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여씨춘추(呂氏春秋)』를 논함
모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一)
『한서』 「예문지」는 『여씨춘추(呂氏春秋)』 26편(二十六篇)을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名家), 묵가, 종횡가 등 그 어느 분류에도 끼지 못하는 잡가자류(雜家者流)로 규정하고 있다. 그 바람에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일정한 견해나 사상의 족보가 박약한 잡서(雜書)로서 인상 지워지는 경향이 강했다. ‘잡(雜)’이라는 어휘 속에는 분명 천시하는 가치판단이 들어가 있다. 곽말약도 『십비판서(十批判書)』 속에서 ‘잡(雜)’이라는 명칭 속에는 악의가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서』 「예문지」의 분류로써 일논(一論)하자면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유가’로써 들어갔어야 한다. 중국문명의 정통의 위치를 확보했어야만 했을 서물이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가 당대의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고 있는 것은 잡(雜)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잡 속에서 어떤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다고 하는 그 위대한 측면을 간파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적 분위기의 정직한 반영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통일제국의 비젼이 있었다. 그 비젼을 위해서는 여하한 사상경향도 가릴 여가가 없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잡한 성격이야말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강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여씨춘추(呂氏春秋)』 스스로가 변론하고 있는 대목을 한번 살펴보자. 「심분람(審分覽)」 「불이(不二)」편에 쓰여 있다.
많은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의견을 다 좇아 나라를 다스리려고 한다면, 나라는 며칠이 안 가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聽羣衆人議以治國, 國危無日矣.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아는가? 노담(老聃)은 유(柔: 노자가 말하는 부드러움)를 귀하게 여기고,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기고, 묵적(墨翟)은 렴(廉: 물질적 생활의 검약)을 귀하게 여기고, 관윤(關尹: 전설적 도가사상가)은 청(淸: 삶의 깨끗한 소박성)을 귀하게 여기고, 자열자(子列子)는 허(虛)를 귀하게 여기고, 진병(陳騈: 전병田騈이라고도 한다)은 제(齊: 생ㆍ사의 한 이치, 제물齊物의 제)를 귀하게 여기고, 양생(陽生: 양주楊朱)은 기(己: 위아爲我의 이기적 주장)를 귀하게 여기고, 손빈(孫矉)은 세(勢)를 귀하게 여기고, 왕료(王廖: 병권모가兵權謀家, 진목공秦穆公을 섬긴 내사료內史廖)는 선(先: 실전에 앞선 계략이 중요하다)을 귀하게 여기고, 아량(兒良: 전국시대의 병가兵家)은 후(後: 계략보다 실전이 중요하다)를 귀하게 여겼다. 이 열 사람을 보라! 모두 제각기 일가를 이룬 천하의 호걸들이다.
何以知其然也? 老耽貴柔, 孔子貴仁, 墨翟貴廉, 關尹貴淸, 子列子貴虛, 陳騈貴齊, 陽生貴己, 孫臏貴勢, 王廖貴先, 兒良貴後. 此十人者, 皆天下之豪士也.
그러나 생각해보자! 싸움에서 왜 징과 북을 두드리는가? 그것은 전투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귀를 통일시켜 행동의 질서를 주기 위함이다. 나라가 법령을 제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함부로 기교를 발휘하도록 하지 않으며,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도 아둔한 상태로 두지 않는 것은 대중의 지력을 하나로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자라고 함부로 나서지 않게 하며 두려워하는 자를 쳐지지 않게 하는 것은 힘을 하나로 모으려 하기 때문이다.
有金鼓, 所以一耳, 必同法令, 所以一心也, 智者不得巧, 愚者不得拙, 所以一衆也, 勇者不得先, 懼者不得後, 所以一力也.
그러므로 하나로 모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제각기 뿔뿔이 흩어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하나로 모아지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 대저 만 가지로 다른 다양한 것들을 가지런히 하나로 모으고,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정교한 자나 거친 자나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하나의 원천(구멍)에서 나온 것 같이 만드는 것은 성인(聖人)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故一則治, 異則亂, 一則安, 異則危. 夫能齊萬不同, 愚智工拙, 皆盡力竭能, 如出乎一穴者, 其唯聖人矣乎!
지혜는 있으나 아랫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술(術)이 없고, 능력은 있으나 백성을 교화시킬 수 있는 가르침의 방책이 부족한 채, 강압적인 수단으로 속성(速成)만을 강요하고, 관행으로 내려오는 구습(舊習)에만 의지한다면 국가통치의 성공이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無術之智, 不敎之能, 而恃彊速貫習, 不足以成也.
춘추전국시대의 제자(諸子)들은 모두 자가(自家)의 학설만이 유일한 선이라는 것을 고집하고 타설을 배척하는 것을 논쟁의 핵심과제로 삼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놀라웁게도 학설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있다. 십가(十家)의 학설을 한 큐에 꿰어 말하는 품새도 이전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각 학파의 학설의 주요테마를 하나의 단어로 요약해서 말하는 것도 이미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시대에는 각 학파의 주장이 명료하게 하나의 특징적 개념으로 정리될 만큼 담론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순자(荀子)에게도 「비십이자(非十二子)」라는 편이 있지만 이것은 열두 사상가를 비난하기 위하여 나열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씨춘추(呂氏春秋)』는 각가의 특징을 비난하기 위하여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다양한 주장을 제각기 특색있는 학설로서 관용하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학설을 그들의 주장대로 다 쫓아가는 것은 위국(危國: 나라를 위태롭게 함)의 첩경이다. 문제는 이 다양한 학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구심체로 끌어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多) 속에서 일(一)을 끄집어 내는 것이요, 잡(雜)을 전일(專一)한 그 무엇에로 통합시키는 것이다. 일(一)은 타를 배척하는 일이 아니요, 타를 포용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다(多)를 다 소화하여 일(一)로 묶어내는 것, 그것을 ‘제만부동(齊萬不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지공졸(愚智工拙)’이 모두 ‘진력갈능(盡力竭能)’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다양한 재능과 사상이 하나의 광원에서 프리즘을 투과하여 나온 무지개처럼 창공에 펼쳐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구습(舊習)의 강압(强壓)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해서는 새로운 통일제국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周)나라는 진(秦) 소왕(昭王) 말년, BC 256년에 공식적으로 종언을 고했으며, 주나라 천자의 상징인 구정(九鼎)이 이미 진나라로 귀속되었다.
그리고 진왕 정(政)은 확고한 통일기반을 마련했으며 육국(六國: 초楚ㆍ연燕ㆍ제齊ㆍ한韓ㆍ위魏ㆍ조趙)의 멸절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가냘픈 운명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대제국의 탄생을 임박케 하는 진왕 정의 말발굽이 중원의 대지를 뒤흔들기 직전, 진나라의 중부(仲父) 여불위(呂不韋)는 바로 이 『여씨춘추(呂氏春秋)』를 편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불위(呂不韋)는 이미 진제국의 탄생을, 정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상했고 마스터 플랜을 짰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 꿈대로 실현되어 갔고, 그 최종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거대한 서물을 편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으로 인한 통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세를 통찰할 줄 아는 그랜드한 비젼의 사나이 여불위는 지금 춘추ㆍ전국의 제자백가의 외침 속에 전승되어온 다양한 사상의 통일이 없이는, 무력에만 의존하는 제국의 성립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가냘픈 풍전등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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