음이 잦아들며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소중한 사랑의 추억을 지닌 숀이 부러운 듯 애잔한 표정을 짓는다.)

: 반대로 아낸 내 작은 버릇들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 이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너라도 짝을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해. 내게서 그 방법을 배울 순 없을 거다. 안다 해도 너같이 건방진 녀석에겐 알려주기 싫어.

: 왜요? 딴 얘긴 주절주절 다 해줬잖아요. 빌어먹을! 그쪽처럼 말 많은 의사는 처음 본다구요!

: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다 아는 건 아냐.

 

 

 

 

윌은 어느새 숀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신경질도 낸다. 숀은 윌을 분석하거거나 해부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가르칠 수 없는 종류의 지식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론은 빠삭해도실천할 수 없는 지식, 그것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을,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으므로. 윌은 아름다운 액자 속에 끼워진 흑백사진처럼 멀리 있어 아름답던 그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처음으로 스카일라가 살고 있는 하버드 기숙사로 찾아가는 윌. 스카일라는 윌이 반갑지만 급한 숙제가 있다며 내일 만나자고 한다. 할 수 없이 돌아서는 윌.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표정. 그는 스카일라의 급한 숙제를 대신 해준다. ‘수재스카일라라면 밤을 새겠지만 천재윌이라면 3분 만에 후딱 풀 수 있는 그 숙제를. 그리고는 말한다.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

 

첫 번째 발걸음을 떼기가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처음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지만 한 번 마음을 열자 봇물 터지듯 열정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이제 해석하고 계산하고 짐작하고 미리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전화하고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먼저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과거만 연관되면 자신도 모르게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한다. 스카일라가 형제가 몇 명이냐고 묻자 윌은 불에 덴 듯 뜨끔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형만 열 두 명이라고. 신에 맹세코 정말이라고. 행운의 13번째이니까 자신은 행운아라고. 아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윌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윌은 처음으로 여인의 품에서 쾌락과는 다른 종류의 불가해한 따뜻함을 느낀다.

 

 

 

 

 

7. ‘연민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을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낯선 괴짜 할머니의 유모차에 탄 소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를 만난다. 행인의 눈에 띄지 않는 밤,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는 할머니가 끄는 낡은 유모차를 타고, 도둑질하듯 은밀하게 세상을 구경한다. 이 소녀에게 뚝딱뚝딱 엉터리 휠체어를 만들어주는 츠네오. 조제는 츠네오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처음으로 아름다운 대낮의 풍경을 보게 된다. 평범한 하늘에 뜬 범상한 구름을 보며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저 구름도 집에 가져가고 싶어라고 속삭이는 조제, 다락방에서 헌책들을 벽돌처럼 쌓아놓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조제. 두 다리로 걷지는 못하지만 상상 속에서 세상 모든 곳을 바지런히 걸어 다니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사랑을 느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액자 저편에서 아련하게 미소 짓고 있던 타인의 삶이 처음으로 내 삶의 두터운 각질을 뚫고 침투해 오는 이야기다. 액자를 깨고 들어가 사진 속 그녀의 진짜 삶을 직시하고 그녀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던 츠네오. 그는 막상 액자 너머로 들어가 만난 진짜 세상에 단지 그녀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간신히 넘어 들어간 그 아름다운 액자 건너편에는,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녀를 부모님께 도저히 보여드릴 수는 없는 그의 공포가, 그녀와 잠시 동거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는 스스로의 불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그의 몸은 연민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랑에 풍덩 빠질 수는 있었지만 그 사랑 속에 끝까지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사랑을 짊어지고 삶을 버티는 것사이의 차이를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조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도망치더라도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츠네오가 잠들었을 때 조제는 마치 머지않아 혼자가 될 미래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듯, 긴 독백을 한다.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처럼, 타인을 믿지 못하는 소년 윌 또한 스카일라의 사랑이 끝까지갈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고통의 반복 학습 효과로 인해 윌은 치명적인 피해망상을 앓고 있다. 그러나 윌은 숀이라는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어쩌면, 어쩌면 자신도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숀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신의 아픈 상처를 윌에게 보여준다. 아내가 병상에 누워 있던 6년 동안 직장조차 그만두었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레드 삭스 팀 역사상 가장 큰 월드 시리즈 게임을 직접 볼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숀이 만약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역사적 야구경기를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정신과 의사로서 경력을 희생당하지 않고 출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숀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냐는 윌의 질문에, 그저 내 아내는 죽었다고 말한다. 숀이라는 타인의 고통을 사유함으로써, 윌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스카일라는 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지만 윌은 자신의 방도 자신의 친구도 보여주지 않는다. 자꾸만 숨기고 싶다. 나의 과거를. 선생님처럼 온몸의 모공을 열어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여자가 나의 모든 것을 알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이 헛똑똑이 천재 소년은 믿는다. 하지만 윌은 내가 창피한 거야? 아니면 그 반대야?”라는 스카일라의 질문에 더 이상 못 버티고 드디어 윌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 처키(밴 에플렉)와 그 일당들을 보여준다. 친구들도 깜짝 놀란다. 윌이 모르는 사람을 데려온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처키는 윌에게 가장 자주 입는 속옷처럼, 언제나 거기 있는 오래된 골동품 가구처럼 편안한 존재다. 윌은 처키의 우정이 자신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기둥임을 아직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처키는 늘 걱정하고 있다. 내 친구 윌이, ‘우리와는 너무 다른 윌이, 자신의 재능을 평생 썩히지나 않을까,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을까 하고.

 

 

 

 

처키와 친구들을 만난 스카일라는 윌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따스해진다.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사랑에 빠진 여인만이 짓는 농염한 미소를 띠며 스카일라는 말한다. “, 나랑 캘리포니아에 함께 가자.” 윌은 놀란다. 그저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빛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도. 윌은 스카일라의 품에 안겨서 정신없이 행복해하다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그래도 되겠어?” “그럼.” 스카일라의 표정은 이미 결정이 끝난 듯 단호하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몰라. 그냥 알아.” 스카일라의 눈은 행복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직관을 믿는 사람,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의 단단한 미소.

 

윌은 두렵다. 증명할 수 없는, 확신할 수 없는 일에는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또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르니까. 또다시 혼자가 될지 모르니까. “이건 굉장히 심각한 결정이야. 캘리포니아에 함께 갔다가 내게서 네가 싫어하는 점이 있다는 걸 알면, 같이 가자고 했던 말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쯤엔 우리 관계도 깊어져서, 취소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마지못해서 함께 살게 돼.” 윌은 마치 가상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그들의 미래를 최대한 부정적으로 예측한다. 스카일라는 용기를 내어 사랑 고백을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것처럼, 이미 상처 입은 표정이다. 이제 액자의 프레임을 완전히 떼어내고 사진속의 인물, 그 사람의 날것의 삶에 부딪쳐야 한다. 그들은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연민의 마지노선사랑의 문턱사이에 놓인 아슬아슬한 경계지대를 탈출할 수 있을까.

 

 

 

 

 

8. , , 사랑하지 않아……

 

 

내 귀는 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어찌 네가 편할 것인가.

그리고 내게

네 마음밖에 그 무엇이 들리겠는가.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응시, 문학과지성사, 1994, 109.

 

 

사랑하면, 굳이 청진기를 갖다 대지 않아도 그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고, 사랑하면, 굳이 녹음기를 틀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를 재생할 수 있다. 스카일라의 귀도 윌의 마음 안에 있다. 늘 아무렇지 않은 듯 건들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일삼는 윌의 표정 뒤에 숨은 두려움을, 그녀는 듣는다. 윌도 편하지 않다. 그녀의 귀가 내 마음에 자리했으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녀에게 낱낱이 들키게 되어 있다. 그토록 감추고 또 감췄건만, 그녀는 내 두려움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그 두려움의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그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한다.

 

스카일라: 뭐가 그렇게 두려워?

: 뭐가 두렵냐고?

스카일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있기나 해?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안전한 세계에 살면서 자신이 변하게 될까 봐 아무것도 못하잖아!

: 내 세계가 어떤지 뭘 안다고 그래? 어차피 난 네게 출신 천한 장난감일 뿐일 텐데. 결국엔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부자 놈과 결혼해서 친구들에게 재미 삼아 내 얘길 하게 되겠지.

스카일라: 왜 그런 잔인한 말을? 돈에 왜 그리 집착해? 내가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산을 상속받았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가능하다면 그 돈을 돌려주고 싶었어……. 당장이라도 말야. 아버지와 하루라도 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말야. 두려워하는 건 너 자신이면서 괜히 내게 퍼붓지 마!

: 두려워 해? 대체 내가 뭘 두려워한단 거야?

스카일라: 날 두려워하잖아. 내가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서! 하지만 나도 두려워! 하지만 노력은 해보고 싶어. 적어도 너에겐 정직하고 싶다고!

: 그럼 난 정직하지 못하단 거야?

스카일라: 형제가 열둘이란 거 정말이야? (당황한 윌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자 아직 그들이 나눈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은 스카일라의 방을 나가버리려 한다) 어딜 가는 거야? 가지 마!

: 알고 싶은 게 뭐야? 형제가 없다는 거? 내가 빌어먹을 고아라는 거? 까놓고 얘기할까? 어렸을 때 양부가 담뱃불로 피부를 지졌어. 이건 뭔 줄 알아? 수술 자국이 아니라 놈이 칼로 찌른 상처야! 정말 이따위 것들을 알고 싶어?

스카일라: (그녀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다) 돕고 싶어서 그래!

: 돕겠다고?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한 적 있어? 내가 불쌍해 보여?

스카일라: 널 사랑하니까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

: 헛소리 집어 치워!

스카일라: 널 사랑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해줘. 그러면 다시는 전화도 안 하고 영원히 사라져줄게…….

: , , 사랑하지 않아!

 

 

윌의 마음에 잠긴 스카일라의 귀가 조금만 더 예민했다면, 그녀는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윌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다. 윌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지 않는 한, 그들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그녀의 귀가 조금만 더 밝았다면,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의에 찬 고백이 곧 처음 만나는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진 윌의 반어법이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토록 괴로워할 이유도 없을 테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온몸에 난 끔찍한 상처를 보여주기 싫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자신의 내면을, 자신도 모르게 폭로해버릴 필요도 없을 테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난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마치 자기 자신을 향해 저주를 내리듯 뇌까릴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무방비상태에서 윌의 상처 속으로 돌진하다가 스스로 이마를 부딪쳐 치명상을 입고 만다.

 

 

 

 

스카일라와 숀과의 만남으로 서광이 비쳤던 윌의 삶에는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윌을 세상 밖으로 꺼낸 램보 교수는 윌에게 멋진 일자리를 주선해주지만 윌은 그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다. 맥닐 사의 면접 당일에 친구 처키를 대신 보낸 윌의 만행(!)을 알고 천하의 모범생 램보 교수는 분노한다. “네 시간엔 뭐를 하든 상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주선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면 내 신용까지 영향받게 돼.” 윌은 또 다시 반항기 가득한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말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주선하지 마세요.” 램보는 당혹스럽다. 윌을 감옥에서 꺼내준 것도, 숀과 만나게 해준 것도, 모두 램보 자신인데, 램보를 바라보는 윌의 눈길은 경멸로 가득하다. 더 이상 윌의 눈빛을 참기 힘든 램보도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다. “조금은 감사해야 하는 거 아냐?”

 

윌은 감사는커녕 지겹다는 듯이 램보를 밀어붙인다. 윌이 누워서 떡 먹는 기분으로 쉽게 푼 문제를 램보가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교활하게 이용한다. “감사요? 내게 이런 건 너무 쉬워서 장난 같다구요! 그걸 교수님이 못 풀다니 정말 안됐군요!” 윌은 자신이 푼 문제의 풀이과정을 적은 종이를 보란 듯이 태워버리고, 램보는 그동안 쌓아왔던 완벽한 젠틀맨의 이미지를 형편없이 구기며, 훨훨 타오르는 종이를 살려내느라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슬라이딩을 한다. 램보는 타버린 종이를 붙들고, 더 없이 비애로 가득 찬 표정으로 고백한다. “네 말이 맞아. 난 이걸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넌 재능이 있어. 솔직히 말하면 그걸 눈치 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된다. 널 차라리 못 만났더라면 할 때도 있어. 그럼 밤에 잠 못 이루지도, 세상엔 너 같은 인재들이 많을 거란 생각도, 안 했겠지. 재능을 헛되이 쓰는 걸 보지 않아도 되고 말야…….”

 

램보는 질투와 연민과 애정으로 난마처럼 얽혀 있던 자신의 마음을 그제야 고백하지만 윌은 여전히 냉혹한 시선으로 램보를 쏘아보다 떠나버린다. 이제 모두가 깨달았다. 사랑스럽지만 두려운, 윌에 대한 연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윌에게 진심을 보여준다 해도 윌이 스스로 위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진심 어린 사랑 또한 윌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한다는 것을.

 

 

 

 

 

9. 나는 두렵다, 진짜 나 자신을, 만나게 될까 봐……

 

 

연민은 고통 받고 있는 타자아직 멀쩡한 자신을 가르는 분계선이다. 연민은 고통 받는 타자를 바라볼 때 주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매우 편안한 안전장치다. 연민은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혹은 보수적인 자신의 현상태를 은폐하며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거기에 있다는 괴리감을 심화시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을 공고화한다. 나의 행복이 너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심리, 거기서 연민이 탄생한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154.

 

 

램보도 스카일라도 윌에 대한 연민을 멈추지 않는 한 그와 진정으로 대화할 수 없다. 윌은 스카일라의 사랑을 연민으로 오해하고, 그녀의 사랑이 지금은 진실일지라도, 언젠가는 연민으로 변질될까 봐 두려워한다. 램보는 윌의 천재적 두뇌가 세상에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숀의 입장은 다르다. 숀은 스승이 제자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조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 윌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의 함정을 뛰어넘어 타인과 당당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지식을 어디에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쓸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램보는 인정하지 않는다.

 

 

: 이봐, 내 말 잘 들어. 윌이 왜 현실을 회피하고 왜 아무도 못 믿을까? 그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야.

램보: 젠장! 프로이드 타령 그만 해!

: 그 애가 어떤 앤 줄 아나? 사람들이 자길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나게 만들고 있어. 바로 방어 심리라구, 알아? 그 때문에 20년이나 외롭게 산 애야. 지금 자네가 그 앨 몰아치면 또 그 악순환이 반복돼.

 

 

램보는 빨리, 더 늦기 전에,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숀은 아직 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스스로 길을 찾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램보는 윌이 인생에서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지만, 숀은 윌이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제 숀은 더 이상 에둘러가지 않고, 윌의 상처의 뿌리에 다다를 직선주로를 찾는다.

 

 

: 세상에 너 혼자 있는 것 같니?

: ?

: 영혼의 짝이 있어?

: 무슨 뜻이죠?

: 널 북돋아주는 사람 말야.

: (약점을 들켜 뜨끔한 듯, 그러나 별로 망설이지 않는 척) 처키요.

: 처키는 널 위해 목숨도 내놓을 가족 같은 애지. 그런데 영혼의 짝이란 네 마음을 열고 영감을 주는 존재야.

: (당황한 눈치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런 친군 많아요.

: 이름을 대봐.

: 셰익스피어, 니체, 프로스트, 칸트, 교황님, 로크 등!

: 모두 죽은 사람들이잖아.

: 제겐 아니에요.

: 하지만 대화를 할 수 없잖니. 서로 교감할 수가 없어.

: (시니컬한 표정으로) 뼈다귀만 남아 있겠죠.

: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네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평생 그런 친구는 사귀지 못해. (……) 넌 무엇에 열정을 갖고 있지? 원하는 게 뭐야? 평생 벽돌공으로 산 사람들도 자식만큼은 너와 같은 기회를 얻길 바라고 있어.

: 제가 원한 건 아니에요.

: 그래, 타고났지. 그러니까 원치 않았다는 말로 빠져나갈 생각 마.

: 빠져나가다니요? 게다가 벽돌공이 어때서요? 딴 사람의 집을 짓는 일은 고귀한 거라고요.

: 알아, 우리 아버지도 벽돌공이었어. 날 교육시키려고 허리가 끊어져라 일하셨지.

: 바로 그거예요. 아주 고귀한 직업이라고요. 정비공은 또 어때요? 덕분에 사람들이 출근하잖아요.

: 그래. 모든 직업은 귀해. 40분씩 전철을 타고 가서 대학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청소부 일도 그렇지. 아마 그래서 네가 청소부를 택했을 거다.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보마. 청소부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었어. 근데 왜 하필 세계 최고의 MIT에서 일하기로 했지? (비밀을 들켜 당황한 윌, 그런 윌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숀.) 왜 밤에 칠판 앞에서 어슬렁대며 세계에서 몇 명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푼 거야?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아니 모른 척하는 윌.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 앞에 설 때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앞에 설 때마다, 딴청을 부리거나 위악의 제스쳐를 취한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정 원하는 것은 내 의지의 검열을 넘어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단순명쾌한 질문 앞에서 윌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댄다.

 

그는 셰익스피어, 니체, 프로스트, 칸트, 교황님, 로크 등등 위대한 고인들과 멋들어진 가상 인터뷰를 나누지만 그의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여자 친구에게는 솔직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죽은 멘토들에게는 밤마다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면서 살아 있는 스승 숀과 램보에게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윌. 정말 원하는 게 뭐냐고 다시 한 번 묻는 숀에게, 윌은 목동이 되어 양이나 치고 싶다며 느물거린다.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다보니 진짜 나의 모습이 원래 어땠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한편 스카일라는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윌과 통화를 한다. 윌에게 그토록 박대를 당했건만 스카일라의 사랑은 오히려 깊어진 듯하다. 아직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윌과 함께 떠나고 싶어 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윌에게 손을 내민다. 긴 말은 필요 없다. “,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널 사랑해, 혹은 네가 날 믿지 않아도 난 널 믿어,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스카일라의 속삭임은 그렇게 아프게 가슴을 할퀸다. 윌은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아직도 그녀에게로 완전히 스며들 용기가 없다. 스카일라는 떠나고 윌은 다시 혼자 남는다. 그러나 윌은 정말 혼자였을까?

 

 

 

 

처키: 교수님들과의 일은 어때? 다음 주면 스물한 살이 돼. 일자리 같은 거 마련해주신대?

: 그래, 앞으로 50년간 책상머리에 붙어 있으래.

처키: 그래도 돈은 많이 벌겠다.

: 실험실 생쥐 꼴이 되는 거지.

처키: 그래도 여기서 탈출할 순 있잖아.

: 왜 탈출해? 난 평생 여기서 살 작정이야. 너하고 이웃에 살면서. 애도 낳고 리틀 야구장에도 함께 가고 말이야.

처키: 넌 내 친구니까,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 20년 후에도 여기 살면서 노무자로 일하며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때리고 있으면 널 죽여버릴 거야. 장난 아냐. 정말 없애버릴 거야.

: 젠장, 무슨 소리야?

처키: 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을 가졌어.

: 젠장, 다들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난리야? 난 이 일이 좋다고!

처키: 아냐, 이 빌어먹을 자식! 널 위해서 그러는 게 아냐. 날 위해서라고! 나이 50이 돼도 난 육체노동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넌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 너무 겁이 많아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라고. 병신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거야. 여기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네가 여기서 20년이나 곯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널 깨우고 같이 외출해서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 거야.

 

 

이상하다. 두렵고 무섭다. 평생 나와 함께 술 마시고 마음껏 취하며 세상 뒷담화를 나누고 육두문자로 난무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몸싸움도 하고 음담패설을 하며 함께 늙어갈 것만 같던 배꼽 친구 처키. 내 친구 처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사람이, 너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예고도 인사도 없이 나와 헤어지는 것이 꿈이라니, 그게 너의 우정이라니.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었을 것 같은 구원, 혹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늘 함께 망가지던친구 처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윌의 눈빛은 깊게 흔들린다. MIT 교수 램보와 최고의 정신과 의사 숀과 매력적인 하버드생 스카일라의 삼중협공에도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던 윌의 마음의 문이, 드디어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걸까.

 

 

 

 

 

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이제 윌과 숀의 심리 상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스물한 살이 된 윌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인생을 밝혀줄 소중한 멘토를 얻었다. 숀으로 인해 윌은 자신의 빛을 가리고 있던 어둠의 실체와 대면했다. 윌의 고통은 단지 과거의 상처들만이 아니었다. 윌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내가 고통의 근원이다라는 죄책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잇따라 일어나는 불행의 씨앗이 바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어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떠나도록 방치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 그것은 모든 게 내 탓이다혹은 나는 저주받은 존재다라는 치명적인 죄책감을 낳았다. 숀은 그런 윌의 자책감을 알고 있다. 숀은 자신의 과거 또한 윌과 비슷한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윌도 처음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담담하게 고백하기 시작한다.

 

 

: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셨다. 늘 고주망태였지. 완전히 술에 찌들어서, 두들겨 팰 사람을 찾곤 했지. 난 엄마와 동생이 맞지 않게 하려고 먼저 덤볐지. 반지를 끼고 계신 날이면 더 볼만했어.

: 그 남자는…… 늘 탁자에 렌치와 각목과 혁대를 늘어놓고는, 저더러 선택하라고 했죠.

: 나 같으면…… 혁대로 하겠다.

: 전 렌치를 택하곤 했어요.

: ?

: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었죠.

: 네 양부였니?

: ……. 제 평가 결과는 어때요? 애정 결핍 같은 건가요?

: 이 기록들…… 모두 다 헛소리야. 네 잘못이 아냐.

: 알아요.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네 잘못이 아니야.

: 알아요.

: (숀은 윌의 내장기관까지 다 뚫어버릴 듯한 깊은 눈빛으로 윌을 바라보며 다시금 힘주어 말한다) 네 잘못이 아냐.

: 안다고요!

: (숀은 점점 윌을 벽 쪽으로 몰아세운다) 아냐, 넌 몰라. 네 잘못이 아니다.

: (윌은 숀의 집요한 반복에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안다니까요!

: (다시금 소름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같은 문장이지만 매번 다른 울림으로 윌에게 다가간다) 네 잘못이 아냐.

: (감정이 폭발하며) 알았으니까 성질나게 하지 말라구요!

: 네 잘못이 아니야.

: (이제는 절규하는 윌) 제발, 성질나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 선생님만이라도!

: (숀은 여전히 놀라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한다. 네가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숀은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네 잘못이 아냐.

: (윌은 그제야 숀의 메시지를 알아듣고, 처음으로 울어버린다. 그리고 숀에게 안겨서 마음껏 운다) 젠장, 정말 죄송해요.

: (윌을 힘껏 품에 안으며) 다 잊어버려.

 

 

 

 

내가 나를 해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인간을 분석하는 그 어떤 이론도 살아 있는 인간의 상처에 완전히 다다를 수는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실한 개입은 연민이나 분석, 해부나 비판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서로의 존재에 스미고 번지는 행위를 통해 천천히 일어난다. 겹겹이 쌓인 위악의 제스처들, 그 두터운 연기력의 각질을 벗겨내면, 윌의 상처의 뿌리, ‘죄책감이 놓여 있다. 나는 재수 없는 아이, 내가 닿는 모든 것은 다치고 상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죄의식. 그곳을 향해 숀은 매번 다른 울림으로 번지는 주술적 언어, ‘네 잘못이 아니야!’로 다가갔다. 그 뿌리 깊은 죄의식을 떨쳐버리는 순간, 윌은 자유가 된다. 더 이상 심리 상담 같은 건 필요 없어진다. 상담 마지막 날, 윌은 자신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배우려 하지 않던 이 오만한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게다가 그토록 윌의 취직을 바라던 램보 교수가 소개해준 굴지의 회사 맥닐 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윌은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멋진 직장을 찾은 것이다.

 

 

: 이걸로 끝인가요? 치료는 끝난 거예요?

: 그래. 넌 완치됐어. 이제 자유야.

: 저기, 선생님께 정말…….

: 말 안 해도 알아. 네 마음을 따라 가렴. 그럼 괜찮을 거야.

 

 

윌은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그 어떤 부모 형제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 처키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사슬로 자식을 옥죄는 부모가 아니라, 우정이라는 빛으로 친구의 어둠을 밝히는 처키와 그 일당들. 그들은 윌의 스물한 살 생일 선물로 자동차를 선물해준다. “축하한다, 짜샤!” 돈 없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버려진 부속품들을 모아 뚝딱뚝딱 정성 들여 만든, ‘빈티지형 자동차를 보며 윌은 자신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돈으로 살 수도 다시 기억하여 만들 수도 없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윌 헌팅 표 DIY 자동차. “나하고 빌리하고 부속을 모으고 모건이 매일 구걸을 좀 했지. 빌리하고 내가 엔진을 새로 만들었어. 스물한 살 생일 축하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못생긴 차는 처음 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윌의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덧없는 우울의 표정이 어느덧 완전히 걷혀 있다.

 

 

 

 

 

11. 나를 잊어 너를 꿈꾸는 절실함

 

 

다음 날 아침, 처키는 여느 때처럼 어슬렁거리며 고물 자동차를 끌고 윌의 집으로 간다. 헤이, , 어서 나와! 쿵쿵쿵!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늘 졸린 눈을 비비며 건들건들 처키를 향해 다가오던 윌이 보이지 않는다. 처키는 놀라움과 상실감이 복잡하게 얽힌 얼굴로 윌의 텅 빈 방을 바라본다. 이제 정말 내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윌은 기별도 예고도 없이 떠났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윌이 드디어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제 윌을 볼 수 없지만 행복하다. 처키는 만족스러운 듯, 슬픔 따위는 이미 날려버린 듯, 여유롭게 웃으며 차에 탄다.

 

 

 

 

한편, 골치 아픈 제자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뒤로 하고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려던 숀은 우편함에 꽂혀 있는 쪽지를 발견한다.

선생님. 램보 교수님이 제 일자리 때문에 전화하시면,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꼭 잡아야 할 여자가 있거든요!”

윌은 젊은 시절의 숀을 제법 그럴 듯하게 흉내낸 것이다. 첫눈에 반한 여자를 잡기 위해 역사상 최고의 야구 시합 입장권을 날려버린 숀의 로맨틱한 정신을 계승한 윌의 편지를 보며, 숀은 투덜거린다. “망할 자식, 감히 내 흉내를 내다니!” 숀은 그제야 모든 걱정을 덜어놓은 듯 행복한 표정이다. 윌은 멋진 직장으로의 취직을 포기하고, 스카일라를 찾아 떠난다. 취직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치명상을 입고 홀로 떠난 연인 스카일라는 다시는 잡을 수 없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스스로 자폐를 선택한 천재 소년 윌 헌팅은 이제야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풀 패키지로 세팅되어 있는 완전한 사랑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미래의 불안정함을 함께 견디는 것, 다만 둘이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윌의 고물 DIY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상쾌하게 활주하며 영화는 끝난다.

 

 

 

 

수전 손택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물자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버티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처럼사랑하고, ‘아주 좋은 시절처럼꿈꿀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단지 의식주뿐 아니라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감동적인 것을 꿈꿀 권리가 필요하다. 수전 손택이 감행했던 어떤 날카로운 평론보다 매혹적인 평론 활동,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던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했던 일이었다. 모두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수전 손택에게 물었다. 언제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연극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게다가 슬픔을 잊을 만한 유쾌한 공연도 아니고,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너무 우울하지 않냐고. 도대체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오기는 하겠냐고. 수전 손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폭격으로 망가진 사라예보의 이미지만 생각하느라, 사라예보가 과거에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수도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 재능 있는 배우들이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듯이 교양 있는 관객들도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다. 단지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배우들과 관객들이 극장을 오가다 폭격을 맞거나 총격을 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관 밖을 나섰을 때뿐만 아니라, 침실에서 잠을 잘 때, 부엌에 뭔가를 가지러 갈 때에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전 손택, 김유경 역, 강조해야 할 것, 시울, 2006, 407~408.

 

 

그녀는 오래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사라예보를 위해, 사라예보를 향해 창작된 듯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며 사라예보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물도 없고 화장실도 고장난 열악한 상황에서, 매일 폭탄 소리를 들으면서도, 언제 우리가 공연 중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자유,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사라예보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뉴욕 비평가와 함께했다. 그녀는 전쟁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현실도피적인 오락물만을 원할 것이라는 통념과 싸웠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라예보 사람들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예술로 변형하고 확인하는 것에서 오히려 힘과 위안을 얻는다.”(위의 책, 409) 전쟁이 일어나도, 내 옆의 사람이 죽어가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뜨겁게 확인하는 길은, 단지 우리가 먹고 입고 싸는 동물만이 아님을 깨닫는 일은, ‘예술과 함께하는 일임을, 수전 손택은 온몸으로 증명했다.

 

 

문화, 특히 진지한 문화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라예보 사람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 존엄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 예를 들면 화장실이 오물통이 되지 않도록 변기에 물이 나오게 하는 데 거의 하루 종일 매달리면서 굴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공공장소로 가서 줄을 서 떠온 물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다. 이런 굴욕감은 공포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사라예보의 연극관계자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해왔던 일을 계속한다는, 즉 자신들이 정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고작 물 긷는 사람이나 인도주의적 원조를 받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사라예보에서는 자신의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을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와 배우들은 월급을 받지 않았다. 다른 연극인들도 기꺼이 우리 리허설에 참석하곤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매일 극장에 간다는 사실이 좋아서였다.

연극을 공연한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성을 표현하는 즐거운 일인 셈이다.

-위의 책, 412~413.

 

 

월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조명도 화장실도 물도 없는 무대에서, 배우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호텔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빵을 찾아내 스텝들과 나눠 먹으며, 고도나 클린턴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오지 않는 소품을 기다리며, 수전 손택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2004, 208.

 

 

내 몸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앓는다는 것. 그것은 연민이나 동정이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니라, 그들 삶을 향한 완전한 몰입, 나를 잊어 너를 꿈꾸는 절실함이다. 아무런 실용성이 없지만, 나 아닌 타자욕망을 상상하게 만드는 공감의 장치, 내가 아닌 타자의 삶을 살아내는 망아(忘我)의 탈주. 그것이 예술의 힘 아닐까. 수잔 손택은 문학은 자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이 모든 불운의 감옥에서 탈주하여 자유의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여권이라고.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인용

목차 / 지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