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덕 없이는 살 수 없다?
니체는 도덕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인류의 ‘상식’을 의심한다. 니체는 도덕이 인간의 선천적 본성도 아니며 보편적 기질도 아님을 밝혀낸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도덕의 역사적 가변성을 입증하고, 한 시대의 도덕이 다른 시대의 패륜이 될 수도 있음을, 도덕의 가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해왔음을 보여준다. 야스퍼스는 『니체와 기독교』에서 왜 인간이 ‘도덕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변모했는가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계몽의 과정을 통해 ‘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동안의 문명화 과정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외부적 존재’ 없이는 살 수 없도록 길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미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신의 그림자’에 철저히 길들어져 있기에, 인간은 ‘신과 닮은 존재’가 보좌해주는 세계의 안전판 없이는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는 존재로 변모해왔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절대성, 즉 ‘도덕’이라는 ‘신의 대용품’이 필요했던 셈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동안 레드(모건 프리먼)는 가석방 심사를 받고 있었다. 가석방 심사위원은 레드에게 질문한다. “20년을 복역했지요? 사회에 복귀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합니까?” 레드는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이 교화됐음을 주장한다. “네. 저는 준비됐습니다. 감옥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전 변했습니다.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레드의 표정은 절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심사위원은 레드의 서류에 ‘부적격(rejected)’ 판정 도장을 찍는다. 그는 젊은 시절 범죄를 저지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20년 동안이나 별 탈 없이 복역했지만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레드를 비롯한 쇼생크의 죄수들은 자신의 삶이 ‘적절하다/부적절하다’는 판정을 가석방 심사위원으로부터 인증 받아야 할 처지다. 그들은 수많은 변수들을 고려하여 이 죄수가 감옥 밖으로 나가서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살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교화된다는 것’은 바로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는 것이며 ‘계산 불가능한 의외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행위다.
레드는 이 영화의 내레이터이자 쇼생크 감옥의 터줏대감으로서 신출귀몰한 물자공급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담배, 마리화나, 애들 졸업 축하주도 구할 수 있죠. 뭐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인간 백화점이죠. 듀프레인이 와서 영화배우 사진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도 문제없다고 했지요. 듀프레인은 아내와 정부를 죽인 죄로 1947년 쇼생크 감옥으로 왔습니다. 전직 은행 부지점장이었죠.” 듀프레인이 쇼생크에 입성하던 날, 죄수들은 새내기 죄수들을 향해 내기를 한다. ‘신참 죄수들 중에서 누가 먼저 울음을 터뜨릴까’에 내기를 거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현금보다도 소중한 담배를 저마다 내기의 판돈으로 걸며 키득거리는 고참 죄수들. “처음에 듀프레인은 제게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았죠. 그게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레드는 아무도 담배를 걸지 않은 ‘꺽다리 귀공자’ 앤디 듀프레인에게 담배를 무려 10개비나 건다.
이제 감옥에서의 첫날밤이 시작된다. “죄수들은 저녁 점호를 위해 감방으로 돌아가라.”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의 소장 노튼은 죄수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너희는 중죄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나에게 맡겨진 것이다. 첫 번째 규칙. 욕설금지! 내 감옥에서는 신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 그 외의 규칙들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질문 있나?” 듣고 있던 신참 죄수 중 한 명에게서 질문이 터져 나온다. “밥은 언제 먹나요?” 너무나도 ‘초딩스러운’ 질문에 관객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치려는 순간, 소장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지고 간수는 전의를 불태우며 신참에게로 다가간다. “먹으라고 할 때 먹고, 싸라고 할 때 싸면 된다. 알았나? 이 더러운 자식!” 단지 밥은 언제 먹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죄수는 흠씬 두들겨 맞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신참들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이제야 감옥에 온 것이 실감 났다는 듯, 고통받는 동료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투사한다.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죽은 듯이 살아야지, 무사히 살아 나가기만을 빌어야지……. 폭력은 이렇게 인간을 길들인다. 좀더 비굴하게, 좀더 나약하게, 좀더 온순한 존재로 만드는 것. 그것이 ‘교화’의 진정한 목적이다. 소장은 이 ‘교화’의 대리인으로서 마치 자신이 신의 사도인 양 죄수들을 협박한다. “난 두 가지를 믿는다. 원칙과 성경. 너희도 그렇게 될 것이다. 믿음을 가져라. 너희는 내 손에 달렸다. 쇼생크에 온 걸 환영한다.” 소장이 손에 쥔 성경은 마치 이 감옥에서 너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양 신성한 위엄(?)을 과시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이 쓸쓸하게 이어진다. “감옥에서의 첫날밤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처럼 발가벗겨지고 살충제에 범벅이 된 채 돌아다녀야 하죠. 감방에 집어넣어지고 철문이 탕하고 닫히면 그제야 실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은 망가졌다는 것을요. 대부분의 신참들은 첫날밤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됩니다. 항상 몇몇은 정신없이 흐느껴 울죠. 매번 일어나는 일입니다. 단지 문제는 누가 먼저 우느냐 입니다. 이것만큼 재미있는 내기는 없죠. 저는 앤디 듀프레인에게 걸었습니다.” 이어서 감옥 안의 불이 꺼지고 신참들의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된다. 레드의 친구 헤이우드는 장난기가 발동해 자신이 담배를 건 신참(간수에게 폭행당한 바로 그 신참)에게서 눈물을 뽑아내려고 작정을 했다.
“신참. 잔뜩 겁에 질려서 뭐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는 거야? 어이, 뚱보. 내가 말이야. 자넬 소개시켜 줄게. 자넬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남자를 좋아한다고. 특히 백인 뚱보를 말이야.” 간수에게 폭행당한 충격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 나약한 신참은 겁에 질려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여긴 제가 있을 곳이 아니에요. 집에 보내줘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꺼내주세요…….” 간수는 소란스러운 감옥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신참을 ‘처리’한다. 아까보다 한층 더 난폭해진 간수의 린치 앞에서 신참 죄수는 울다 지쳐 두들겨 맞고, 두들겨 맞다 지쳐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퍽, 쿵, 퍽, 쿵. 한 명의 죄수를 때리는 소리는 마치 쇼생크 감옥의 죄수 전체를 집단폭행하는 소리처럼 엄청난 울림으로 감옥의 밤을 뒤흔든다. 레드가 담배를 10개비나 걸었던 앤디는 정작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하다. 감옥의 첫날밤은 그렇게 끔찍한 풍경 속으로 사라져간다.
다음날 헤이우드는 자신이 내기에 이겼다는 생각에 환호작약하며 다른 죄수들에게 담배를 잔뜩 받아내고 기뻐한다. “뚱보 녀석에게 감사의 키스라도 해야겠어.” 헤이우드는 히죽거리며 내기의 전리품에 흡족해한 후, 자신이 놀려먹은 그 신참 죄수의 안부를 묻는다. “타이렐. 자네 의무실 근무지? 그 뚱보 잘 있나?” 타이렐은 대답한다. “죽었어.” 헤이우드와 함께 시시덕거리던 고참 죄수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 신참이 머리를 심하게 맞은 모양이야. 의사도 없었어.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어. 응급처치도 못했다고.” 헤이우드의 표정은 싸늘해지고 모두들 할 말이 없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지금까지 조용하던 앤디가 차분하게 질문을 한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죠?” 모두들 신참의 대담한 질문에 놀란다. 헤이우드는 죄책감 때문인지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뭐라고?” 앤디는 마치 죽은 신참의 이름을 자기 혼자라도 기억하고 싶다는 듯이,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면 그 사람의 죽음이 조금이라도 덜 무의미해지리라는 듯이, 진지하게 묻는다. “누가 그 사람 이름을 아는가 해서요.”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이봐 신참, 네가 무슨 상관이야. 이름이 뭐가 중요해? 이미 죽어버렸는데.”
감옥 바깥에서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던 앤디, 아직도 자신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는 앤디는 이제야 쇼생크의 ‘게임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그 어떤 개개인의 ‘이름’도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앤디 듀프레인’이 아니라 죄수번호 ‘37927’로 불리는 ‘관리 대상’에 불과함을. 이제 성공한 은행 부지점장 앤디 듀프레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아내를 사랑했던 기억은 물론 바깥세상에서의 모든 행복은 차라리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감옥 안의 죄수들은 이미 감옥의 도덕에 길들어졌으며 스스로의 욕망을 감옥의 도덕이라는 잣대로 자기 검열한다. 복종하지 않으면 세 가지 길밖에는 없다. 린치, 독방, 아니면 죽음. 죄수가 내면화한 감옥의 도덕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강제이며 ‘복종의 기술’에 다름 아니다. 즉, 이들에게 도덕의 기초는 ‘선의’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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