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한문
번호 | 내용 | |
출전 | 교과서 | |
1 | “余爲大韓獨立而死, 爲東洋平和而死, 死何憾焉?” 遂換着韓服, 從容就刑, 年三十有二. | |
이젠119, 장원128 | ||
2 | 顧左右曰: “勿令史官知之.” | |
조선왕조실록 | 중앙156 | |
3 | 求言綸音, 王若曰: “嗚呼! 國之興亡, 亶係於言路之開閉, 言路閉而國不亡, 幾希矣.” | |
승정원일기 | 중앙144 | |
4 |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 易習, 便於日用耳. | |
훈민정음(해례본) | 금성193, 다락150, 대명159, 동화118, 비상168, 이젠159, 장원120, 중앙148, 한국202 | |
5 | 今承聖敎, 二本竝存, 亦不害爲遵行故規矣. | |
일성록 | 중앙156 | |
6 | 今臣戰船, 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 | |
이충무공전서 | 중앙178 | |
7 | 東方, 初無君長, 有神人, 降于檀木下. 國人, 立爲君, 是爲檀君, 國號朝鮮. | |
비상156 | ||
8 | 宣光七年丁巳七月日, 淸州牧外興德寺, 鑄字印施. | |
직지심체요절 | 동화118 | |
9 | 世勣, 遂攻安市. (중략) 請克城之日, 男子皆坑之, 安市人聞之, 益堅守, 攻久不下. | |
삼국사기 | 대명141 | |
10 | 遜寧語熙曰: “汝國, 興新羅地, 高句麗之地, 我所有也, 而汝侵蝕之." (중략) 熙曰: ”非也. 我國, 卽高句麗之舊也. 故號高麗, 都平壤." | |
고려사 | 지학114 | |
11 | 舜臣, 親犯矢石力戰, 有飛丸, 中其胸, 出背後. 左右, 扶入帳中, 舜臣曰: “戰方急, 愼勿言我死.” | |
징비록 | 장원124 | |
12 | 十五日癸卯. 晴. 數小舟師, 不可背鳴梁爲陣, 故移陣于右水營前洋. 招集諸將約束曰: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 |
이충무공전서 | 금성181 | |
13 | 我三國時, 百濟人王仁, 携書籍以入云, 至今向我人, 致無限感謝之意. | |
일동기유 | 지학103 | |
14 | 王仁持千家文而至, 道稚又師之 儒敎始行. | |
청장관전서 | 동화118, 지학102 | |
15 | 龍福謂島主曰: “鬱陵芋山, 本屬朝鮮, 自古代已然. 論以地形, 朝鮮, 距近一日程; 日本, 遠距五日, 屬我鮮, 明矣.” | |
일사유사 | 한국196 | |
16 | 壬辰, 遣大將申砬ㆍ李鎰, 巡視諸道兵備. (중략) 時朝野, 皆以砬勇武爲可恃, 砬亦意輕倭奴, 以爲不足憂, 朝廷信之. | |
선조수정신록 | 중앙170 | |
17 | 子罕曰: “我以不貪爲寶, 爾以玉爲寶. 若以與我, 皆喪寶也, 不若人有其寶.” | |
미래188 | ||
18 | 從者曰: “人必取去, 何益? 不如不償.” 曰: “吾固知之. 然必如是, 吾心得安.". | |
고려사 | 비상146 |
한문Ⅰ
번호 | 내용 | |
출전 | 교과서 | |
1 | “凡爲治, 必須博觀典籍. 吾東方在海外, 中國之書罕至, 板刻易以刓缺, 且難盡刊天下之書. 予欲範銅爲字, 以廣其傳, 誠爲無窮之利.” 遂命置鑄字所, 用古註詩·書·左氏傳字鑄之, 此鑄字所由起也. | |
씨마134 | ||
2 | 高麗不修『渤海史』, 知高麗之不振也. 昔者高氏居于北曰高句麗, 扶餘氏居于西南曰百濟, 朴昔金氏居于東南曰新羅. 是謂三國, 宜其有三國史, 而高麗修之是矣. 扶餘氏亡高氏亡, 金氏有其南, 大氏有其北曰渤海. 是謂南北國, 宜其有南北國史, 而高麗不修之非矣. | |
高麗不修『渤海史』, 知高麗之不振也. 昔者高氏居于北曰高句麗, 扶餘氏居于西南曰百濟, 朴昔金氏居于東南曰新羅. 是謂三國, 宜其有三國史, 而高麗修之是矣. 扶餘氏亡高氏亡, 金氏有其南, 大氏有其北曰渤海. 是謂南北國, 宜其有南北國史, 而高麗不修之非矣. 夫大氏何人也? 乃高句麗之人也. | ||
다락120 | ||
영재집 | 대명152, 대학138, 비상 122, 지학116 | |
3 |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 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 易習, 便於日用耳. | |
훈민정음해례본 | 금성133, 다락140 | |
4 | 今我韓處在列强之間, 交際則可, 而依附則不可也; 藝術則可學, 而勢力則不可借也. 若以依附爲得計, 以勢力爲可借, 則是委其國於他人也. (중략) 嗚呼! 國之不存, 彼政黨之, 但願其私, 不恤其國者, 果能獨饗其利乎? | |
겸곡문고 | 천재124 | |
5 | 上, 率武臣十餘人, 沿江放鷹, 日暮還宮. 史官閔麟生, 隨至上見之, 目內竪問: “何爲而來乎?” 對曰: “臣以史官, 不敢廢職, 故來耳.” | |
조선왕조실록 | 미래116 | |
6 | 上笑曰: “此予燕處, 勿入可也.” 又語麟生曰: “史筆, 宜直書, 雖在殿外, 豈不得聞予言?” 麟生對曰: “臣如不直, 上有皇天.” | |
조선왕조실록 | 천재46 | |
7 | 上曰: (중략) “‘太宗實錄’ 春秋館, 今已畢撰. 予欲見之, 何如?” 右議政孟思誠ㆍ提學尹淮ㆍ同知摠制申檣等曰: “今所撰實錄, 皆載嘉言善政, 無所更改, 況我殿下其有更改之乎? 殿下若見之則後世之主, 必效而更改之, 史官, 亦疑君上之見, 必不盡記其事, 何以傳信於將來?” 上曰: “然.” | |
조선왕조실록 | 이젠141, 장원122 | |
8 | 十三年, 上曰: “太宗實錄垂成, 予欲觀之.” 右議政孟思誠曰: “實錄所載, 皆當時之事, 以示後世, 皆實事也. 殿下見之, 亦不得爲太宗更改, 今一見之, 後世人主效之, 史官疑懼, 必失其職 何以傳信將來?” 上從之. | |
국조보감 | 대학144 | |
9 | 안용복은 동래부(東萊府) 전선(戰船)에 예속된 노군(櫓軍)으로, 왜관에 출입하여 왜어에 능숙하였다. 숙종(肅宗) 19년 계유 여름에 풍랑으로 울릉도에 漂流했는데, 왜선 7척이 먼저 와서 섬을 다투는 분쟁이 일고 있었다. 이에 용복이 왜인들과 논란하니, 왜인들이 노하여 잡아 가지고 오랑도(五浪島)로 돌아가 구금하였다. 용복이 그 도주에게 말하기를 “鬱陵芋山, 本屬朝鮮. 朝鮮近而日本遠, 何故拘執我不歸?”하니라. 도주가 백기주(伯耆州)로 돌려보냈다. 이에 백기도주(伯耆島主)가 빈례 (賓禮)로 대우하고 많은 은자(銀子)를 주니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도주가 “그대의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용복이 전후 사실을 말하고 이르기를 “禁止侵擾, 以厚交鄰, 是吾願也.” 島主許之, 稟于江戶, 成契劵與之, 遂遣還. | |
성호사설 | 대명152 | |
10 | 吾起兵, 至今八歲矣. 身七十餘戰, 所當者破, 所擊者服, 未嘗敗北, 遂霸有天下. 然今卒困於此, 此天之亡我, 非戰之罪也. 今日 固決死, 願爲諸君快戰, 必三勝之. | |
미래176 | ||
11 | 許市民六廛外通共和賣. | |
정조실록 | 대학158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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