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박성원의 『돈효록』을 간행한 정조의 효의식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줏간에 갇혀 굶어죽는 8일간의 고통을 11세의 나이에 같이 했다. 그는 그 현장을 목격했고 피끓는 아픔으로 그 처절한 사투를 같이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정조의 효심은 각별한 것이었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이한 다음 다음 해 정조 21년(1797) 정월 초일에, 앞서 말한 『이륜행실도』와 『삼강행실도』를 합본하여 새롭게 편찬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펴낸다(총 150 케이스, 그 중 한국인은 16명), 그 서문에서 엄마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이하도록 모실 수 있었던 행운을 언급하면서 이와 같이 말한다.
정치가 돌아가는 것은 조정에서 볼 수 있고, 나라의 풍속은 민간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치가 미치는 한계는 매우 천박한 것이요, 풍속이 발전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심오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민간을 우선으로 하고, 조정은 뒤로 한다.
觀政在朝, 觀俗在野. 政之所及者淺, 俗之所得者深. 故善乎觀人之國者, 必先其野, 而後其朝肆.
『오륜행실도』를 펴내는 그의 문제의식의 명료함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정조 7년(1783)에는 어제(御製) 『돈효록(敦孝錄)』을 펴내었다. 그 「어제서(御製序)」에서 정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효란 하늘의 벼리요, 땅의 마땅함이요, 사람의 길의 큰 근본이다. 『효경』의 이와 같은 말씀에 더 붙일 말이 없다. 왕된 사람이 백성을 가르치고 풍속을 이루는 데 효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행하고자 하는 자는 효를 일으키는 것을 제일 힘써야 할 일로 삼지 아니 한 자가 없다
孝爲天經地義人道之大本, 固無論已. 王者之敎民成俗, 莫急於孝. 故爲政者, 未有不以興孝爲先務焉.
『돈효록(敦孝錄)』은 본시 영조 38년(1762)에 조선 후기 학자인 박성원(朴聖源)이 『효경』, 「서명(西銘)」을 비롯하여 경사와 다양한 문헌에서 효와 관련된 각종 교훈과 고사를 가려내어 57권 23책으로 편찬한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것은 효를 주제로 한 대백과사전과도 같은 것이며 박성원의 필생의 노작이다.
주희가 『간오(刊誤)』 끝머리에서 『효경』의 뜻을 발휘하는 말들만 여러 책에서 골라 모아 별도로 외전(外傳)을 짓고 싶으나 여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바로 그 작업을 완수한 셈이다. 방대한 자료를 효의(孝義), 효교(孝敎), 생사(生事), 상사(喪事), 봉제(奉祭), 효감(孝感), 현미(顯美), 계술(繼述), 광효(廣孝), 수신(守身), 처변(處變), 11개 항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박성원이 원래 이 책의 이름을 『효경』의 뜻을 펼쳐내는 책이라 하여 『효경연의(孝經衍義)』라고 지었는데, 그의 스승이며 노론계 낙론(洛論)의 거두인 도암(陶庵) 이재(李縡, 1680~1746)가 효행의 돈독함을 권장한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돈효(敦孝)’라고 명명(命名)한 것을 존중하여 선생의 말대로 책이름으로 삼는다고 서(序)에 써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돈효록』이라는 이름보다는 당연히 『효경연의』가 되었어야 한다.
정조가 간행한 책으로 『돈효록』은 효에 관한 이론의 집대성이며 학구적 노작이며, 『오륜행실도』는 효에 관한 실천사례 집성으로서 대중계몽적 걸작이라 할 것이다. 『돈효록』을 테오리아(theoria, 이론)라고 한다면, 『오륜행실도』는 프락시스(praxis, 응용)라고 할 수 있다. 정조의 삶에 있어서 이 테오리아와 프락시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바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다.
▲ 62권,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 소장,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1915~2005) 교수 기증본.
명나라 제5대 황제 선종(宣宗, 朱瞻基, 1425~34 재위)이 경전과 기타전적에서 오륜(五倫)과 관련있는 가언(嘉言)과 선행(善行)을 채집하여 62권으로 편찬한 것. 선종은 조카 건문제(建文帝)의 제위를 찬탈하고 그 찬탈에 항거한 대유(大儒) 방효유(方孝孺) 등 900여 명의 일족과 친구, 학자들을 학살한 영락제의 손자이다.
그러므로 재위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에 이런 책을 적극적으로 편찬한 것이다. 권 1은 오륜총론(五倫總論), 권2~23은 군도(君道), 권24~53은 신도(臣道), 권54~55는 부도(父道), 권56~58은 자도(子道), 권59 부부지도(夫婦之道), 권60은 형제지도(兄弟之道), 권61~62 붕우지도(朋友之道)로 구성되어 있다.
영종(英宗) 정통(正統) 12년(1447)에 상재(上梓), 천하(天下)에 반포하였다. ‘광운지보(廣運之寶)’라는 황제의 주인(朱印)이 찍혀있다.
1469년 중국황제가 보낸 이 책을 조선의 사신들이 받아와서 예종(睿宗, 1468~69 재위)에게 바쳤는데 예종은 바로 영락제의 선례에 힘입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아들이다. 정조의 『오륜행실도』 편찬은 우리나라에 이미 들어와 있었던 중국 도덕교과서들의 사례를 따른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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