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기적적인 찰나의 순간, 수직적 시간
이윽고 시시신이 스러져간 대지 위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숲, 모든 것이 불타버린, 이제는 ‘숲’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거대한 폐허 위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와 식물들이 피어오른다. 시시신을 해묵은 전설의 귀신쯤으로 여기던 사람들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수군거린다. “시시신은 싹을 틔우는 신이었나 봐…….” “시시신은 꽃을 피어나게 하는 신이었나 봐…….” 모두가 이 숲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마법처럼 피어오르는 꽃들을 바라보며 행복해 한다. 자신을 겨냥하는 에보시의 화승총 위에까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렸던 시시신의 넋은 그렇게 아름답게 부활했다. 그는 자신의 온몸을 대지에 공양하여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된 것이다. 사력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이 아름다운 숲을 다시 되찾아준 시시신, 총탄에 맞아 머리를 잃고도 잔인한 인간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숲을 되돌려준 시시신의 가없는 사랑 앞에 사람들은 떳떳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원령공주: 아무리 숲이 살아나도, 이젠 더 이상 시시신의 숲이 아니야……. 시시신은 죽었어.
아시타카: 시시신은 죽지 않아……. 시시신은 생명 그 자체거든. 그는 삶과 죽음을 모두 갖고 있지. 내겐 삶을 돌려주셨어. (어느덧 그의 온몸으로 퍼져나가던 저주의 흉터가 사라지고 분홍빛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원령공주: 난 널 좋아하지만. 인간은 용서 못해.
아시타카: 그래도 좋아. 너는 숲에서, 나는 타타라 마을에서. 우리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더 좋은 마을을 세우자.
자신의 종족인 에미시 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아시타카는 결국 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이 낯선 공간에서 ‘타인의 꿈’을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자신에게 삶을 돌려준 시시신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단지 자기 부족의 안위를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숲을 함께 일으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시타카. 그는 굳이 원령공주를 ‘문명화’시켜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 곁에서, ‘들개의 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그녀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 그는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기로 한다. 완전히 바뀌어버린 자신의 미션을 스스로 선택하는, 들개와 인간 사이, 자연과 문명 사이의 그 위험천만한 길을 선택하는 아시타카. 나의 목숨, 나의 가족, 나의 땅, 나의 부족, 나의 삶……. 이 모든 ‘나의’ 소유격에 들러붙은 욕망의 가면을 벗어던졌을 때 아시타카에게는 진정한 ‘몽상의 시간’이 시작될 수 있었다.
시시신의 육체가 파열되는 순간. 우리는 시시신의 육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본질을 처음으로 ‘대상’으로서 마주하는 충격을 느낀다. 이 순간은 바슐라르가 말하는 ‘수직적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시계적 시간, 자연과학적 의미의 양적 시간과는 달리 인간이 존재를 시적 이미지로 파악할 수 있는 몽상의 시간. 바슐라르의 수직적-우주적 시간은 이토록 둔감하고 무신경한 인간에게 우주의 비밀을 잠깐 엿볼 틈을 주는 기적적인 찰나의 순간이다. 이 수직적 시간은 한 인간이 우주로 향할 수 있는 비밀 통로이다.
인간들은 숲을 파괴하면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며, 숲을 파괴함으로써 우주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설명도 없이 그 순간의 ‘시적 이미지’가 바로 이해되는 그 순간. 아무런 해설자도 필요 없이, 어떤 주석도 어떤 언어도 필요 없이,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생의 비밀이 곧바로 온몸으로 이해되는 그 순간. 바슐라르는 그 순간을 시적 순간이자 형이상학적 순간이자 우주적 순간이라고 했다. 이토록 작은 인간이 저토록 커다란 우주와 직통으로 통화하는 시간, 운명이 우리의 ‘머리’가 아닌 ‘몸’을 관통하는 순간. 위대한 시인이, 오랫동안 고민하던 시적 대상에 가장 어울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형용사’를 마침내 찾았을 때의, 그 섬광 같은 환희의 순간.
몽상가는 슬프다는 것이 행복스러우며, 홀로 있고 기다린다는 것이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 구석 속에서 그는, 열정의 정상에서는 으레 그러하듯, 삶과 죽음에 대해 명상한다. (……) 그는 곧 세계는 명사의 영역에 속하는 게 아니라 형용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바슐라르, 곽광수 역, 『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259~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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