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즐거움, 알게 되는 기쁨
『소화시평』 권하 79번에서 나오는 이계(李烓)는 한문임용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작품집을 읽는다는 건 이런 부분에서 좋다. 늘 관심 갖던, 여러 사람에게 회자된 인물 외에 저자가 관심 갖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면 학생들은 누군가를 알아야만 할 때 “이 사람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이런 건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학창시절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고자 해서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알아야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단 이유만으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한문학사 상의 인물을 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여러 군데서 회자되는 인물의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작품을 봐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의 경우엔, ‘굳이 이런 인물까지 알아야 하는 거야?’라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오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공부든 앎이든,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알아야만 하고 그걸 모르면 어떠한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알아야만 하는 게 하나 하나 늘어갈수록 짜증만 났던 것이고, 그건 급기야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사람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텐데’라는 감상을 낳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홍수 속에 노출되며 부담을 느끼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공부가 재밌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수동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알고 싶고, 또 궁금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그 사람은 어떤 삶의 궤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게 지겹지도 부담스럽지도 않고 재밌기만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진짜 교육의 필요성은 무언가를 많이 가르쳐주는 데에 있지 않고 이처럼 궁금하게 만들고 알고 싶게 만드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현실적인 학교 시스템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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