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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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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브리콜라주, 인류의 잃어버린 꿈의 조립법

 

 

1. 아마존의 눈물, 아바타의 비명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적()으로 만들어 빼앗아야만 하는가?

-영화 아바타중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는 변덕스럽고, 무의미하며, 불합리합니다. 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전 세계적으로 반복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32.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를 본 후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온 세계가 무의미해졌다”, “판도라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네티즌의 반응도 흥미롭다. 키는 3미터를 훌쩍 뛰어 넘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육체적 감각과 운동신경을 타노난 나비족들이 자연과 진정으로 교감하며 살고 있는 머나먼 행성 판도라. 그곳은 엄청나게 낯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기시감을 자아내는, 환상 속의 공간이다. 무려 162분 동안 3D 입체 영상으로 펼쳐지는 판도라 행성의 삶은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장벽을 녹여버리며 단지 관람이 아닌 영화 속 세계의 시뮬레이션효과를 톡톡히 맛보게 해준다. 아바타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을 머나먼 3인칭의 이야기가 아닌 철저한 1인칭의 직접성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첨단 SF영화가 흔히 보여주는 미래 사회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예상하고 아바타를 접하는 관객들은 오히려 나비족의 원시적 문명이 보여주고 태고(太古)의 삶에 매혹된다. ‘대단한 미래를 감상하러 간 곳에서 오히려 잃어버린 과거를 만나는 셈이다. 매연으로 찌든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있으면 나비족을 태우고 창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던 아크란이 부러워지고, 가로등 불빛과 네온사인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면 식물들 고유의 알록달록한 야광이 발산되어 진풍경을 자아내는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밤이 그리워진다.

 

나비족은 분명 제임스 카메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부족이다. 나비족의 언어도 언어학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인공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족은 그리 낯설지가 않다. 관객들은 나비족에게서 저마다의 가슴 속에 숨 쉬고 있는 이상적인 원시문명의 공간을, 더 이상 야만이라 치부할 수 없는 태고의 삶을 향한 노스탤지어를 발견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눈부시게 창조해낸 판도라는 문명의 습격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아마존의 잃어버린 시간을 재현하는 듯한 슬픈 착시를 일으킨다.

 

 

 

 

아바타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수많은 SF 영화들과 판타지 영화를 빈틈없이 모자이크하여 집대성한 듯한 극단적인 패러디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는그 많은 스토리와 모티프를 과감하고도 노골적으로 패러디한 듯한 이 작품이 자아내는 아찔한 새로움이다. 말하자면 아바타에는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이 미묘하게 공존한다.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늑대와 춤을등의 영화는 물론이고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등의 애니메이션까지 모두 떠올리게 만드는 낯익은 신화적 모티피들이 총출동한 아바타.

 

동서양의 신화적 스토리들을 모두 잘게 썰어 믹싱한 듯한 아바타는 신기하게도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신화의 구조적 동형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신화비신화로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신화 아닌 것을 골라내기 힘들 정도로, 인류가 창조하고 향유해온 이야기들 속에는 신화적 요소들이 크고 작은 비율로 섞여 있다. 동서양 신화들이 갖추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요소들을 오려 붙이면 신기하게도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한 수많은 인류학자와 신화학자들이 도출해낸 신화의 원형에 접근하게 된다.

 

 

 

 

우리는 판타지 영화를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영화라고 생각하곤 한다. 현실과 거리가 머니까, 허황되니까, 그저 상상일 뿐이니까. 하지만 판타지 영화의 대부분이 전형적인 신화적 서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신화적 스토리는 언제나 비현실적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때마다 매혹되는 이유는, 그 신화적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이 숨어 사는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영혼이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자유롭게 비상하는 시간, 바로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 혹은 원시문명 속 야생의 사유가 꿈틀거리는 순간.

 

 

초현실주의는, 철저하게 감각의 논리에 충실하게 되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논리가 마치 자동기계처럼 진행된다는 점을 명백하게 한 바 있습니다. 신화에서 종종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뇌 속의 논리에 가해지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최대한 제거되면, 신화 특유의 논리가 자유롭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화를 이야기하거나 듣고 있으면 엄청난 자유로 가득 차 있는 시공에 체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2003, 20.

 

 

 

2. 언옵타늄을 찾아 판도라에 오다

 

 

신화는 한 집단의 인물들이 다른 집단의 인물들에게서 달아나고 도망치려고 하는 이야기를 펼쳐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추격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 이것은 천상의 권력과 지상의 권력, 하늘과 땅, 또는 태양과 지하의 권력 등등 사이에 초래된 갈등일 수 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101.

 

 

하반신 마비로 고통 받는 전직 해병대 출신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투입되어 머나먼 행성 판도라로 향한다. 에너지 고갈 문제로 신음하던 인류가 마지막 희망으로 점찍은 행성이 바로 판도라다.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족이 사는 영토에는 언옵타늄이라는 신비로운 물질이 있다. 언옵타늄은 1Kg당 가격이 2천만 달러나 되는 엄청난 교환가치를 지닌 광물질인데, 이것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나비족을 이주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비족에게는 아무런 뇌물도 회유도 통하지 않는다. 아바타 프로젝트팀은 은 물론이고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 나비족의 영토에 침투하기 위해 아바타’, 즉 외형은 나비족이고 두뇌는 인간에게 연결된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지옥도 이곳에 비하면 낙원일 것이다!” 아바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 프로그램에 지원한 젊은이들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연설을 시작한다. 나비족을 비롯한 토착민들과 온갖 신비로운 생명체들이 활보하는 판도라 행성에서 인간은 산소마스크없이는 숨을 쉴 수도 없다. 판도라의 자연환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인간에게는 판도라가 공포와 야만의 현장일 뿐이다.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 프로그램에 자원한 병사들뿐 아니라 아바타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모든 연구원과 스태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전형적인 람보형 근육질 마초 남성이며,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부하들을 복종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아바타 프로그램에 관련된 과학자였던 쌍둥이 형이 불의의 사고로 살해당하자, 제이크는 형의 대타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해병대 출신인 제이크는 처음에는 쿼리치 대령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카리스마에 이끌린다.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학자 그레이스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과학자이지 군인이 아니라며 제이크를 못마땅해한다. 형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제이크의 억눌린 감정은 그레이스를 향한 공격적 태도로 표현된다.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를 자신의 충실한 하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제이크가 덥석 물 수밖에 없는 탐스런 미끼를 제공한다. 나비족과 판도라에 대한 데이터를 자신에게 잘 전해주면 건강한 다리를 얻을 수 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3. 복종과 해방 사이

 

 

언옵타늄을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인간들에게 판도라는 단지 정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아직 판도라에 대한 정보를 아바타 사용 매뉴얼정도로만 습득한 제이크도 처음엔 그랬다. 그는 건강한 다리를 얻기 위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노동이 바로 아바타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비참했다. 형의 비명횡사를 제대로 아파할 틈도 없이 형의 대체재로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되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일(전투)도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가 형의 아바타, 아니 자신의 아바타가 될 생명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연민과 비감이 교차한다. 너도 꼭 내 신세 같구나.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고, 그저 주어진 삶의 매뉴얼에 복종해야 하는 구나. 그가 지금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빨리 임무를 완수하고 정상적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거뿐이다.

 

 

 

 

그런데 그가 나비족을 추방하기 위한 스파이 노릇을 하기 위해 아바타의 육신과 링크되는 순간, 그리하여 3미터가 넘는 나비족의 육신으로 변모하는 순간, 그는 뜻하지 않은 엄청난 해방감을 만끽한다. 걷기는커녕 혼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었던 그가 아바타의 육신을 입는순간, 그는 인간의 육신으로 마음껏 걷고 뛰고 구를 수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격정적인 희열을 맛본다.

 

그는 인간이 마실 수 없는 공기를 마시고, 인간이 뛸 수 없는 높이로 뛰고,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감각의 촉수를 내장하게 된 것이다. 야만적이고 열등한 부족이라고 믿었던 원주민의 몸속에 들어가자마자 샘은 완전히 돌변한다. 그는 두 다리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던 정상적 인간일 때조차도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의 차원과 조우한 것이다.

 

 

신화학의 초판을 쓰고 있을 때, 저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문제와 마주쳤습니다. 대낮에는 샛별을 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부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별건 대낮에 샛별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천문학 전문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낮에 샛별이 내뿜는 빛의 양을 알면, 일부 사람들이 샛별을 본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항해술에 대한 오래된 논문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명사회에 속한 옛날 선원들도 환한 대낮에 유성을 완벽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눈을 훈련시켰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볼 수 있었을 겁니다. (……) 문자가 없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과 천연자원에 대해 엄청나게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44~45.

 

 

 

 

 

4. 내가 아닐 때, 가장 나답다?

 

 

저는 한 번도 제 개인의 정체성을 깨달았던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제 자신이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든지 나를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입니다.

-레비 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16.

 

 

나비족의 여전사 네이티리는 평화로운 판도라를 침입한 외부자 제이크를 죽이려 하지만 불현듯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계시를 느끼고 차마 제이크에게 활을 겨누지 못한다. 나비족의 여신 에이와의 계시는 그녀를 비롯한 모든 부족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네이티리는 나비족 전체를 소집한 부족회의에서 제이크가 정말로 에이와의 계시에 적합한 인물인지 결정하기로 한다. 의심과 호기심이 반반 섞인 얼굴로 제이크를 나비족의 모임 장소로 데려가는 네이티리. 미묘한 적의와 야생적 관능이 동시에 깃든 네이티리를 묵묵히 따라가며 제이크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비족 전체가 모인 회의에서 제이크의 생사 여부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 다가온다. 모두가 낯선 이방인의 침투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네이티리의 어머니이자 부족의 치유자역할을 하는 모앗만이 제이크를 살려두고 지켜보자고 말한다. 네이티리는 제이크의 개인 교습을 맡아 나비족의 문화와 야생의 밀림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준다. 단지 건강한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아바타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제이크는 난데없는 스파르타 훈련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네이티리의 훈육은 나비족의 언어와 문화는 물론 야생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온 몸의 감각구조 자체를 바꾸는 맹훈련이었던 것이다.

 

 

 

 

마지못해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된 제이크의 눈에서는 어느새 싱싱한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점점 더 아바타에 링크되는 시간’, 즉 꿈꾸는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매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바타의 꿈속에서 그는 불편한 다리도, 형의 갑작스런 죽음도, 복잡한 세상사도 모두 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나비족의 푸른 꿈을 이식 당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걱정스런 세뇌이겠지만 나비족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동화. 지옥보다 더 지옥 같다는 루머의 진원지 판도라는 알고 보니 더 없이 매혹적인 비밀로 가득한 꿈의 놀이터였다.

 

 

 

 

제이크가 아바타의 꿈에서 깨어나면 삭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아바타 제이크처럼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자신의 의지대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꼭두각시 신세. 그는 점점 네이티리와 함께 하는 아바타 체험, 아니 나비족-되기의 시간이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생생함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고 있음을 깨닫는다. 제이크와 함께 아바타 체험을 하고 있던 과학자 그레이스는 이런 제이크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 챈다. 그레이스는 제이크가 쿼리치 대령에게 건강한 새 다리를 구실로 매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눈감아준다.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어떤 과학자들보다 빠르게 아바타 훈련에 적응하는 제이크를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눈길이 점점 따스해진다.

 

 

 

 

한없이 적대적이기만 했던 판도라의 밀림은 점점 매혹적인 신비와 풍요를 상징하는 암호로 변해간다. 제이크의 임무수행지역에 불과했던 판도라는 제이크에게 때로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따스한 노스탤지어를, 때로는 인류가 잃어버린 낙원의 기억처럼 신비로운 감성의 놀이터로 변모해간다.

 

아마 레비스트로스도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원시부족의 문명탐험을 하며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위험하다, 야만적이다, 무모하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온갖 주변의 걱정들을 뒤로 하고 그는 브라질 대륙의 마투그로수를 탐사하며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의 원시 문명을 체험했다. 아마도 선뜻 나서지 않는 위험한 여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원시 부족 탐험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위험을 상상하는 능력을 떨어졌기에 닥쳐올 위기를 모르고 지나친 것이 오히려 원시 문명 탐험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에리봉: 탐사 기간을 잘 견뎌내자면 상당한 용기와 육체적인 건강이 필요했을 텐데요. 당신은 접근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을 말을 타고 가거나, 강을 건너거나, 카누로 여행하는 등의 이야기를 슬픈 열대에서 하고 있더군요.

레비스트로스: 젊을 때는 누구나 그 정도 난관은 다 견뎌내죠.

에리봉: 그렇지만 당신 책을 읽으면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당신의 힘이 각별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레비스트로스: 그렇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때 난, 내가 살아오는 동안 흔히 그랬듯이, 상상력의 결핍 덕을 톡톡히 봤죠.

에리봉: 위험에 대한 무감각 말인가요?

레비스트로스: 바로 그렇지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40.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구성하는 복잡한 코드의 조합을 발견해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밝혀냈습니다. 신화는 다른 신화로 계속 모습을 바꾸어 변형해 가는데, 그 변형은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와 같은 걸음걸이로 진행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스스로 이 볼레로의 걸음걸이를 뒤쫓으며, 몇 백 개에 달하는 신화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묘사해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6.

 

 

 

 

 

5. 원시문명 그 속으로 들어가다

 

 

신화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온 것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진화의 맨 꼭대기에서 살아가는 가장 우월하고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나무와 바위, 코요테, 독수리 물고기, 두꺼비들과 함께 각자의 목적을 완성하면서 삶이라는 성스런 고리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일 뿐이다. 그들 모두가 그 성스런 고리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으며, 인간 역시 다르지 않다.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김영사, 2003, 495.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문명 탐험을 떠났던 시기, ‘문자 없는 사람들의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말리노프스키로 대표되는 기능주의 혹은 실용주의적인 관점. 이 관점에서는 문자 없는사람들의 사유가 전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의 충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다. 원시문명의 의식주와 성적 충동 등 아주 기본적인 생활 패턴만 알면, 그들의 사유 시스템 전체, 즉 그들의 신념, 신화, 제도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둘째, 레비브륄로 대표되는 신비주의적 관점. 그것은 원시문명이 근대문명과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종류의 감성과 사유로 지탱된다고 본다. 원시문명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사유가 아니라 전적으로 강렬한 감정과 신비로운 상상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관점은 과학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원시문명의 감성을 무시했고,

두 번째 관점은 서구인의 관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원시문명만의 독자적인 과학을 배제해버렸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문명을 바라보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신비주의적 관점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원시 부족은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으며, 동시에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존재였다. 그는 문자 없는사람들의 사고는 주변 세계를 단지 이용하는 실용적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이 단지 신비주의적사유가 아닌 과학적 사유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문자가 없다고 해서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문자 있는문명이 문자 없는문명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가슴 속에 각인시킨 것일까.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 또한 나비족의 문명에 대한 엄청난 편견 속에서 나비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문명사회가 원시문명에 파견한 침입자 제이크는 한없이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뭔가 인간의 각별한 치료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열등한종족이라 믿었던 나비족이, 그의 짐작과는 달리 훨씬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문명을 가꾸고 있음에 놀란다. 무엇보다도 제이크는 뭔가 단단히 결핍된 것이라 믿었던 나비족의 문명이 더없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의 열정 위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느끼며 점점 더 그들의 삶에 매혹을 느낀다.

 

 

 

 

나비족은 자동차가 없는것이 아니라 자동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친구 이크란다이어호스가 있다. 평생 단 한 명만을 자신의 몸 위에 태우는 이크란은 그들에게 단지 운송수단이 아니라 평생의 지기가 된다. 나비족은 고함과 채찍으로 동물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카락을 동물의 감각기관과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을 읽어낸다. ‘주체의 명령을 일방적으로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교감하는 입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여 자연을 친구로 만들고 자연의 친구로서의 책임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제이크처럼 원시문명을 충분히 가까이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멀리서만바라봤을 때의 근거 없는 루머와 턱없는 스캔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신화과학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과학의 힘을 통해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 나는 인간 경험의 총체를 수학 모델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은 켤코 없어요. (……) 이와는 바대로, 사회생활과 그것을 둘러싼 경험적 현실은 인간 세계에서 무작위로 펼쳐지는 영역인 것으로 내게는 생각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역사에 복종합니다. 나는 그저, 무질서가 지배하는 이 거대한 경험의 수프 속에는 여기저기에 구성의 섬들이 형성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접근으로 전체 현상을 철저히 규명할 수 없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요. 기상 상황을 설명하기 이한 정교한 기호논리학 모델이 일몰 때 느끼는 미학적인 감정을 설명해줄 수 없듯이 말이에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161.

 

 

 

 

 

6. 아바타의 신체가 거꾸로 인간의 영혼을 물들이다

 

 

에리봉: 돈키호테주의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레비스트로스: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박해받는 자들의 옹호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나는 돈키호테주의의 본질이 현재 너머에 있는 과거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끈덕진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훗날 레비스트로스가 어떤 인물인지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혹 존재한다면, 난 그에게 이 열쇠를 제공하고 싶군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150~151.

 

 

문자 없는 부족들이 보기에 문명인의 가장 독특한 습관 중 하나는 메모하는 습관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종이 부족이다. 혹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메모하여 쌓아두는 종이 부족. 문자 없는 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문명인들은 궁금했다.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중요한 기억을 정리하고 보관하는지 묻자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종이가 아니라 온몸에 쓴다고.

 

정형화된 문자가 아니라 체험의 느낌 자체를 온몸에 기록하니 종이도 펜도 필요 없다. 그들은 문자가 아니라 체험의 총체 자체를 온몸의 세포로 기억한다. 그들은 문자가 없어서 열등한 종족이 아니라 문자가 없기에 문자로부터 자유로운 종족이 아닐까.

 

기억을 축적하여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기억의 상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더욱더 진화된 메모의 기술을 발명한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기억할 것이 많아진 문명사회에서 현대인은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대체하는 기억의 아바타를 만들어 늘 턱없이 부족한 기억의 용량을 보충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신체는 기억을 활용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없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꼭 연락해야 하는 곳의 전화번호 정도는 자연스럽게 외웠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몸 바깥의 기계가 아니라 마음속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명인과 명창의 기술을, 장인의 노하우를, ‘메모리칩으로 전수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의 기예는 오직 그들의 몸 안에 있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길은 오직 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뿐이다. 우리는 기록의 기술을 얻는 대신 구전의 지혜, 몸으로 기억하는 아날로그적 정보처리기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가 날아가는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진다.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는 영혼의 분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바타에 등장하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 군인들은 문자 없는 부족인 나비족의 정보처리능력을 불신한다. 언옵타늄이라는 위대한 광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지구인과 협상하지 않으려는 나비족의 어리석은선택에 코웃음을 친다. 문자가 없기에 열등하고, 열등하기 때문에 대둥한 협상이 불가능하며, 그들에게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되며, 그런 야만인들은 얼마든지 학살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시문명에서 그들과 우리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과 우리의 같음을 찾으려 했던 레비스트로스의 태도는 바로 진보를 자처하는 문명의 어둠,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의 잔혹성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이끌었던 구조주의 혁명은 문명의 바다 속에서 문명의 바깥 공기를 탐지하는 거대한 사유의 잠망경이었던 셈이다.

 

 

 

 

아바타 프로그램은 원래 나비족의 신체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즉 인간의 영혼으로 아바타의 육체를 원격조종하여 나비족을 교란시키는 스파이로 만드는 것이 아바타 프로그램의 본래 목적이었다. 그런데 제이크가 열등하고 야만적이다라고 생각했던 나비족은 그의 상상과 전혀 달랐다. 그는 지옥이라 믿었던 곳에서 천국을 발견했고, 자신의 적들이라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사랑과 우정을 배워나가고, 사육되고 조련되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친구까지 만나게 된다. 그는 이제 인간의 영혼으로 아바타의 육체를 원격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의 신체가 거꾸로 인간의 영혼을 물들이는 행복한 역설에 빠져드는 것이다.

 

 

신화의 사고에서 동물은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며, 털가죽을 벗으면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처녀들을 유혹해 결혼하거나 동물과 인간 사이에 아이를 만들거나 하는 것도 가능했다. 인간 역시 변신하여 동물로 변할 수가 있었습니다. 늑대인간에 관한 전설은 그런 신화적 사고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싫어한 것은 십자가가 변신을 금하는 구속 원리를 의미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십자가가 상징하는 구속 원리에 의해 이교의 사고가 제압을 당해왔습니다. (……) ‘이교의 예술이 트랜스를 지향하는데 비해, 그리스도교의 예술은 구속에서 창조의 원리를 발견하려고 하지요. 그 사이에는 깊은 도랑이 파여 있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역, 예술인류학, 동아시아, 2009, 150~151.

 

 

 

 

 

7. 나는 왜 일 수 없는가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땅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 하지만 그건 땅을 죽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일 뿐. 하지만 난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고 이름이 있는 바위와 나무와 동물을 알아요. (……) 달을 보고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나요? 야생 고양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봤어요? 산의 목소리에 맞춰 합창할 수 있나요?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있나요? (……) 한 번만이라도 얼마짜리인가 생각지 말고 그냥 주위의 풍요로움을 즐겨보세요. (……)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리 땅을 가진다 해도 바람의 색깔을 칠할 수 없으면, 그건 가진 게 아니에요.

-포카혼타스‘Colors of the wind’ 중에서

 

 

원주민 여성에 대한 신비주의와 세련된 오리엔탈리즘, 미국인이 학살한 인디언에 대한 불편하지 않은 정도의 죄책감이 결들여진 가족용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 인디언 학살에 대한 미국인의 집단적 죄책감은 인디언 소녀 포카혼타스가 멋진 백인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잠정적으로 봉인되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학살당한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남아 백인들의 집단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인디언들의 신화와 민담에 스며든 지혜는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과 영상물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인디언의 가르침은 우울증에 빠진 현대인의 멘토가 되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묘사되는 나비족의 삶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활상과 사유의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전 세계에 상영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아바타의 관객들은 나비족을 보며 저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원주민 학살을 생각할 것이다.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를 통한 나비족의 정보 수집이 거의 끝났다는 판단 아래 제이크를 철수시키려 한다. 쿼리치는 제이크가 더 이상 아바타가 되어 나비족의 삶에 침투할 필요가 없다는 통보를 한다. 이미 원본보다 아바타의 삶에 매혹을 느끼기 시작한 제이크는 아직 자신이 할 일이 더 남았다고 말한다. 이제 곧 나비족의 성인식에 참여할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자신은 나비족과 협상하는 데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령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나비족과 협상한다는 공적인 업무보다 나비족의 삶자체에 대한 사적인 매혹을 떨쳐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는 마침내 평생 단 한 명의 사람만을 자신의 등에 태운다는 거대한 새 이크란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다.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이크란을 제압하고 오직 자신만의 이크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순간, 제이크는 나비족의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치러낸다.

 

 

 

 

제이크의 주요 무기는 이제 에서 로 바뀌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문명인의 전투보다 온몸의 근육과 오감을 작동시키는 나비족의 전투에 매혹을 느낀다. 그는 이제 해병대의 추억보다 나비족의 생활에 더욱 밀착된 존재가 되었다. 제이크는 이제 점점 에서 깨어나기가 싫어진다. 현실로 돌아오면 움직일 수도 잘라낼 수도 없는 그의 초라한 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명령만을 일삼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쿼리치 대령이 있다. 원주민의 생존권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있다.

 

그리고 아바타의 삶 속에서는 무엇보다도 증오와 분노로 얼어붙은 제이크의 마음을 녹여준 네이티리가 있다. 그가 대열에서 낙오되어 판도라의 정글에 혼자 남았을 때 그를 살려주었던 네이티리. ‘인간인간 이하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제이크를 인간나비족사이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한 네이티리. 그는 네이티리의 노란 눈동자가 담은 아름다운 판도라의 삶에 이미 행복하게 감염된 상태다.

 

제이크는 지옥이 있을 거라 믿었던 곳에서 낙원을 발견했고, 자신의 적들이라 믿었던 곳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를 발견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적 사고의 힘은 대립의 인식으로부터 대립의 중재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신화의 목적은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논리적 모델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도 말했다. 제이크는 이제 지구인과 나비족의 대립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 대립을 중재하는 것은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과연 아직 자신의 역할에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는 제이크가 이 엄청난 신화적 미션을 수행해낼 수 있을까.

 

 

에리봉: 당신의 신화론이 막스 에른스트의 콜라주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죠!

레비스트로스: 막스 에른스트가 그의 콜라주들 속에서 실행하기를 원했던 것과 같은, 거칠고 돌발적인 비교rapproachments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은 바로 이들 초현실주의자들로부터입니다. (……) 막스 에른스트는 타문화에서, 다시 말해 19세기 고문서의 문화에서 차용해온 이미지들을 사용해 개인적인 신화들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범상한 눈으로 보았을 때 이들 이미지들이 의미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이끌어냈죠. 신화론속에서, 나도 신화적인 재료를 오려내어 그 단편들을 재구성해 거기서 더 많은 의미가 솟아오르도록 했어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61.

 

 

 

 

 

8. 과잉 커뮤니케이션 VS 과소 커뮤니케이션

 

 

그레이스: 난 과학자라는 걸 잊지 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안 믿어.

제이크: 나비족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거예요.

그레이스: 그들이 왜 우리를 도와주겠어? (……) 그녀를 봤어. 에이와는 정말 존재해.

제이크: 그런데 왜 나를 구해준 거야?

네이티리: 넌 강한 영혼을 가졌어.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지. 하지만 넌 멍청해! 아이처럼 무지하지!

 

 

레비스트로스는 현대사회를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사회라고 진단했다. 문명과 문명 사이에 너무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서 서로의 문명을 끊임없이 모방하느라 점점 더 차이보다는 획일성이 지배하게 되는 사회가 되어간다고. A문명이 B문명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문명을 비교하고 정복하고 침탈하고 추격하느라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문명을 만들어내기 힘든 사회라고 말이다.

 

낯선 문명을 만나러 떠난 여행에서도 현대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똑같아지는 글로벌 시티를 발견한다. 현대인은 늘 새로운 문명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낯선 문명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큰맘 먹고 해외여행을 떠난다 해도 이미 아는 정보확인하고 기념하는 데 급급하여 진정 새로운 체험을 맛보기 어렵다.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텔레비전에서 수십 번도 더 본 후 이미 잘 아는 바로 그 장소에 가서 찰칵 기념사진을 찍고는 좋아라 한다. 현대인은 서로의 문명에 대한 경쟁심, 일류 문명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 선진국의 문명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기만의 문명의 독창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비족은 굳이 근대 문명을 모방할 필요가 없이 자연 속에서 무한한 감사와 은총을 누리고 살아간다. 그들의 삶에 다른 참고문헌이 없기에 오로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최선의 것을 창조해낸다. 파괴되는 아마존이 점점 풍요로운 공동체적 감수성을 잃어가는 이유 또한, ‘과잉 커뮤니케이션의 치명적인 오류가 아닐까. 아마존의 부족들이 문명인의 영향을 받아 활이 아닌 총을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 공장에서 제조한 문명인의 티셔츠 한 장에 하루 종일 힘겹게 사냥한 짐승 한 마리를 바꾸기 시작한 순간, 잡아온 물고기를 모두 함께 나눠 먹지 못하고 내 가족먹이기에 급급해지는 순간, 아마존의 유토피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문명의 러브콜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아마존을, ‘우리 안의 판도라를 시시각각 침식하고 있다.

 

제이크가 판도라의 생태계 속에서 나비족과 함께 하는 행복의 정체 또한 과소 커뮤니케이션사회의 힘에서 우러나온다. 굳이 다른 문명을 참고할 필요가 없기에, 외부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만으로도 우리가 뭔가 뛰떨어졌다는 집단적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역사의 진보라는 획일적인 환상은 끊임없이 문명을 발전시켜야 문명이 유지된다는 강박을 낳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역사의 진보를 위해, 집단의 진보를 위해, 개인은 언제든 쉽게 희생될 수 있다. 아바타 프로그램에 투입된 제이크의 운명 또한 그랬다. 그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형의 죽음으로 인해 대타로 투입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깡그리 부정당했다. 쌍둥이형과 유전자가 같으니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아바타 한 명을 만들기 위해 투자한 엄청난 자본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다행히 쌍둥이였던 제이크는 훌륭한 대체재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은 매 순간 분열되었다. 형은 대단한 과학자이지만 자신은 부상당해 다리도 쓸 수 없는 퇴역군인이라는 자괴감. 뛰어난 과학자가 필요하니 너 같은 골 빈 해병은 필요 없다는 그레이스 박사의 구박도 괴로웠고, 쿼리치 대령에게 나비족에 대한 각종 정보를 물어다 주는 스파이 생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은 나비족의 정체성인간의 정체성사이에서 고뇌하는 자신이다. 제이크가 온갖 힘겨운 통과의례를 거쳐 나비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는 순간 그의 고민은 절정에 다다른다. 더 이상 억지스러운 미션수행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비족의 삶에 동화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네이티리와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가시버시의 인연을 맺은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당장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과잉 커뮤니케이션(over-communication)이라고 하는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자 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문화가 진정으로 문화 그 자체가 되고 무엇을 생산하려고 한다면, 문화와 그 문화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독창성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까진 다른 문화에 견주어 그들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과소 커뮤니케이션(under-communication) 아래에서만 문화는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독창성을 상실한 채, 세계의 어느 곳을 가든지 모든 문화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소비자의 위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 임옥희 역, 신화와 의미, 이끌리오, 2000, 47~48.

 

 

 

 

 

9. 평범한 나무 VS 신선한 나무

 

 

파커: 도대체 나비족이 뭘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어. 학교도 지어주고 영어도 가르쳐주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고.

그레이스: 그들에게 총질을 해대니까 그렇죠!

쿼리치 대령: (……) 파란 원숭이놈들 마음을 움직일 당근을 알아봐!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채찍을 쓸 수밖에!

 

인디언의 동물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특히 동물을 죽이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습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이때 인간에게는 최고의 경의와 성실함을 갖춘 태도가 요구됩니다. (……) 동물을 공격하기 전에 사냥꾼이 끊임없이 변명하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동물이 지금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공격을 납득해주어서 서로의 양해하에 죽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대등하게 대결해 납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동물이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하는 겁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6~117.

 

 

아메리칸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한 것은 단지 개척자들의 총칼만이 아니었다. 개척자들이 선물의 명목으로 주었던 모든 것들, 설탕과 커피를 비롯한 각종 문명의 기호품들, 특히 위스키야말로 인디언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위스키는 자연과 함께 살아오던 인디언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저항의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알코올중독은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인디언 부족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식민주의자들이 원조의 명목으로, 혹은 외교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모든 선물들은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었다. 물질에 대한 필요로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되돌리기 힘든 영혼의 중독성.

 

 

 

 

아바타의 나비족은 결코 하늘의 사람들(인간들)’이 주는 미끼에 중독되지 않으려 했다. 인간들이 나비족에게 제공하려 한 미끼는 학교, 도로, 병원 같은 문명의 상징들이었다. 그런 원조는 나비족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나비족은 원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그림자를 간파했다. 그들은 자연과 나비족, 그 둘만으로도 충분했던 판도라의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따. 아바타 프로그램의 책임자 파커와 쿼리치 대령은 언옵타늄을 얻을 수 있다면 나비족의 삶의 터전을 얼마든지 빼앗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한 협상기한 3개월은 거의 끝나가고, 이제 정말 당근이 아닌 채찍을 휘두를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잘 이해하게 된 제이크는 점점 더 나비족의 생존 쪽으로 기울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이크는 나비족과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판도라의 생태계를 연구해왔던 그레이스 박사 또한 나비족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녀는 나비족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교사이기도 했다. 그레이스는 채찍당근도 아닌 마음으로 나비족에게 다가가야 함을 알고 있다. 그레이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판도라를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나비족을 통해 과학의 이름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성한 나무에 깃든 힘을, 그것은 단지 미신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거대한 과학임을. 판도라에서는 더 이상 차가운 과학과 뜨거운 신화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레이스: 그 나무들은 신성한 나무예요. 미신이 아니에요. 숲의 생태학을 말하는 거예요. 나무들의 뿌리가 전기화학적으로 소통하지. 한 그루의 나무가 1만 그루와 연결된 거예요. 판도라에는 1조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들은 인간의 두뇌보다 더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네트워크죠. 나비족은 이 나무들의 데이터와 메모리를 이용할 줄 아는 거예요. 진짜 자원은 땅속에 있는 언옵타늄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언제나 자연 속에 있다고요.

파커: (온 마음을 다해 말하는 그레이스의 눈빛을 조롱하며 차갑게 뇌까린다.) 그건 그냥 평범한 나무일 뿐이야.

 

 

파커와 쿼리치 대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간은 평범한 나무로 보이는 신성한 나무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연을 에너지원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고정된 에너지원을 소유하고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네이티리는 끊임없이 제이크를 가르친다. 그런 게 아니라고. 우주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는 잠시 그 에너지를 빌려서 쓰는 것일 뿐. 모든 에너지는 잠시 빌린 것이며 언젠가는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가르침을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다. 동물들을 단지 먹기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육신을 빌려 잠시 우리는 이 땅에 스치듯 살아갈 것이고 그들이 돌아갈 곳이 에이와 여신의 품인 것처럼, 인간도 언젠가는 에이와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라고.

 

 

근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유독 곰에 대해서는 총의 사용을 금지하는 사냥꾼들이 많았습니다. 전통적인 활이나 화살의 사용을 권했으며, 때로는 쇠로 만든 화살촉마저 금지해 신석기시대처럼 돌로 된 화살촉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기에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냥꾼과의 사이에 매우 강력한 공감에 의한 유대관계가 형성됩니다. 무기가 생명이 있는 물체와 같다면 동물들도 그것을 납득하고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여하튼 옛날에는 사냥이 위엄을 갖춘 일종의 결투였던 셈입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원초적인 형태가 시였으며 교환의 시작이 증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상태에서는 모든 싸움이 결투에 의해 정화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5, 117.

 

 

 

 

 

10. 두려워하지 마, 내가 너의 거울이 되어줄게

 

 

네이티리: 이크란은 평생 동안 교감이 이루어진 단 한 명의 전사와 날아가는 새야. 진정한 전사가 되려면 이크란과 전사가 서로를 선택해야 해.

제이크: 언제?

네이티리: 때가 되면…….

제이크: (네이티리 앞에서 날렵하고 확신에 찬 동작으로 짐승을 사냥하며, 죽어가는 짐승을 향해 속삭인다.) 미안해……. 에이와 여신이 네 영혼을 거둘 거야. 네 몸은 여기 나와 이곳 사람들의 일부가 될 거야.

네이티리: (대견하는 눈빛으로 제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때가 되었구나.

 

 

제이크는 아름다운 네이티리의 노란 눈동자를 통해 이전에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바라본다. 판도라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공격적인 호기심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던 제이크는 조금만 낯선 동물이라면 거침없이 총을 겨누곤 했다. 네이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샤헤일루(교감)’라는 말이 있다. 제이크는 네이티리를 통해 언어가 아니어도 온몸으로 자연과 교신할 방법을 배운다. 네이티리는 나비족에게 가장 친밀한 동물인 팔레이교통수단이 아니라 그녀라고 표현하며, 인간의 머리카락을 통해 동물과 샤헤일루를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녀이 심장 박동을 느껴봐. 그녀의 숨소리를 느껴봐. 그녀의 강인한 다리를 느껴봐.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제 가 왔다. 제이크에게는 드디어 오직 그에게만 교감하는 멋진 이크란이 생겼고, 나비족은 제이크를 완전한 형제로서 인정한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삶이라는 거대한 거울을 통해 한 번도 비춰보지 못한 자신의 전신을 비춰본다. 인간에게 알려진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행성이었던 판도라는 이제 사랑하는 네이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더없이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제이크는 아바타 프로그램이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긴 하지만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나는 지금 과학을 하고 있다(i'm doing science)’라고 믿고 있었다. 그 과학의 일부가 바로 아바타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제이크는 이제 더 이상 아바타 드라이버에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임무는 아바타를 조종하며 느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기록할 수도 보고할 수도 없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영혼의 파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이 죽인 동물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한없는 연민과 고마움을, 자신이 사랑하기 시작한 소녀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바타 프로그램의 과학적보고서에 담을 수는 없었기에.

 

 

 

 

레비스트로스는 남북아메리카 양 대륙에서 기록된 수천 종류의 신화를 변형군으로서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하나의 신화가 마치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볼레로처럼 아주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커다란 전체성을 가진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존의 인디언의 신화가 조금씩 스스로를 변형시켜 가다가 마침내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로 모습을 드러내는 식입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2005, 동아시아, 55.

 

 

제이크는 네이티리와 아름다운 첫날밤을 보낸 후 숲 속에서 잠든다. 제이크는 아직 아바타와 링크도 시작하지 않은 새벽에, 쿼리치 일당은 예고도 없이 판도라 행성에 선제공격을 가한다. 아바타와 링크가 되지 않아 눈도 못 뜨고 몸도 마비 상태인 제이크. 영문을 모르는 네이티리는 필사적으로 제이크를 깨우려 하지만 제이크는 아직 그레이스 박사와 인간의 현실속에 존재하고 있다. 가까스로 링크가 되자마자, 거대한 포크레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아름다운 영혼의 나무를 바라본 제이크는 분노에 치를 떤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포크레인 위로 올라가 카메라(이제는 이 되어버린 인간들의 의 역할을 하는)를 부숴버린다. 제이크가 더 이상 아바타 조종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아바타 그 자체, 아니 나비족의 일원이 되는 순간이다. 아바타 프로그램의 동료에게는 배신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야영자들이여, 파라나(브라질 남부에 있는 주)에 캠프를 쳐보시오. 그곳이 아니라면 캠프를 치지 말도록 하시오. 당신들이 지녔던 기름기 많은 종이들이나 빈 맥주병, 그리고 내버린 깡통들을 유럽의 마지막 흔적으로서 남겨 두시오. 그곳은 당신들이 텐트 치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개척 지역을 벗어나거나 그곳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격류들이 자유스럽게 흰 거품을 일으키며 현무암으로 된 자줏빛의 산허리로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시오. 만지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차가운 화산성 이끼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당신이 사람들이 살지 않는 초원을 처음 발견하였거나, 안개가 몹시 짙은 침엽수림의 숲속에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는 결코 더 이상 들어가지 마시오.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역,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53.

 

 

 

 

 

11. 슬픈 히트상품, 노스탤지어……

 

 

제이크:(영혼의 나무 앞에서 기도하며) 에이와님. 정말 계신다면 저희를 도와주세요. 인간들이 대지를 파괴해버렸고 이젠 우리를 파괴하려 해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네이티리:(연민과 사랑이 교차하는 누으로 제이크를 바라보며) 대지의 어머니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세계의 균형을 지키실 뿐이시지.

 

언젠가 정부 당국에서 소총과 권총을 나누어 주었지만 인디언들은 그것을 집 안에 걸어놓기만 했다. 대신에 그들은 사냥을 할 때 총기류라고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활과 화살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당국의 노력에 의해 날치기식으로 덮어 가리워졌던 예전의 생활방식이 재차 주장되었다. 황폐한 부락에서는 지붕들이 차례로 먼지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인디언들은 숲 속의 오솔길 사이로 줄을 지어 다녔다. 우리들은 보름 동안이나 계속하여 말을 타고 숲 속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숲이 너무 방대하고 길을 잘 알 수가 없어서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어둠 속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가 타고 간 말들은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나무들이 햇빛을 가로막는 어둠 속에도 조금도 길을 잘못 찾는 법이 없었다.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997, 156.

 

 

아바타에는 최첨단의 미래와 태고의 과거가 치열하게 공존한다. 나비족은 원시부족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담뿍 담긴 반인반수의 이미지이지만, 그 이미지를 상상 속에서 복원한 힘은 첨단 과학의 테크놀로지다. 아바타를 보며 나는 오래 전 과학의 이름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짓밟은 원시문명을 최첨단 과학의 테크놀로지로 복원하고자 하는 헐리웃 대자본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인류는 사력을 다해 인디언과 아마존의 문명을 파괴해놓고 이제 와서 잃어버린 원시문명의 잔해를 되살려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원시문명을 향한 노스탤지어는 하나의 거대한 전 지구적 산업이 되어가는 것 같다. 대중의 원시문명에 대한 향수는 이 된다. 그 집단적 향수에 기생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급증한다. 그런데 아바타의 대담성은 그 모든 상업적 계산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중의 뇌 구석구석을 스캐닝한 것처럼, 대중이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포착해낸다는 점이다. 아바타는 과거를 향한 노스탤지어와 미래를 향한 노스탤지어, 그 사이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우리는 단지 과거만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또한 그리워한다. 지금 여기의 삶밖에 누릴 수 없는 인간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에도 참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잃어버린 지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는 아련한 감정. 그 모호성이야말로 노스탤지어가 서식하기 딱 좋은 심리적 환경이 아닐까.

 

 

 

 

노스탤지어는 단절에 대한 공포감이기도 하다. 노스탤지어는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 과거 혹은 미래와 의 육체가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서글픈 확신 때문에 생겨난다. 그런데 아바타의 나비족들은 자신들의 노스탤지어를 매우 지혜로운 방식으로 해소한다. 그들은 영혼의 나무를 통해 과거의 조상들이 살았던 삶의 소리와 교신한다. 동물과 인간, 과거인과 현재인,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샤헤일루(교감)’를 시도한다.

 

그들은 세상에 한 번 존재했던 모든 것들은 단지 죽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고 믿는다.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뿐 아니라 현재인과 과거인까지도 서로 교감하고 있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는세계이므로 때늦은 사후약방문식 노스탤지어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네이티리는 제이크에게 영혼의 나무를 통해 조상의 소리를 들려주며 속삭인다. “우리 조상의 소리. 오래된 시간의 소리야.”

 

 

 

 

네이티리의 재능이 샤헤일루라면, 제이크의 재능은 미메시스(모방). 동물과 식물은 물론 물과 바람과도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테이티리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뜨거운 샤헤일루를 실천한다. 제이크는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몸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록 다리를 쓸 수 없지만 불구가 되어버린 그의 신체에는 아직 치열한 육체적 단련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바타의 육체, 아니 나비족의 육체를 입자마자 희미하게 남아 있던 그 육체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이 아니라 기계와만 교신하는 쿼리치 대령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제이크의 몸은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녔고 그 핵심은 바로 사물의 이미지와 정신을 모방하여 자기화하는 미메시스의 능력인 것이다. 그가 짧은 시간 안에 나비족의 일원이 되기 위한 혹독한 통과의례의 문턱을 뛰어넘는 비결도 바로 이 걸출한 미메시스 능력에 있다. 그는 네이티리의 샤헤일루 능력을 모방함으로써 나비족은 물론 판도라의 생태계와 교감할 수 있는 막강한 몸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모를레 신부는 18세기에 이렇게 썼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또는 연인의 품)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그 순간조차 아름다움은 지속되지 않는 법이다. 아름다움은 간혹 한 찰나에 불과하다.” 사진은 바로 이 기회를 잡았다. 사진은 그것을 보여준다. 순간성, 바로 그것이다. ‘눈속임 그림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아니 잘 못 보는 것, 또는 그저 스치듯 보는 것. 그래서 이제는 영원히 보게 될 것을 잡아내고 보여준다.

-레비스트로스, 고봉만 류재화 옮김, 보다 듣다 읽다, 이매진, 36.

 

 

 

 

 

12.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전도되다

 

 

네이티리: (어머니이지 부족의 샤먼인 모앗을 소개하며) 우리의 차히크야. 에이와의 뜻을 해석하시지.

모앗: (제이크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가득 찬 잔을 채울 순 없어.

제이크: 전 빈 잔이에요.

 

나는 어떤 주술사의 집을 함께 썼다. ‘바리(주술사)’는 하나의 특별한 범주에 속하는 인간으로 물리적 우주나 또는 사회적 세계의 어느 편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계급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자라 하겠다. (……) ‘바리는 비사회적 존재이다. 그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영혼들과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권적인 존재이다. 예를 들면 그가 혼자서 사냥을 나가면 초자연적인 도움을 언제든지 얻을 수가 있었다. 또 그는 자기 뜻대로 동물로 변신할 수도 있고, 예언의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질병의 비밀도 알고 있었다.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 삼성출판사, 1997, 227.

 

 

제이크의 배신을 눈치 챈 쿼리치 대령은 아바타와 원래 인간 사이의 링크를 끊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비족 모두가 모인 부족회의에서 다급하게 부족의 위기를 알리고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속죄를 하느라 감정이 복받쳐 있던 제이크. 그는 아직 자신의 입장을 미처 설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네이티리를 비롯한 모든 나비족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만 산 채 링크가 끊겨버리고 만다. 아바타 조종사와의 링크가 끊어져버린 제이크는 마치 산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제이크가 인간들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아챈 네이티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제이크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제이크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그는 나비족에게도 인간사회에서도 철저한 배신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바타와 마음대로 링크할 수 없게 된 제이크는 그레이스 박사의 판도라 연구팀과 함께 배신자들로 낙인 찍혀 감금된 신세가 되어버린다. 과학을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그레이스, 나비족을 통해 배운 샤헤일루를 통해 판도라에 다가간 제이크. 그 두 사람의 종착역은 같았다. 그들은 아무리 아바타와의 기계적 링크를 제거해버려도 결코 나비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어져버린 자신들의 마음과 투명하게 마주한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제 나비족도 판도라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원의 손길이 뻗쳐 온다. 공군 여전사 중 한 명인 매력적인 트루디가 멋진 변심을 한 것이다. 평화로운 판도라에 폭탄을 투하하며 바퀴벌레는 이렇게 죽이는 거야!”라고 소리 지르는 쿼리치, 나비족의 집단학살을 진심으로 즐기던 쿼리치 밑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난 이러려고 지원한 게 아냐!” 트루디는 배신자들에게 식사를 가져다주고 배신자에겐 스테이크도 아까워!”라고 뇌까리는 척하면서 함께 온 식사당번을 기절시킨 후 제이크와 그레이스 일행을 탈출시킨다. 낌새를 알아챈 쿼리치는 트루디가 조종하는 헬리콥터에 수없이 총탄을 퍼붓고 그 사이에 그레이스가 복부에 총탄을 맞고 만다.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제이크는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나비족에게 도움을 청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은 과학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동화 같은 이야기란 나비족의 주술사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레이스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판도라를 사랑하지만 나비족의 주술적 믿음에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제 목숨에 대한 미련조차 벗어버린 얼굴이다.

 

 

 

 

제이크의 아바타는 거대한 판도라의 숲 속 어딘가에 버려져 있고 그레이스의 아바타는 나비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상태다. 제이크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진정 갖고 싶은 아바타의 육체를, 아니 나비족의 육체를 찾아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 그전에 우선 네이티리를 비롯한 나비족 모두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서도 제이크는 믿는다. 그는 그레이스보다 훨씬 더 나비족-되기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는 나비족의 믿음을, 나비족의 주술사 모앗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무런 거짓 없이 나비족의 삶에 링크되어 있음을 믿기 시작했다. 아바타와 주인의 권력관계가 완벽히 전도된 것이다.

 

 

인간이 살고, 일하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되, 자신이 이 세상에 항상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지구가 언젠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때에는 인간의 작업 중에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 우리는 실재의 깊은 본성은 재현의 모든 노력을 벗어나 있음을 깊이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제일 먼저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칸트입니다. (……) 과학적 지식은 우리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가르쳐줍니다.

인류가 사라지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운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겁니다. (……)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내 입장이 철저한 회의주의라고 간주하겠지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겉모습만 맴돌도록 운명 지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어디에 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현명함을 아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246~247.

 

 

 

 

 

13. I See You

 

 

에리봉: 당신은 자신의 자아를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레비스트로스: 거의 몰라요.

에리봉: 그 점은 당신에게만 고유한 것인가요, 아니면 인류 정신의 특성인가요?

레비스트로스: 그게 나만의 특성이라고 자부하진 않겠어요.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을 우리에게 부과한 것은 바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는 당신이 어떠 어떠한 사람이기를 원하며, 그 사람이 자신이 행하고 말하는 바의 책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회적인 압력이 없다면, 개인적인 청체성의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한다고 믿는 것처럼 강렬하지는 않다고 확신해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257~258.

 

 

사경을 헤매는 그레이스 박사를 바라보며 제이크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나비족의 도움을 받아 그레이스를 살릴 수 있을까. 에이와의 계시를 믿고 자신을 살려준 네이티리의 신뢰를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비족과 함께 판도라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비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그 순간 섬광처럼 지나가는 거대한 새의 이미지. 적수가 없는 하늘의 강자, 토루크. 네이티리가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토루크는 마지막 그림자라는 의미로 이 거대한 새의 주인이 되는 것은 슬픔의 시대에 부족을 이끈 위대한 리더들의 특권이었다.

 

 

 

 

나비족의 역사상 딱 다섯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던 토루크 막토에 대한 나비족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믿음의 시스템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비족이 되는 가장 빠른 길임을 알고 있다. 제이크의 눈빛이 반짝인다. ‘토루크 막토’(마지막 그림자의 라이더, 탑승자)에 대한 그들의 믿음 속으로 온몸을 던지자. “토루크는 하늘의 절대 강자. 그런 그가 머리 위를 보진 않겠지?”

 

 

 

 

인간들과 나비족 모두가 제이크를 버렸지만 이크란만은 제이크의 기운을 감지하고 날아와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제이크는 이크란과 함께 아무도 길들일 수 없다는 토루크의 머리 위로 날아가 마침내 토루크 막토가 되는 데 성공한다. 거대한 시조새와 익룡의 형상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무시무시한 토루크는 사력을 다해 몸부림치다가 자신보다 더욱 필사적인 제이크의 영혼과 마침내 교감하게 된다. 나비족의 제6대 토루크 막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난데없는 인간들의 침략으로 하루아침에 살아갈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나비족. 부족장의 딸 네이티리는 피난 중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만다. 부족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물려받은 네이티리는 막중한 책임감과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네이티리의 약혼자였던 쯔테이는 나비족의 전사들을 이끌어 인간들과의 총력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들의 화살과 창만으로는 인간들의 최첨단 무기와 맞서기에 역부족이다. 나비족의 비상 캠프에는 결전의 비장함보다는 갈데없는 난민촌의 절망감이 깃든다. 이때 멀리서 토루크의 괴성이 들려오자 비상 캠프에는 더욱 끔찍한 공포가 엄습한다. 거대한 토루크의 등위에는 바로 나비족의 배신자였던 제이크가 타고 있었다.

 

 

 

 

토루크의 등위에서 내려와 보무당당하게 걸어오는 제이크를 보자 나비족 사람들은 마치 메시아의 현현을 본 것처럼 압도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제이크를 토루크 막토라고 부른다. 그들 앞에 나타난 토루크 막토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네이티리의 눈에서도 가눌 수 없는 그리움과 놀라움과 깨달음의 눈빛이 동시에 일렁인다. 저것이 바로 에이와의 계시였던가. 내 손으로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활시위를 놓게 만든 에이와의 마음이 저것이었나. 네이티리는 다시 그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운명에 감사한다. “제이크, 나는 너무 두려웠어. 부족의 안전이……. 이젠 아냐. 두렵지 않아.” 그리고 마음을 다해 말한다. “I see you…….” 그것은 단지 당신을 본다는 의미를 넘어 당신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완전히 샤헤일루를 이루는 순간의 언어적 표현이다.

 

이제 아바타와 조종사 사이의 링크란 필요 없게 되었다. 아바타와 원본 사이의 구분도 없어져버렸다. 네이티리가 완전한 믿음의 눈빛으로 제이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가 “I see you”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는 인간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으로 만들어진 제이크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를 너 자체로 본다. 인간이었던 너, 문명의 도구였던 너, 문명의 낙오자였던 너, 스파이였던 너, 불구자였던 너, 그 모두를 잊고 나만을 바라보는 너를, 내가 이렇게 보고 있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I see you”는 닳고 닳은 “I love you”보다 훨씬 깊고 넓은 파장으로 관객의 가슴 속에 새로운 감성의 우물을 파헤진다. 누군가 그런 눈빛으로 “I see you”를 속삭여준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그 눈빛에 기꺼이 익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창조계에서 미천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과, 창조계가 자신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과, 그 어떤 미학적인 창작도 광물이나 곤충이나 꽃이 제공하는 미학적 창작과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풍뎅이, 나비는 우리가 틴토레토나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동일한 열렬하고 주의 깊은 관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신선함을 잃어버려, 더 이상 제대로 볼 줄을 모릅니다.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268.

 

 

 

 

 

14. 과학의 끝에서 신화를 만나다

 

 

제이크: (영화가 시작된 직후, 제이크의 내레이션) 형은 대단한 과학자이지만 나는 부상당해 다리로 못 쓰는 퇴역 군인일 뿐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내가 받는 연금으론 다리를 고칠 수 없다. 지구에선 자유를 위해 싸우던 군인이었지만 여기선 회사에 고용된 용병일 뿐이다.

쿼리치 대령: (아바타 프로그램에 지원한 병사들을 겁주며) 지옥도 여기에 비하면 휴양지나 다름없지.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가 제군들을 간식으로 먹어치울 것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 중얼거리던 제이크가 이제는 자신이 박멸해야 할 적군의 리더, 나비족의 열혈 전사가 되었다. 판도라에서 나비족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면, 제이크는 다리도 쓰지 못하는 퇴역군인이라는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제이크는 나비족이라는 진정한 타자를 만남으로써, 사회적 시선의 네트워크가 구성한 강요된 정체성을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접근해 온 제이크를 용서한 네이티리. 그에게 이제 진심으로 “I see you”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는 지금 제이크 자신이 보지 못한 제이크보다 더 큰 제이크를 보는 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우리 자신의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우리 자신 이상의 것을 본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가 스스로 보여준다고 의식하는 것 이상을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것내가 볼 수 있는, 당신 이상의 당신사이, 그 거대한 차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야말로 그와 나, 우리와 그들의 접속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차이야말로 통계적 수치나 과학의 공식으로 계산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잉여성, 인간의 아우라이기도 하다. 타자의 눈을 통해서만 비치는 나의 모습이야말로 내가 단속할 수 없는 나의 진정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문명의 이름으로 타자를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 우리가 아마존뿐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판도라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비족의 샤먼이자 네이티리의 어머니인 모앗은 온힘을 다해 그레이스 박사를 살려보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모앗이 부족 전체가 모인 가운데 치유의 의식을 주관하는 모습은 영화 아바타최고의 장엄한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부족 전체가 한 자리에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노래하는 모습, 천상의 존재와 지상의 존재를 연결하게 하는 샤먼의 거부할 수 없는 위엄. 특히 3D 영상이 연출하는 생생한 현장감에 도취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서로 어깨를 걸고 단 한 사람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나비족의 일원이 된 듯한 행복한 착시에 빠진다. 우리도 저 수많은 손들 중 하나를 잡고 싶은 마음, 우리도 그녀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그녀가 부족의 일원으로 다시 걷게 해주소서…….”

 

하지만 모앗의 걱정이 현실화되었다. 그레이스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이승의 경계를 넘어 에이와 여신을 접견하고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야만 하는데,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영혼의 나무를 바라보며 샘플 채취해야 하는데…….”라고 속삭이던, 천상 과학자이던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과학의 힘을 믿었기에 판도라의 생태계를 연구했고, 교육의 힘을 믿었기에 나비족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레이스의 과학은 인간이라는 부족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레이스는 사력을 다해 과학을 추구했고 그 과학의 길 끝에서 신화를 만난다. 레비스트로스 또한 과학의 부재 상태가 신화가 아니라 과학의 힘을 빌려 비로소 신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문명과 자연 사이, 과학과 신비 사이, 인류와 나비족 사이의 메신저가 되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도 더없이 기쁜 표정을, 지금껏 보여준 적이 없던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한다. “그녀를 만났어. 에이와의 정말 존재해.” 그녀가 에이와를 믿는 한, 그녀는 죽어 사라지지 않고 영혼의 나무에 깃들어 나비족의 역사와 신화 속에 늘 함께 할 것이다.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판도라의 자연 속으로 저물어갈 것이다.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나는 거기 없고, 잠들지 않았답니다.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부는 바람이며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눈이며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I am the gentle autumn rain.
당신이 숨죽인 듯 고요한 아침에 잠이 깨면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s hush
나는 원을 그리며 포르르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말없이 날아오르는 새들이고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밤에 부드럽게 빛나는 별입니다.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내 무덤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나는 거기 없습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Mary Elizabeth Frye, 내 무덤 가에 서서 울지 마세요

 

 

 

 

 

15. I will fly with you……

 

 

제이크: 쯔테이. 당신 도움이 필요해. 나와 함께 싸워 주겠나?

쯔테이: 당신과 함께 날겠소.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영혼의 성감대지.

-최인훈, 회색인중에서

 

 

제이크는 자신의 힘으로 제6대 토루크 막토가 됨과 동시에 드디어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그는 쯔테이와 함께 인간들과의 총력전을 지휘하며 나비족뿐 아니라 판도라 행성에 사는 다양한 부족들을 연합하는 데 성공한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판도라의 전사들을 보면서 당황한 쿼리치 대령은 총력전을 계획하며 부하들을 다그친다. 그는 나비족의 믿음의 원천인 영혼의 나무를 공격하여 나비족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공포를 심어 주려한다.

 

 

 

 

쿼리치 대령은 나비족의 믿음의 원천을 조롱한다. 그 파란 원숭이들은 여신 따위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나비족의 가치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병사들도 쿼리치와 함께 나비족의 믿음을 비웃는다. 인간들의 첨단 무기에 활과 화살로 맞설 수 있겠느냐는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는 친구 노엄을 향해 제이크는 말한다. 인간들은 판도라의 독성 가스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지만 나비족은 판도라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첨단 기술과 무기에 의존하는 인간들 vs 오직 자신의 몸만이 무기인 나비족 사이의 총력전이 시작된다.

 

 

 

 

인간들의 일방적인 우위로 점쳐지던 전세는 뚜껑을 열어보니 막상막하다. 신기하게도 이크란을 타고 오직 한 명씩 움직이는 나비족의 공군은 결코 거대한 헬리콥터와 미사일에 밀리지 않는다. 오직 기계에 의지하는 인간들과 달리, 진심 어린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나비족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만으로 일방적인 살육의 행렬에 나선 인간들과 달리, 나비족은 한 명 한 명이 극한의 절박함과 극한의 전투의지로 충만하다. 나비족은 오직 혼자 날고 오직 혼자 죽을 준비가 되어 있기에, 판도라를 지켜야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지킬 수 있기에,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 병사들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움직인다. 나비족은 미약한 개인을 거대한 조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부족 그 자체의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도 나비족은 샤헤일루를 통해 주변의 모든 생물을 자신의 영혼과 링크시킨다. 판도라의 동식물 하나하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 명 한 명의 전사가 곧 나비족이며 판도라이며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비족의 전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쿼리치가 이끄는 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자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비족 최고의 전사 쯔테이도, ‘아름다운 배신으로 나비족의 편이 된 트루디도, 노엄이 조종하던 아바타도 죽었다. 쿼리치 대령과 싸우던 네이티리와 제이크마저 위험에 처했을 때, 이제 네이티리마저 의연한 죽음을 준비한 순간,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바로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의 손길이 뻗쳐온다. 평화롭던 판도라에 들리기 시작한 전쟁의 괴성에 분노한 판도라의 동물들이 떨쳐 일어난 것이다. 거대한 공룡이나 맘모스의 원시적 힘과 놀라운 유연성을 연상시키는 판도라의 동물들은 얼어붙은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근대 이전의 전장에서는 말을 탄 전사가 내달리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전사는 멋들어진 가마술로 말의 속도와 움직임을 조절하고, 속도와 유동성으로 전장을 유동적이며 속도로 가득한 장으로 바꾸어버립니다. 또한 전사의 손에서 날아가는 화기나 화살은 인간의 물리적 힘을 넘어선 거대한 파괴력을 펼쳐냅니다.

그러나 근대의 기술은 카농포(포신의 길이가 구경의 30~50배에 달하는 긴포. 단순히 대포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를 발명하고 말았습니다. 유동적이며 재빠른 운동이 지배하던 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정지 상태로 향하게 됩니다. (……) 고속도의 화기가 전장을 움직임 없는 심리전의 장으로 바꾸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철포에서 카농포로 이어지는 화기의 역사에서 기마대는 점점 그 의미를 잃고, 병사는 전장을 내달리지 않고 참호 속에 틀어박히고 맙니다. 그때까지 전장은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한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참호를 파고 서로를 노려보는 정지된 내성의 장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양억관 옮김, 성화 이야기, 교양인, 2004, 87~88.

 

 

 

 

 

16. 샤헤일루와 미메시스와 브리콜라주

 

 

고고학은 수만 년 동안 현생인류의 마음의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것을 밝혀왔다. 인류의 마음 밑바닥에는 야생의 꽃이 피는 들판이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2005, 323.

 

 

이 전쟁에 지더라도 배신자제이크만은 확실히 처단할 태세인 쿼리치 대령은 사력을 다해 제이크에게 돌진한다. 쿼리치는 아바타원본사이의 링크를 끊어버리고 원본의 제이크마저 판도라의 유독가스에 노출시켜 죽이려 한다. 제이크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네이티리는 목숨을 걸고 쿼리치에 맞서 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아바타의 링크가 끊어졌지만, 네이티리는 원본인 제이크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그가 나의 제이크임을, 그가 나의 운명임을 알아본 네이티리는 다시 한 번 부족의 샤먼이자 어머니인 모앗의 힘을 빌려 더 이상 아바타가 아닌 이제는 원본 그 자체인 나비족의 전사 제이크를 살려낸다. 그 순간 네이티리는 죽어가는 예수를 품에 안은 마리아처럼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네이티리의 사랑으로 인해, 아니 나비족 전체의 기도와 믿음으로 다시 태어난 제이크. 이제 인간의 육체를 벗어던진 제이크는, 인간의 육신으로서의 제이크가 죽고 나비족으로 부활한 바로 그날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마침내 인간들은 판도라의 언옵타늄을 포기하고 에너지 고갈 문제로 허덕이는 상처투성이 지구로 돌아간다. 하지만 인간들은 진심으로 나비족의 세계관에 동의한 눈치가 아니다. 나비족 따위에게 패배한 굴욕과 분노의 눈길은 이 초유의 전쟁이 잠시 휴전상태일 뿐임을 예고한다. 판도라처럼 머나먼 행성, 존재하지도 않는 행성까지 확장하지 않더라도 당장 현대인이 처한 자원 문제는 심각하다. 에너지 문제와 시장의 확장 문제로 인한 끝나지 않는 신제국주의의 행보는 영화 아바타의 총력전을 능가하는 처절한 장기전을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빼앗길 것이 남아 있는 지구상의 모든 마이너리티들은 철저히 무방비상태의 또 다른 나비족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강자들은 언제든 갖은 명분을 조작하여 약자들을 원수로 만들고, 그들이 소중히 지켜온 언옵타늄을 빼앗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지구에 거주하지만 여전히 지구를 향하여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지구를 죽이지 않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아니 지구를 비롯한 이 세계 전체의 거대한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고 그것과 교신하는 방식을 찾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은 그렇게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네이티리의 샤헤일루와 제이크의 미메시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한 영화감독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가 평생 동안 연구했던 지구라는 별의 온갖 신화, 브라질 원시부족의 신화뿐 아니라 유럽이나 한중일의 신화 속에서도 발견되는 현생인류의 사유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화된 현대의 인간들은 점점 동물처럼 변해간다고들 말한다. 그런 경우의 동물이란 가축화된 동물을 뜻하므로, 결국 인간의 삶은 점점 가축의 삶과 비슷해지고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교육이나 미디어나 가정환경을 통해, 우리의 감각이나 사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정한 관리 수준에 맞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각이나 사고가 야생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러나 단지 잊었을 뿐, 그 야생은 생명과 연결된 무의식 속에 분명 여전히 살아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대칭성 인류학, 동아시아, 2005, 322.

 

 

신화적 사유, 혹은 대칭성의 사유는 아무리 작은 부분에도 전체를 투영하며, 그 어떤 대립과 불평등 속에서도 궁극적인 조화와 균형의 지점을 기어이 찾아내는 의지가 아닐까. 신화적 사유는 인간 조건을 침해하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것, 타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각자의 판도라를, 우리가 가진 모든 사유의 재료를 동원해 리메이크해내는 영혼의 교감능력이 아닐까.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이 능력을, 우리 주변의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재료들 속에서 우리 무의식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 숨쉬는 신화적 사유를 발견해내는 힘을, ‘브리콜라주라고 불렀다.

 

 

나는 야생의 사고에서 소위 원시인의 사고와 우리 현대인의 사고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려 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이상한 신앙이나 관습을 목격할 때면,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고대적 사고의 흔적 혹은 잔존이라고 설명하곤 했지요. 내가 보기엔, 그와 반대로, 이런 사고 형태들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여전히 현존해 있고 생존해 있습니다. (……) 나는 특유한 고유성을 지닌 사고방식의 예로서 브리콜라주를 제시했는데, 사람들은 그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익하고 부차적으로 보이기에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러한 사고방식이 정신 활동의 본질적인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근대적 사고방식이라 믿는 것과는 거리가 먼 지적인 활동과 단도직입적으로 만나게 해줍니다. 사색의 영역에서, 신화적 사고는 브리콜라주처럼 실제적인 측면에서 작동합니다. 그것은 자연계를 관찰하면서 축적한 수많은 이미지들, 즉 동식물들과 그들의 서식 환경, 그들의 특징들, 특정 문화에서 그것들을 사용하는 이미지들을 활용합니다. 신화적 사고는 이러한 요소들을 결합해서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마치 작업거리가 생긴 브리콜뢰르(특정한 목적을 위해 준비된 연장이나 재료가 아닌 아무 것이나 사용해 자기 손으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가 가까이 있는 재료들을 사용해서 원래 의도했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그 재료들에게 부여하는 것과도 같지요.

-디디에 에리봉 대담, 송태현 역,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2003, 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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