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은 잘못된 개념, 전래경전과 토착경전만 있을 뿐
용주사에 소장된 목판본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뒤에 보면, ‘세유조집서중하개인(歲柔兆執徐仲夏開印), 장우화산용주사(藏于花山龍珠寺)’라고 되어 있다.
고갑자(古甲子)로 ‘유조(柔兆)’는 천간(天干) 병(丙)의 별칭이고, ‘집서(執徐)’는 12지중 진(辰)의 별칭이다. 때는 병진년(정조 20년, 1796) 중하(仲夏: 한 여름)에 개인(開印: 초판 인쇄)하였고, 경판은 화산 용주사에 보관한다는 뜻이다. 이 목판은 규장각(奎章閣) 소속의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경판을 용주사에 내려보내어, 그곳에 보관케 하였다. 용주사에 경판이 보관된다는 의미는 용주사에서 계속 책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 목판의 특징은 변상도 12매(목판은 앞뒤로 다 새겼으므로 6매가 된다), 한문 경전 22매(목판 11매), 한글 경전 50매(목판 25매)가, 보통 경전에는 혼합되어 병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 한글 경전에 변상도만 붙이어 책으로 만들 수도 있고, 순 한문 경전에 변상도를 붙이어 책으로 만들 수도 있고, 변상도, 한문, 한글을 합본할 수도 있다. 완벽하게 대중보급을 의식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대중보급을 의식하였기 때문에, 한문본이나 한글본에 모두 친절하게 용어 해석을 한 주석까지 곁들였다.
『부모은중경』을 보통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라고 일컬어지지만, ‘위경(僞經)’이라는 표현은 매우 잘못된 관념에서 날조된 용어이다.
불경의 경우 진ㆍ위를 인도경전을 기준으로 하여 말할 수 없다. 인도경전 자체가 다양한 유파에 의하여 시공을 달리하여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팔리어 아가마(āgama)【아함경(阿含經): 장부(長部)ㆍ중부(中部)ㆍ상응부(相應部)ㆍ증지부(增支部)ㆍ소부(小部)의 다섯 니까야(Nikāya, 部)가 있다】 경전 정도나 그 권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불경에 대해 진위를 논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불성설이다.
한역불경을 기준으로 해서 말한다면 ‘전래경전(傳來經典)’과 '토착경전(土着經典)’ 정도로 분류하는 것이 훨씬 더 불교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표현해 줄 것이다. 불교는 토착화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전을 위경(僞經)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위경(apocrypha)’이라는 개념은 오직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가톨릭 정통파의 편견 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개념일 뿐이다. 『부모은중경』을 보면 그것이 효사상을 강조하는 중국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하고, 고판본에는 유향의 『효자전』에 나오는 정란(丁蘭), 곽거(郭居)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1900년에 발굴된 돈황 문서 중에 그러한 문헌이 실제로 발견되었다】.
인용
'고전 > 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경한글역주,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 『은중경』은 가지산문 학승의 작품 (0) | 2023.03.31 |
---|---|
효경한글역주,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 효의 새로운 보편주의적 지평 (0) | 2023.03.31 |
효경한글역주,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 『은중경』 대성공의 비결 (0) | 2023.03.31 |
효경한글역주,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 불교와 여성성 (0) | 2023.03.31 |
효경한글역주, 제6장 한국의 토착경전 『부모은중경』 -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0) | 202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