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조선왕조 행실도(行實圖)의 역사
조선왕조의 불교탄압, 대한민국의 반공교육
주자학의 교조주의적 성행으로 조선왕조는 불교를 탄압했다[崇儒抑佛]. 그 탄압의 수준이 이승만ㆍ박정희 정권하에서 좌파지식인을 탄압하는 것보다도 더 악랄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탄압은 물리적 탄압 그 자체로 유지될 수가 없다. 반드시 성공적인 ‘반공교육’이 수행되어야만 한다. 정신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대중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탄압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권력의 압제란 부정적인 방법만으로는 무기력한 듯이 보이는 대중 속에서도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교육이란 추상적인 논리로써는 가능하지 않다. 대중에게 격조 높게 역사 필연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을 설파하는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식 반공논리를 가르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서민들에게 주자학의 이기론적 배불론(拜佛論)이라는 것은 포퍼 논리의 느낌 이상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다. 대중은 비근한 구체적 사례와 상상의 실마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이미지ㆍ영상을 필요로 한다.
박정희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반공교육의 사례는 아마도 ‘이승복 어린’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순결한 아동의 애절한 절규가 있고, 처참한 희생이 있고, 또 무한한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린이라는 입지가 있다. 그에 반하여 무자비한 빨갱이의 만행과 잔인함이 부각되고 극적인 장면들이 듣는 이들의 가슴을 서늘케 만든다. ‘이승복 어린이’라는 영웅은 거국적인 대규모의 대중세뇌자료로 곧 활용된다. 전국의 국민학교 운동장에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만들어지고, 이승복의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리며, 그를 소재로 한 만화ㆍ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또 글짓기대회ㆍ웅변대회가 조장된다.
세종 10년(1428) 9월 27일, 진주(晋州)에 사는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그 아비를 살해했다는 사건이 형조에 의하여 계(啓: 임금께 보고함)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은 세태를 한탄했다.
계집이 남편을 죽이고, 종이 주인을 죽이는 일은 혹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제 아비를 죽이는 자까지 있다고 하니, 이것은 반드시 내 덕이 비색(否塞)하여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婦之殺夫, 奴之殺主, 容或有之. 今乃有殺父者, 此必予否德所致也.
이 사건을 놓고 조정의 대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핵심은 ‘이하범상(以下犯上)’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하극상의 현실이 아버지까지 죽이는 데까지 이른다고 하면 모든 금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면, 임금이 잘못했다고 임금을 죽이는 일까지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차마 아버지를 죽일 수 없듯이, 차마 임금에게는 거역 못한다고 하는 어떤 윤리적 장벽이 없으면, 인간의 합리적 판단만으로는 세상의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고 보는 것이 유교 모랄리스트(moralist)들의 생각이다.
그 사건이 보도된 후 며칠 후 10월 3일, 세종은 신하들과 이 사건에 관한 대책을 논한다. 이때 판부사(判府事) 변계량(卞季良)은 『효행록(孝行錄)』 등의 책들을 광포(廣布) 시켜서 여항(閭巷)의 보통사람들이 항상 생활 속에서 독송(讀誦)하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효제와 예의의 마당[孝悌禮義之場]’으로 그 몸이 젖어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세종은 직제학(直提學) 설순(偰循)에게 『효행록(孝行錄)』의 간행을 명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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