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임란으로 사라진 늘그막 협객을 만나다
이 시는 16세기 말 서울의 임협(任俠)을 그린 내용으로, 당시의 시정세태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시는 협객 중의 한 사람이었던 나수양(羅守讓)에게 지어준 형식이다. 시의 현재는 임진왜란 직후의 어느날, 시를 쓴 장소는 전라도 임실이다. 그런데 서사의 화폭이 펼쳐진 시공은 임진왜란 직전의 서울 성중이다. 작품은 서두에서부터 무사안일로 사치 향락에 젖은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특히 협객들의 소식과 활동상을 들려준다. 이른바 삼정오라(三鄭五羅)의 명성이라든지, 시정에서 호기를 다투고 우쭐거리며 노는 정경이라든지 모두 진기하고 재미난 사실로 엮인다.
그러나 작품은 한낱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흥미로운 세태를 펼쳐 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협객들의 활동상을 서술한 다음 “저처럼 용맹한데 누가 감히 대적할까[郭解精悍人誰敵]?”라고 일단 찬탄의 말로 정리를 한다. 바로 이어 왜군의 침략을 받게 되는데 “으스대던 협객들도 연기처럼 흩어지니[豪華任俠散如煙 ]”라고 정작 용맹을 발휘해야 할 자리에 당해서 무력했음을 뚜렷이 인식케 한다. 7년 전란의 어려움 속에서 침략군을 몰아내고 조국을 수호한 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하지만 침략군이 "하루아침 섬놈들이 삼경을 짓밟으니 / 한양성 번화 문물 잿더미로 변했구나[一朝海寇蹵三京 漢陽文物煙塵腥]”라고 시인이 몹시 개탄했던 그 책임과 과오를 엄중히 따져 물어야 옳았다. 또한 각기 자기반성도 있어야 할 일이다. 작품의 주제는 안일에 젖었던 데 대한 자기반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인은 시를 주는 인물, 나수양에 대해 의기를 북돋는 말을 결말에서 덧붙인다. 원수를 갚는 그날에 그대는 늙었으되 참으로 지모와 용기를 내보라는 의미다. 시인의 의식의 저변에는 적개심과 원수에 대한 응징의 정신이 타오르고 있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39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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