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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7. 계곡과 택당이 담지 못한 것을 담은 동명의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7. 계곡과 택당이 담지 못한 것을 담은 동명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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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과 택당이 담지 못한 것을 담은 동명의 시

 

 

소화시평권하 77에서 계곡ㆍ택당ㆍ동명 세 사람의 문학적 재능을 우열로 나누어볼 게 아니라 각자가 장점을 지니고 있다라고 홍만종이 평가한 것에 대해서 저번 후기에서 그게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홍만종은 각자 시인들의 장점을 네 글자로 얘기한 다음에 그걸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어떤 느낌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계곡 장유의 문장에 대해선 혼후류창(渾厚流鬯)’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거대하고 거침이 없으며, 확 트였다는 뉘앙스다. 스케일 자체가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홍만종은 끝없는 호수에 바람이 불어봤자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고 비유했다.

택당 이식의 문장에 대해선 정묘투철(精妙透徹)’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매우 섬세하고 정밀하다는 것이다. 즉 택당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문장이나 시를 구사하는 남자라고나 할까? 그래서 내장까지도 비칠 수 있던 진나라시대의 거울로 모든 사물을 비추듯 세세하게 묘사된다고 비유했다.

동명 정두경의 문장에 대해선 발월준장(發越俊壯)’하다고 평가했는데 그건 역시나 김창흡이 말했던 것과 같이 웅장하며 장엄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푸른 하늘에 갑자기 우레가 쾅쾅 내리치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홍만종이 평가한 내용만 보더라도 세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이 확실하다는 걸 알 수가 있다.

 

하지만 홍만종은 이번에도 동명시를 인용하며 두 사람이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부분을 동명은 지니고 있었으며 그건 마치 이태백 시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미 두 편의 후기(75번 후기, 76번 후기)를 통해 얼마나 정두경을 존경하며 그의 시를 좋아하는지 여실히 보여줬기에 이상해보이진 않지만, 이번 편의 구성에서 이 말을 쓴 건 좀 사족 같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편은 사람들이 세 사람의 실력을 나누는 것은 잘못 됐다 모든 작품엔 각자의 가치가 있다 세 사람의 문학적 특징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결론은 그렇기에 세 사람은 우열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개성이 확실하다라고 했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열을 나누지 말라고 말한 것과 상충되도록 마지막에 굳이 동명의 남다른 시 한 편을 들면서 두 사람이 말하지 못한 것을 말했다며 추켜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게 되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흐트러지게 되기에 의아하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건 그만큼 홍만종의 정두경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로 강렬하다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海上白雲間 蒼蒼皆骨山 바닷가 흰 구름 사이의 푸르디 푸른 개골산으로
山僧飛錫去 笑問幾時還 스님은 석장을 날려 떠나가니 웃으며 언제 돌아올지 묻는다네.

 

그렇다면 홍만종이 동명을 추켜세우기 위해 인용한 시가 얼마나 좋은 시인지를 볼 필요가 있다. 시는 결코 어렵지가 않다. 강서시파처럼 배열을 신경 쓰지도 전고를 끌어대거나 하지 않고 으레 볼 법한 아주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해석도 그리 어렵지가 않다.

 

바닷가 흰 구름 사이에 푸른 개골산이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이 장면만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개골산이 마치 신선 세계와 같이 몽환적인 분위기로 묘사되어 있다. 그곳으로 스님은 석장을 가지고 축지법을 쓰듯 떠나려 한다. 그때 동명은 그 스님에게 언제쯤 돌아오실 겁니까?”라고 묻는다는 말로 마무리 되어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쓰여져 있고 떠나려는 스님과 그런 스님이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담고 질문을 던지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분위기 자체가 마치 이백의 산중답인(山中答人)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기에 홍만종은 이 시를 읽고서 이백과 흡사하다고 한 게 아닐까.

 

여기에 대해 교수님은 왜 맨 마지막 구절에서 저런 물음을 던졌을 거 같아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미 이 시 전문을 봤기 때문에 이 시는 원래 통천 수령인 친구에게 줄 편지를 스님편에 부치며 쓴 시이니, ‘친구의 답장이 빨리 받고 싶으니 스님 얼렁 돌아오세요?’라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스님을 우편배달부 정도로 인식했다는 건데 그건 상대방에 대해 결례가 되는 일이기에 그런 식으로 쓰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메시지는 당연히 스님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하는 이야기로 보아야 맞다. 스님이 지금 지리산으로 떠나려는 이유는 뭔가? 그건 불도를 닦기 위해서다. 그러니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불도에 정진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는 얘기도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지리산의 풍광이 너무나 좋아 그것에 푹 빠진 나머지 돌아올 걸 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핵심은 스님의 인품이 높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이 말이 쓰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 또한 권하 61에 여러 선비가 스님한테 준 시 중에 호음이 쓴 시와 비슷한 정감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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