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우리는 시간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
마코토는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등장한, 호두처럼 생긴 타임 리프 기계를 과학실에서 찾아낸다. 미래로 다녀온 마코토에게 이 기계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녀는 타임 리프 장치를 잃어버려 노심초사하고 있을 치아키에게 달려간다. 시간을 되돌려 간신히 되찾은 치아키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마코토. 달리기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치아키를 향해 달리는 마코토의 표정은 더 이상 장난스럽지도, 철없지도, 어리지도 않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존재의 문턱을 넘은 사람의 강인한 아름다움이 마코토의 얼굴에서 배어나온다. 언제나 시간에 뒤처지던 그녀는 어느새 시간을 따라잡고, 시간이 더 이상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을 수 없도록, 시간의 중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그녀만의 속도로 뛰어간다. 치아키를 미래로 보내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놓아주기 위해.
치아키: (마코토가 건네준 타임 리프 장치를 보며) 이걸 네가 어디서 찾았어? 아니 너! 이게 뭔지는 알아?
마코토: 알아.
치아키: 누가 가르쳐 줬는데?
마코토: 네가.
치아키: 난 그런 소리 한 적도 할 리도 없어.
마코토: 네가 모두 다 얘기해 줬어. 네가 살던 시대도, 이게 뭔지도.
치아키: 너 어디서 온 거야?
마코토: 미래에서.
치아키: 너도 타임 리프를 할 줄 알아?
마코토: 이젠, 못해.
(……)
치아키: 이 얘기를 하려고 일부러 과거로 돌아온 거야?
마코토: 응.
치아키: 바보같이 내가 왜 얘기했을까?
마코토: 그 그림은 미래에 가서 봐. 이젠 없어지거나 타버리지 않을 테니까. 네가 온 미래까지 무사히 남아 있게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치아키: 그래, 부탁해……. 돌아갔어야 했는데. 어느새 여름이 됐어. 너희랑 함께 있는 게 너무 즐겁다 보니.
(……)
치아키: 마코토! 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너 말이야……. (이제 ‘고백’을 들을 준비가 된 마코토의 잔뜩 설렌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함부로 뛰다가 다치지는 마라. 넌 주의력이 부족하잖아. 먼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
마코토: (치아키의 고백을 기다리던 설렘이 사라져버리자, 잔뜩 실망한 얼굴로) 뭐야? 그게 마지막 인사야?
치아키: 바보, 다 널 걱정해서하는 말이야!
마코토: 그래! 걱정해줘서 고맙다! 알았으니까 얼른 가.(치아키의 등을 밀어내며 억지로 치아키를 보내버리는 마코토.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솟구치는 흐느낌을 막을 수 없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엉엉 우는 마코토를 향해, 치아키가 다시 돌아온다. 너무 놀라 눈물을 뚝 그친 마코토를 살짝 안고, 미친 듯이 뛰고 있을 마코토의 심장을 향해, 치아키는 드디어 고백한다. 예전에 마코토가 ‘삭제해버린’ 그 고백보다 훨씬 멋진 대사로.)
치아키: 마코토……. 미래에서 기다릴게.
마코토: (치아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일순간에 모든 아픔이 치유된 듯, 언제 울었냐는 듯이, 이제야 마코토다운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응! 금방 갈게! 뛰어갈게!
의미 없이 기계적으로 흘러가던 시간이, 이 세상 단 한 번뿐인 사건의 시간이 되었다. 치아키가 살고 있는 미래가 몇 십 년 후인지 몇 백 년 후인지 모르지만, 도대체 치아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그 그림을 어떻게 저 거대한 시간의 풍화작용으로부터 지켜낼지는 알 수 없지만. 마코토는 기다릴 것이다. 치아키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라도, 막상 치아키를 만났을 때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라도, 그녀에게 이제 ‘시간’은 이미 다른 의미로 흐르기 시작했다. 미래에서 날아온 소년 치아키로 인해 그녀의 현재는 완전히 다른 빛깔과 냄새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녀 안에 둥지를 튼 치아키의 미래는 그녀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함께, 따로 또 같이, 살아갈 것이다. 미래 소년과 날카롭게 조우한 이모의 현재가 행방을 알 수 없는 그 옛날 그 소년의 미래와 모순 없이 공존하듯이.
그러므로 순수한 현재란 없다. 과거-현재-미래라는 편의상의 경계를 매번 무너뜨리며 미처 제 몫을 다하지 못한 과거는 오늘을 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은 현재의 우리 몸에서 체현된다. 때로는 예술의 이름으로, 때로는 사랑의 이름으로.
비자발적인 기억은 ‘나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연출하고 기록할 수 있는 주체다’라는 인간의 착각 혹은 오만을 일거에 날려버린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기상천외한 타임 리프 능력이 주어진다 해도 우리는 ‘시간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잃어버린 타인의 시간이 곧 잃어버린 나의 시간임을 기억하는 한. 너와 나의 시간을 분리할 수 없는 그 끝없는 모호성 위에 우리의 인연이, 너와 나의 ‘마주침’이라는 사건이 존재하는 한.
이로써 우리 앞에 겹겹이 닫혀 있었던 시간의 문이 열리고, 그렇게 살짝 벌어진 시간의 틈새로,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으로 분리되지 않는 뫼비우스적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미래 소년 치아키가 다녀간 이 도시에서 이제는 지각할까 봐 휙휙 지나가버린 그 모든 사소하고 당연한 장면들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의 반짝이는 순간으로 거듭나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끝내 되찾을 시간’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이제 시작될 마코토의 기다림은 마음에 드는 미래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책 없는 수동성이 아니다. 미래가 주저하느라 좀처럼 오지 않는다면 달려가 미래의 손을 꽉 붙들고 데려올, 그런 능동적인 기다림, 시간을 창조하는 기다림이다. 미래를 계산하지 않는 마코토의 무구한 ‘기다림’으로 인해, 그들로 인해 되찾은 우리의 시간 또한 21세기의 새로운 ‘마들렌의 시간’으로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이제 마코토는 시간보다 더 빨리, 시간보다 더 멀리, 시간보다 더 깊이 달려가는 ‘그녀만의 리듬’을 살아낼 것이다.
과거의 환기는 억지로 그것을 구하려고 해도 헛수고요, 지성의 온갖 노력도 소용없다. 과거는 지성의 영역 밖,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물질적인 대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우연에 달려 있다. (……) 우중충한 오늘 하루와 음산한 내일의 예측에 풀 죽은 나는, 마들렌의 한 조각이 부드럽게 되어가고 있는 차를 한 숟가락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 마치 일본 사람이 재미있어 하는 놀이, 물을 가득 채운 도자기 사발에 작은 종잇조각을 담그면, 그때까지 구별할 수 없던 종잇조각이, 금세 퍼지고, 형태를 이루고, 물들고, 구분되어, 꿋꿋하고도 알아 볼 수 있는 꽃이, 집이, 사람이 되는 놀이를 보는 것처럼. 이제야 우리들의 꽃이란 꽃은 모조리, (……) 수련화 마을의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조촐하나 집들과 성당과 온 콩브레와 그 근방,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
-마르셀 프루스트, 김창석 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국일미디어, 65~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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