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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 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 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건방진방랑자 2021. 7. 22.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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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질병에 대한 가장 악질적인 환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범죄가 범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질병도 환자의 소유물이라는 환상이 아닐까. 아픈 사람 스스로가 병을 만든다든지, 환자 자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범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듯 질병 또한 환자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에이즈 인권 운동 포스터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단지 내가 HIV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내가 죽음의 전문가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오직 을 향해 쏟아 붓고 있다.” “나는 HIV 보균자 그 이상의 존재다I’m more than HIV-Positive.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신나게 춤추러 가고 싶고, 포켓볼도 치러 가고 싶다. 내 친구들과 함께.”

 

그렇다. 사람들은 누군가 HIV 보균자라는 정보를 입수한 순간, 그 사람의 이름도, 존재도, 희망도, 취미도 깡그리 잊어버린다. 단지 ‘HIV 보균자라는 사실만으로 (아직 발병하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존재 전체가 그 새빨간 낙인 속에 갇혀버린다.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낱말을 떠올리는 순간 동시에 죽음을 떠올린다. 마치 에이즈 환자라면 당연히 죽음에 대해서는 훤하게 통달했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정작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이다.

 

윌의 상처 또한 그렇다. 사람들은 윌 헌팅이 천재라는 것을 안 순간 그가 왜 천재답게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끊임없이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지, 자신의 재능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써먹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램보 교수는 윌의 이 병적인 행동만 교정하면 윌이야말로 세계 수학계를 뒤흔들 재목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윌의 천재적인 재능이 그의 트라우마 혹은 정신질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윌의 입장에서 이 공격적인 태도는 질병의 발현이라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 혹은 공격적인 방어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어쩌면 이 영화의 트릭(trick, 속임수)이다. 그는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를 천재라는 화려한 커튼 뒤로 철저히 은폐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상처는, 그의 고통은 천재라는 꼬리표로도, ‘트라우마라는 진단으로도, ‘자기애성 인격장애라는 병명으로도 완전히 담을 수 없는 불가해한 미로이므로.

 

램보 교수는 구치소에 갇힌 윌을 빼내기 위해 협상을 한다. 판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보호하에 윌을 석방하기로. 램보 교수는 윌에게 면회를 가서 그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첫 번째 조건은 매주 자신과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조건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윌은 피식 웃는다. 램보는 심각하다. “내겐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거든. 둘 중 어느 조건이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남은 복역기간을 채워야 해.” 윌은 이 조건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램보 교수와 함께 하는 수학 공부는 견딜 만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죽을 맛이다.

 

 

 

 

윌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치료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더불어 정신과 치료의 엄숙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마치 구원의 대상인 양 그를 딱하게 바라보는 의사들의 눈빛을 그는 견디지 못한다. 윌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에게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치료로 해결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언한다. 최면을 걸려는 의사 앞에서 최면에 빠진 양 가짜 연기를 하고, 상담을 하려는 의사에게 당신 게이지? 지금도 날 덮치고 싶지?”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치료는, 아니 환자라는 낙인은 윌을 더욱 나쁜 상태로 몰고 간다.

 

 

질병은 두 가지 가설을 통해 확대됐다. 첫 번째 가설은 모든 사회적 일탈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범죄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었으며, 범죄자는 비난받거나 처벌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가 그를 이해하듯이) 이해되고, 치료받고, 교정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 가설은 모든 질병이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질병은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사건으로 해석됐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 원했기 때문에 병에 걸리게 된 것이며, 의지를 사용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으며, 질병으로 죽지 않기를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다고 믿도록 유도됐다. (……) 질병을 심리학적으로 다루는 이론은 환자를 비난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스스로 질병을 가져 왔다는 통고를 받게 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병을 앓을 만한 짓을 했을 것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86~87.

 

 

지금 윌에게 필요한 것은 진단이나 치료가 아니다. ‘너의 성격 때문에 너의 천재성이 질식당한다느니, ‘너의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면 너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느니, 이런 식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은 윌에게 먹히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해줄 사람이 아니라, 겹겹이 닫혀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그의 마음의 문을 열어줄 사람이다. 그의 천재적인자기방어의 치밀한 방범시스템을 뚫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 자신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줄 사람. 이 가망 없는 게임에 드디어 구원투수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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