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신의 불행이 당신의 질병을 부른다?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아프답니다. 폐 속의 질병은 내 정신적 질병이 넘쳐흐른 것에 불과하지요.” 이런 식으로 ‘정신적 요인’을 질병의 원인으로 치환시키는 사고법은 ‘당신의 성격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 ‘암을 유발하는 특별한 성격이 있다’, ‘암 환자는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된 사람이다’라는 식의 당혹스런 논리를 대중적으로 유포시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16세기 후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부터 유포된 낭만적 환상이었다. 감정이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논리, 질병의 원인 자체가 개인의 불행 혹은 악행에 기반한다는 상상은 수전 손택이 열렬히 비판했던 ‘질병에 대한 은유의 시스템’이었다. 질병을 정신적으로 치환할수록 질병의 실체는 타자화된다. 모든 일탈이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됨으로써 사람들은 일탈의 원인 제공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순환논리에 빠져든다.
수전 손택이 보기에 이런 관점은 질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덮어씌우는 폭력이며, 의학적 치료의 필요성과 과정을 알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꺾어버릴 뿐 아니라, 환자가 의학적 치료자체를 회피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환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당혹스런 환상이 유포되는 것이다.
윌은 ‘소년의 불행이 정신질환을 낳았고, 소년의 정신질환이 범죄를 낳았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기성세대의 판결에 저항한다. 윌은 자신의 불행과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모든 권력에 구토를 느낀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천재 길들이기를 위한 정신분석 맞춤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램보의 노력을 무시한다. 램보의 대학 동창 숀(로빈 윌리엄스)은 램보가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정신과 의사다.
윌은 이번에도 또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려는 의사의 속셈을 속전속결로 격파하겠다는 듯, 시건방진 표정으로 숀의 진료실을 두리번거린다. 윌은 ‘너의 불행은 네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 때문에 너는 악행을 저지르거나 질병에 걸린다’는 식의 태도를 혐오한다. 그러나 윌 또한 이러한 전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윌은 숀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 스민 내면의 상처를 투시하여 숀의 인생을 속속들이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그림 한 장으로 숀의 인생 전체를 MRI 스캐닝하듯 훤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득의양양하다.
윌: (건들거리며) 누구누구처럼 선생님도 곧 귀를 자를 것 같네요.
숀: 그래? 당장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서 고흐로 이름이라도 바꿀까?
윌: 풍전등화(風前燈火)라는 말 알아요? 어쩌면 선생님이 그런 격인지도 모르죠.
숀: 어째서?
윌: 폭풍 속의 항구처럼 위태위태해 보여요. 머리 위의 사나운 폭풍우와 집채만 한 파도. 게다가 노는 부러질 것 같고. 너무 놀라 혼비백산(魂飛魄散)할 지경이라 있는 힘을 다해 항구로 치닫는 꼴이라구요. 어쩌면 힘든 현실을 피하려고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도 모르죠.
숀: 맞아, 그거야! 그러니까 직분을 다 해야지. 빨리 시작하세(숀은 그 정도의 예리한 분석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인정한다. 그러나 윌은 얼핏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 속을 꿰뚫어볼 듯한 표정으로 숀에게 뇌까린다.).
윌: 잘못된 짝과 결혼했나 보군요.
숀: (이번에는 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입 조심해. 조심하라구, 알았어?
윌: (숀의 분노에도 아랑곳 않고 더욱 잔인한 표정으로, 더욱 오만하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숀을 밀어붙인다) 내가 맞춘 거죠? 부인을 잘못 얻은 거죠? 왜요? 배신하고 도망갔어요? 딴 남자랑 눈 맞아서?
숀: (윌의 멱살을 잡고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다시 내 아내를 모욕했다간 널 그냥 안 두겠어. 그냥 안 두겠다구! 알아들었어?
윌: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을 애써 숨기며 애써 쿨한 척) 시간 다 됐네요.
숀: 그렇구나.
윌은 웬만한 의사나 교수의 실력보다 자신의 직관과 지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윌 스스로가 ‘나보다 나은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윌은 이번에도 자신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의 자존심을 가차 없이 꺾어 자신에게는 치료가 필요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숀의 붓 터치와 색감을 분석하여, 숀의 심리를, 숀의 과거를 난도질한다. 숀의 표정은 지금까지 윌에게 봉변을 당한 다른 의사들처럼 ‘오늘 똥 밟았네!’ ‘재수 옴 붙었네!’ 같은 표정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처 입은,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이다. 윌은 숀의 고통을 규격화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숀의 과거를 도륙한다. 이로써 숀은 말썽꾸러기 윌이 처음으로 끝까지 상담 시간을 지킨 생애 최초의 정신과 의사로 등극한다. 결과는 ‘막돼먹은’ 윌 군의 판정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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