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경』은 가지산문 학승의 작품
보경스님과 정조의 특별한 만남이 단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기나긴 조선불교사의 필연적 기파(奇葩, 기이한 꽃)라 해야 할 것이다. 보경이 가지산문의 본산인 장흥 보림사의 스님이었고 또 용주사의 전신인 갈양사는 가지산문의 제2대 조사인 염거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가지산문은 체징(體澄) 이후로, 강진 무위사(無爲寺)에서 입적한 선각대사(先覺大師) 형미(逈微), 태조 왕건의 존숭을 받았던 풍기 비로암의 진공대사(眞空大師), 고려시대 숙종과 인종때 활약하였던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 『삼국유사』를 찬술한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一然), 충렬왕ㆍ충숙왕 때 존지를 선양하였던 보감국존(普鑑國尊) 혼구(混丘), 현재 한국 불교의 종조가 되는 태고보우(太古普愚)로써 그 법맥이 이어진다.
이러한 정황을 생각해 볼 때,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가지산문의 탁월한 학승이 성리학의 주요개념인 효에 상응할 만한 불교이념을 제시해야만 했던 어떤 역사적 필연성을 이미 여말선초의 격동기에 예감하고 새롭게 한국적 정서를 감안하여 찬술한 한국불교의 한 토착적 대맥이라는 가설을 나는 제시하고자 한다.
하여튼 이러한 인연으로 『부모은중경』은 16세기 중반 이후 유교적 정통론의 강화로 다소 소강상태를 유지해오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정조대왕의 효심을 빌어 장엄한 화엄의 꽃을 피우게 된다.
용주사 『은중경』은 변상도(變相圖)의 그림이 워낙 섬세하고 탁월하다. 그리고 당시의 민중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세련된 언해본이 동시에 간행된 것이다. 변상도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 해 간행된 『오륜행실도』의 판화와 같은 수법임이 드러나는데 이 양종의 판화가 모두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용주사의 대웅보전의 삼존상 뒤에 위치하는 삼세불의 후불탱화도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사계의 학자들이 고증하고 있다.
이 시기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활동의 전성시기였을 것이다(신창현감新昌縣監 사임 전후). 아마도 요새 전문 만화가들이 하나의 도제그룹을 형성하는 것처럼, 김홍도가 주관하는 화공그룹이 있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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