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수재라 칭송되었던 이계와 그의 죽음을 슬퍼한 택당
李烓能文章, 罕世之才也.
其「百祥樓」詩曰: “睥睨平臨薩水湄, 高風獵獵動旌旗. 路通遼瀋三千里, 城敵隋唐百萬師. 天地未曾忘戰伐, 山河何必繫安危. 悽然欲下新亭淚, 樓上胡笳莫謾吹.” 詞氣俊邁.
且如蛩吟野逕秋聲急, 雀噪柴門暮景疎, 亦淸警.
澤堂嘗在龍灣, 聞烓被死, 方對案, 却肉不食, 嗟悼良久. 傍人怪問之, 曰: “吾非爲其人, 惜其絶藝也.”
해석
李烓能文章, 罕世之才也.
이계【이계(1603~1642):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희원(熙遠), 호는 명고(鳴皐). 간관으로 있으면서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주화파로서 척화파 김상헌(金尙憲) 등을 공격하는 데에 앞장섰다. 1641년 말 선천부사로 있을 때에 명나라 상선과 밀무역하다가 청나라에 발각되어 의주에 구금되었다. 청나라 장군 용골대(龍骨大)의 심문으로 처형을 받게 되자, 구명책으로 최명길·이경여·신익성·이명한 등이 명나라와 밀통한다는 사실과 또 우리나라의 음사(陰事) 12조를 고하였다. 청나라 장군은 이계를 국가와 왕을 배신하는 자로 판단하고 우리나라에서 처단하도록 연락하였고, 조정에서는 의금부도사 정석문을 보내 1642년에 참수하였다. 문장과 시에 능하였다】는 문장을 잘 지었으니 세상에 드문 수재였다.
其「百祥樓」詩曰: “睥睨平臨薩水湄, 高風獵獵動旌旗. 路通遼瀋三千里, 城敵隋唐百萬師. 天地未曾忘戰伐, 山河何必繫安危. 悽然欲下新亭淚, 樓上胡笳莫謾吹.”
「백상루(百祥樓)」【평안남도 안주(安州) 북쪽 청천강(淸川江) 가에 있는 누대로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고구려 영양왕(嬰陽王) 26년(615)에 건립되었다 한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睥睨平臨薩水湄 | 성가퀴 살수가를 굽어보는데 |
高風獵獵動旌旗 | 높은 바람에 펄럭펄럭 정기가 나부끼네. |
路通遼瀋三千里 | 길은 요동과 심양 삼천리로 통하고 |
城敵隋唐百萬師 | 성은 수나라와 당나라 백만 군사를 대적했지 |
天地未曾忘戰伐 | 천지는 일찍이 전쟁을 잊은 적이 없으니 |
山河何必繫安危 | 산하에 하필 안위가 달렸으랴. |
悽然欲下新亭淚 | 처연히 신정의 눈물 떨구려 하니 |
樓上胡笳莫謾吹 | 누각 위에서 호가 쓸데없이 불지 마라 . |
詞氣俊邁.
말의 기세가 준수하고 고매하다.
且如蛩吟野逕秋聲急, 雀噪柴門暮景疎,
또 다음과 같은 시의 경우는
蛩吟野逕秋聲急 | 들길에서 귀뚜라미 우는 건 가을소리가 다급해서이고 |
雀噪柴門暮景疎 | 사립문에서 참새가 지저귀는 건 저녁햇살이 성글어서이지. |
亦淸警.
또한 맑아 사람을 깨우친다【청경(淸警): 시격(詩格)이 매우 맑아 사람을 깨우친다는 뜻이다. 이규보는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산인(山人)의 체격(體格)이요,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궁액(宮掖)의 체격이다. 오직 청경(淸警)ㆍ웅호(雄豪)ㆍ연려(姸麗)ㆍ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체격이 갖추어진다[純用淸苦爲體, 山人之格也; 全以姸麗裝篇, 宮掖之格也. 惟能雜用淸警雄豪姸麗平淡然後備矣].” 하였다. -『論詩中微旨略言』】.
택당이 일찍이 용만에 있을 적에 이계가 죽임 당했다는 걸 듣고
方對案, 却肉不食,
막 밥상을 마주하고 있다가 고기를 물리쳐 먹질 않고
嗟悼良久.
탄식과 애도를 오래도록 했다.
傍人怪問之, 曰:
곁에 있던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대답했다.
“吾非爲其人, 惜其絶藝也.”
“나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빼어난 재주를 애석해하는 것이라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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