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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5. 내가 떠나온 세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지상에서 영원으로, 초인의 오디세이] - 5. 내가 떠나온 세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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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떠나온 세계,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사람들이 노동을 찬미하고 노동의 축복에 대해 지치지 않고 말할 때 나는(……) 모든 개인적인 것에 대한 공포를 본다. (……) 이런 노동이야말로 최고의 경찰이며, 그것이 모든 사람을 억제하고 이성, 열망, 독립욕의 발전을 강력히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낀다. 왜냐하면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 걱정, 애정, 증오를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상 작은 목표를 겨냥하면서 수월하고 규칙적인 만족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사회는 보다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안전이 현재는 최고의 신성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191.

 

 

도무지 길들이기 힘든 개인의 야성을 빼앗는 가장 효과적인 비결은 노동을 통해 개개인의 신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이 최고의 경찰이라는 니체의 날카로운 성찰은, 감옥에서야말로 훌륭하게 적용된다. 감옥에서는 노동이 최고의 간수다. 숲 속을 마음껏 질주하던 야수들을 규칙적인 생활과 소모적인 노동이라는 철책에 가둠으로써, 야수들은 가축으로 훈육된다. 쇼생크의 죄수들도 이러한 노동의 철책에 감금된다. 이번에는 야외 노동이다.

 

 

 

 

죄수들에게는 임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노동 착취인가. 쇼생크 감옥은 앤디가 복역한 지 3년이 되던 해, 감옥 근처 공장의 지붕 보수공사에 죄수들을 동원한다. 이 보상 없는 고된 노동 뒤에는 뜻밖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감옥 바깥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점이었다. 앤디와 레드는 이 보수공사에 동원되는 행운(?)을 누린다. 감옥 바깥의 공기를 단 한 번이라도 마시고 싶은, 레드의 앙큼한 뇌물 공세(간수들에게 담배 한 갑씩!)’ 덕분이었다.

 

 

 

 

고분고분하지 못한 죄수들을 폭행하는 데 엄청난 재능(?)을 선보인, 악명 높은 간수 하들리. 그는 죄수들의 노동을 감독하면서 동료 간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몇 년 전에 죽은 줄만 알았던 친형이 얼마 전에 죽어 유산을 남겼는데, 유산이 백만 달러나 된다는 거였다. 자기 몫으로 35천 달러를 남겼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나머지, 세금 때문에 한 몫챙기기도 힘들겠다는 투덜거림이었다. 세금이 너무 많아서 새 차 한 대 뽑을 돈 밖에는 안 남을 거라고 불평하는 하들리의 중얼거림을 앤디도 듣는다. 묵묵히 지붕 공사에 참여하고 있던 앤디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겁도 없이 하들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간수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까 걱정이 된 레드는 앤디를 말려보지만 이미 앤디는 간수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중이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앤디가 던진 질문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들리 씨. 아내를 믿으십니까?” 하들리는 갑자기 자신에게 꽂힌 난데없는 질문에 놀라 앤디의 멱살을 맞잡고 지붕 끝으로 몰아세운다. 일촉즉발의 순간, 간수가 멱살을 잡은 손만 놓으면 앤디는 지붕 밑으로 떨어져 즉사할 참이다.

 

 

하들리: 네가 죽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앤디: (멱살이 붙들려 숨을 제대로 못 쉬면서도 차분하게 묻는다) 아내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냐는 겁니다.

하들리: (앤디의 멱살을 더욱 바짝 잡아당기며) 계속 나불거려봐. 확실히 죽여줄 테니까.

앤디: 당신이 아내를 믿는다면 그 돈을 고스란히 가질 수 있어요. 35천 달러요.

하들리: 35천을 전부?

앤디: 전부요. 잔돈까지 빠짐없이 전부 다.

하들리: 설명해봐.

앤디: 아내에게 그 돈을 주는 겁니다. 국세청은 6만 달러까지는 1회 한도로 배우자 양도를 허락하거든요.

하들리: 세금으로 안 뜯어가고?

앤디: . 1센트도 건드릴 수 없죠.

하들리: . 네가 바로 그 은행가로군.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나더러 너처럼 감옥살이 하라는 거야?

앤디: 합법적인 거예요. 국세청에 물어보세요. 똑같이 말할 거예요. 직접 조사해 보세요. (……) 그래도 서류 작성할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하들리: 제기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들!

앤디: 변호사 대신 제가 서류를 작성해 드리죠. 비용도 절약되잖아요. 서류만 가져오시면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저희 동료들에게 맥주 세 병씩만 주세요.

하들리: , 동료? 정말 웃기시는군.

앤디: 보통 사람들처럼 그저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제 조건입니다.

 

 

 

 

하들리는 앤디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하지만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한 푼도 안 드는 뜻밖의 행운을 놓칠 수 없었으니 그 기묘한 거래는 성립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예전보다 조금 젖은 듯한, 애잔한 목소리로 이어진다. “쇼생크 감옥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1949년 봄. 지붕을 고치던 죄수들은 아침에 옥상에 둘러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셨습니다. 쇼생크의 악명 높은 간수가 베풀어준 뜻밖의 호의로 말입니다. 그런 냉혈한도 부드러워질 때가 있더군요. 죄수들이 온몸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지붕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니, 마치 우리가 자유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마치 자기 집 지붕 위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죠. 그 순간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듀프레인은 응달에 앉아 휴식을 취했습니다. 얼굴에 묘한 미소를 띤 채, 우리가 맥주를 마시는 걸 지켜보았죠. 간수에게 잘 보이려고 했거나 친구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그는 단지 옛날처럼 보통 사람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찬란한 희열과 가눌 수 없는 슬픔이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앤디는 동료가 권하는 술도 마시지 않고, 자신은 술을 끊었다며, 다만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맞아보는, ‘감옥 바깥의 햇살을 만끽하며. 아무도 앤디를 동료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앤디에게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료였으리라.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동료들이 맥주를 마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이 순간, 정말 감옥 바깥에서 친구들이 시시덕거리며 맥주를 들이키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한없이 평화롭고 자유롭다. 감옥 안의 어떤 폭력과 억압도 막아낼 것만 같았던 앤디의 투명코트는 이렇게 아름다운 기적의 풍경을 연출해낸다. 꼬질꼬질하게 차려 입은 죄수들이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맥주를 마시며 함께 둘러앉아 온몸으로 광합성을 하는, 이 멋진 풍경에는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앤디가 쇼생크 감옥에 최초로 들여온 것은 단지 맥주만이 아니라 맥주보다 알싸한 자유의 바이러스였다. 그는 혼자만의 탈출을 꿈꾼 것이 아니라, 희망 없는 이곳 쇼생크에서도, 창살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햇살처럼 따스한 자유의 틈새를, 함께 발견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이 순간, 그의 몸은 간수의 속박 아래 있었지만 그는 아무도 모르게 유체이탈을 감행하여, 지붕 위를 훌쩍 날아올라 감옥 바깥의 세상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내가 말했듯이 앤디는 보이지 않는 코트처럼 자유를 입고 다녔고 한 번도 죄수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의 눈은 결코 그 예리함을 잃지 않았다. 앤디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긴긴 밤을 보내기 위해 감방 안으로 들어가는 죄수의 걸음걸이-어깨는 축 쳐져 있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어놓는를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앤디는 따듯한 식사와 예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어깨를 곧게 펴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감방을 향해 걸어가곤 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물러터진 야채덩어리와 잘 으깨지지 않아서 덩어리가 그대로 있는 감자, 죄수들이 정체 모를 고기라고 부르는 비곗덩어리와 연골투성이의 고기 비슷한 것 한두 조각과 벽에 걸려 있는 라켈 웰치의 포스터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스티븐 킹, 쇼생크탈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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