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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9. 역사를 한시에 담아내다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79. 역사를 한시에 담아내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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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한시에 담아내다

 

 

睥睨平臨薩水湄 성가퀴 살수가를 굽어보는데
高風獵獵動旌旗 높은 바람에 펄럭펄럭 정기가 나부끼네.
路通遼瀋三千里 길은 요동과 심양 삼천리로 통하고
城敵隋唐百萬師 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백만 군사를 대적했지
天地未曾忘戰伐 천지는 일찍이 전쟁을 잊은 적이 없으니
山河何必繫安危 산하에 하필 안위가 달렸으랴.
悽然欲下新亭淚 처연히 신정의 눈물 떨구려 하니
樓上胡笳莫謾吹 누각 위에서 호가 쓸데없이 불지 마라 .

 

소화시평권하 79에 나오는 이계의 시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긴 해도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얼핏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이해했던 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새삼 느끼게 되는 건 어느 작품이든 좀 더 깊숙이 살펴보면, 내밀하게 궁리해보면, 알쏭달쏭함을 유영하다 보면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과연 그런 정도의 애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가?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함께 고민하고 시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스터디 시간은 나에겐 둘도 없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1~2구는 백상루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감정들을 담았다. 백상루의 성가퀴는 나직이 살수가와 수평처럼 보이고 그 위에 꽂아진 정기들은 바람이 부는지 펄럭인다. 이 광경은 백상루에 오르지 않고 멀리서 백상루를 바라보며 스케치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3~4구에선 백상루가 놓인 지리적 위치와 그 안에 스민 역사를 말한다. 백상루는 요충지라 요동과 심양으로 향하는 길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양이 어딘가? 바로 금나라(후에 청나라로 개명한다)의 발상지다. 그곳에서 금나라는 국력을 키워 명나라를 꺾고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게 되는 출발지라 할 수 있다. 그건 곧 예전부터 중국에서 쳐들어오는 군대들은 지금 백상루가 놓인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러니 고구려가 있던 시절엔 이곳에서 수나라와 당나라 군대를 맞아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었던 거다. 이렇게까지 말을 했다면 한 번쯤은 병자호란이란 키워드를 떠올렸어야 했는데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나온 말이겠거니 하며 넘어갔는데, 이계는 바로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바로 이런 시구를 구상한 거였다. 그 말은 곧 남한산성에서의 엄청난 패배, 그리고 청태조에게 인조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했던 치욕, 그리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뭇 사람들이 청나라로 끌려간 것까지 한 번에 떠올릴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건 조선의 치욕이었고 역사의 비극이었다. 이계는 바로 이 구절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을 테다.

 

그런 상황에서 5~6구를 말하고 있으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걸 단순히 해석해보면 산하는 안위에 매이지 않아 유유히 흘러가는데 인간세상만이 이렇게 나라가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어왔다고 마치 이색의 부벽루시를 읽을 때의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게 아니라 명확히 알려줬다. 그건 다름 아닌 인생무상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어찌 산하의 험고함에만 국가의 안위가 달렸냐는 말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건 맹자가 공손추에서 말한 하늘의 때는 지리적인 이점만, 지리적인 이점은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는 내용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시기일지라도, 아무리 험난한 지형일지라도 그것 이상으로 인화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패망한 역사는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계는 결국 조선왕조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다고 보아야 맞다.

 

그런 상황이니 이계는 지금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바탕 울어재끼고 싶은데 누각에선 누군가 그런 감흥을 방해하듯 호가를 불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호가란 이미 조선이 청나라에 함락당했다는 걸 드러내주는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시가 아닌 역사적 배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런 비감을 한껏 펼쳐낸 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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