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발터 벤야민
타인의 추억을 앓는 산책자를 위하여
1. 부랑자들, 혹은 비정한 도시의 산책자들
국가는 전당포와 복권으로 프롤레타리아를 농락한다. 오른손이 베푼 것을 왼손이 빼앗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이 소년들은 도시의 쓰레기와 찌꺼기와 잔해들을 먹고 산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모든 쓰레기들이 이 소년들에게는 ‘사업’의 대상이 된다. 이 소년들은 이 도시의 비밀을 신문이나 뉴스가 아닌 ‘온몸의 감촉’으로 속속들이 알고 있다. 만약 이 도시에서 오늘 일어난 살인, 절도, 방화 사건의 원인이 궁금하다면 경찰이나 교사나 공무원보다는 이 소년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가장 맛있는 빵집을 알고 싶거나,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를 알고 싶을 때도, 웬만한 ‘공식적’ 정보통보다는 이 부랑자 소년들의 비공식 핫라인을 수소문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일들을, 소년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알 수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대공황시기 뉴욕의 뒷골목, 이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비상하기를 꿈꿨던 소년들의 사랑과 성공과 실패와 복수의 이야기다. 좀도둑, 소매치기, 문제아 등 이들을 규정하는 용어들은 다양하겠지만, 이 소년들의 주된 업무는 ‘어슬렁거리기(loitering)’다.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며 익숙한 거리에서 매번 새로운 작업 대상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소년들의 주특기다. 멀리서 보면 그들의 모습은 한가롭기 이를 데 없지만, 조금만 가까이서 보면 이 아이들의 눈빛은 먹이를 찾는 맹수만큼이나 날카롭게 빛난다. 소년들에게 어슬렁거리기는 이 도시의 비밀을 알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창조적 퍼포먼스다. 거리를 잘 헤매야 ‘목표대상’을 잘 찾을 수 있고, 거리를 잘 헤매야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예를 들어 소매치기하기에 딱 좋은, 값비싼 시계를 찬 취객들)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소년들의 직업은 방황하고 두리번거리고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미국의 상점 입구에는 ‘어슬렁거리지 마시오(Do not loiter)’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되곤 한다. 분명한 목적도 없이 상점 주변을 배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상점 주인들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모범시민이 보기에 길거리를 쓸데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은 ‘범죄’로 가는 지름길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의 총천연색 욕망과 도시의 장구한 역사를 탐색하는 소중한 ‘연구’의 방식일 수도 있다. 셀 수 없는 상점과 간판과 광고와 쇼윈도우와 인파 속을 하루 종일 헤매도 결코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 오직 잘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과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사람, 그들이야말로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도시의 산책자 혹은 만보객이었다.
벤야민은 1934년 저서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다. “고통의 초상. 센 강 다리 밑인 듯. 집시 여자가 잠을 잔다. 고개를 숙이고 텅 빈 지갑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상의는 햇빛에 빛나는 핀으로 덮여 있고, 모든 가재도구와 사유재산 전부—솔빗 두 개, 칼집 없는 칼, 뚜껑 닫힌 그릇—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그녀의 주위에 실내의 느낌, 나아가 친밀감을 자아낸다.” (……) 물론 만보객은 거리를 거실로 삼고 살아간다. 그러나 거리를 침실이나 욕실이나 부엌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이때는 자기 삶의 가장 내밀한 국면들이 낯선 타인에게 내보여지며 궁극적으로 경찰에게 내보여진다.
-수잔 벅 모스 지음,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5, 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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