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색 & 계(Lust & Caution): 욕망과 금지의 끝없는 이중주
욕망과 징계는 언제나 커플처럼 붙어 다닌다. 『색 & 계』의 영어 제목은 “Lust and Caution”이다. 이 제목은 직설적이면서도 암시적으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명징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Lust’라는 단어를 보며 채워지지 않는 은밀한 열망을 떠올리고 ‘Caution’이라는 단어를 보며 욕망에 천형처럼 따르는 가혹한 징계를 떠올린다. 영화 제목처럼 그들의 삶은 끊임없는 욕망과 경계, 열망과 경고, 정욕과 징벌의 반복으로 점철된다. 그들은 더없이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에도 “이러다 들키겠어요”라며 에로틱한 분위기를 삽시간에 깨버리는가 하면, 오랫동안 서로를 목마르게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앞으로 다신 이 방에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차갑게 뇌까린다. 그들은 조금씩 서로에 대한 ‘경계(caution)’를 풀면서 자신들의 숨김없는 ‘욕망(lust)’의 맨얼굴과 만나게 된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그녀를 열망해왔으면서도 마치 열정에 빠진 자신을 저주하듯 그녀의 몸을 학대한다. 이 위악적인 제스처 속에 그의 철벽같은 영혼을 침식하는 균열이 시작된다. 그는 최대한 그녀에게 ‘악한(惡漢)’이 됨으로써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공포를 도착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의 성기를 통해 들어온 그 남자는 그녀의 눈을 통해 다시 아름답게 반사된다. 그는 폭력으로 그녀를 장악하여 그녀의 영혼을 피 흘리게 했지만, 그의 폭력에 화답하는 그녀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애틋하다. 그는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갈 때 그의 영혼도 함께 두고 온 것을 깜빡 잊어버린다. 그녀의 성기를 통해 들어간 그의 영혼은 그녀의 몸을 관통하여 온몸의 혈관과 세포로 번진 후, 다시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그를 향해 따스한 빛을 뿜어낸다. 이제 그녀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그를 사로잡은 듯한 당당함으로 그를 가진다. 무력한 사냥감처럼 그의 일방적인 욕망에 희생당했던 그녀는 처음 만나는 욕망의 용광로에 스스로 달아올라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제의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철두철미한 계율로 욕망의 비상구를 겹겹이 틀어막고 있던 두 사람은 ‘계(戒)’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색(色)’의 임계점을 발견하는 순간 끝내 완전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첩보원 왕 치아즈의 마지막 미션은 그를 암살 예정 공간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첩보원 왕 치아즈의 명령을 사랑에 빠진 막 부인은 거역한다. 막 부인의 간절한 욕망을 왕 치아즈의 연약한 징계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암살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 이 선생은 그녀에게 너무 반짝거려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지를 선물한다. 죄책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엄습하자 반지를 빼내려는 그녀에게 이 선생은 말한다. “그대로 끼고 있어.” 반지 낀 그녀의 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따스하다. “이렇게 귀한 걸 끼고 거리로 나가기 두려워요.” 이 선생은 어느새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바싹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지켜줄게.” 이렇게 달콤한 언어는 천하의 냉혈한 이 선생에게서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순간 그녀는 그들의 완전한 사랑을 가로막던, 아직 찾지 못한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을 발견한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의 진정을 알아버린 그녀는 계율을 이탈한다. “어서…… 가요! 어서!” 그 순간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굳어진다. 암호처럼 은밀한 그녀의 속삭임에 담긴 수천 가지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는 빛의 속도로 도망친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년에 걸친 기나긴 첩보 게임은 허망하게 끝난다.
그녀가 속했던 항일운동 조직은 일망타진된다. 그는 본래 냉혹한 승부사였으므로 망설임은 없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을, 그녀의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이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당혹스럽다. 왕 치아즈. 그가 한 번도 엿보지 못한 그녀의 내면이 순식간에 한 화면에 펼쳐진다. 그의 부하는 왕 치아즈의 행적을 소상히 보고한다. “모두 여섯 명의 대학생들로 과거 홍콩에서 애국 극단에 참여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왕 치아즈. 홍콩 대학의 연극으로 신문에도 났었습니다.” 그는 분노보다도 더 큰 상실감에 절망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 절망을 누설할 수 없다. 부하는 그녀가 갖고 있던 ‘반지’를 내놓으며 전리품을 수거한 병사처럼 말한다. “선생님 반지입니다.” 그 순간 간신히 가장된 아슬아슬한 평정은 무참하게 박살난다. “내 거 아냐!”
“내 거 아냐!”라고 울부짖는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수없이 다양한 의미들이 뿜어져 나온다. 서로 모순되지만 모두 저마다 뜨거운 사실인, 다채로운 의미의 스펙트럼이 쓸쓸하게 흩뿌려진다. 그는 화면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반지는 나와 상관없어.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이니 내 것이 아니야. 너희들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반지가 아니야. 이런 방식으로 돌려받아서는 안 돼. 나는 이 반지가 아니라 반지를 낀 그녀의 손이 보고 싶었어. 이 반지는 살아 있는 그녀의 것이야……. 그녀를 위해 반지를 준비하던 그때는 몰랐다. 그 반지가,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랑의 표식이, 채 24시간도 안 되어 죽음의 풍크툼이 되어 그의 삶을, 그가 믿었던 온 우주를 파열시키는 독화살로 변해버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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