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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효경한글역주, 22장 상친장 - 효의 덕성이 발현되는 사회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22장 상친장 - 효의 덕성이 발현되는 사회

건방진방랑자 2023. 4. 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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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친장(喪親章) 제이십이(第二十二)

 

 

효의 덕성이 발현되는 사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부모의 상을 당하면, 구슬피 대성으로 곡하며, 세성(細聲)으로 꼬리를 흘리는 그런 곡을 하지 않으며, 조문객에 대해 예를 차릴 때에도 용모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말을 할 때에도 멋있게 꾸미지 않으며,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마음이 불안하며, 즐거운 음악을 들어도 기쁘지 아니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이 여섯 가지 정황은 효자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 애척(哀慼)의 정이다.
子曰: “孝子之喪親也, 哭弗依, 禮亡容, 言弗文, 服美弗安, 聞樂弗樂, 食旨弗甘, 此哀慼之情也.
 
삼 일이 지나서 비로소 미음을 들기 시작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부모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삶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버이를 잃은 슬픔으로 인하며 몸을 훼상하여 끝내 생명을 잃고 마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 지나간 성인들의 바른 제도이다. 복상 기간도 3년을 넘지 않도록 한 것은정현(鄭玄)의 설은 27개월, 왕숙(王肅)의 설은 25개월. 재미있게도 공전은 왕숙의 설을 취함 백성들에게 사물의 이치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三日而食, 敎民亡以死傷生也. 毁不滅性, 此聖人之正也. 喪不過三年, 示民有終也.
 
먼저 내관과 외곽을 마련하고 염의(斂衣)와 금피(衾被)시신을 염한 후에 다시 싸는 요와 이불로 시신을 잘 싸서 관에 집어넣고, 영전(靈前)에 보궤(簠簋: 제기들)를 진열하고 이별의 정을 달래며 애척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爲之棺槨衣衾以擧之, 陳其簠簋而哀慼之;
 
큰소리로 곡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는 손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구슬피 장지를 향해 운구한다. 양지 바르고 뽀송뽀송한 묘혈과 묘지를 점치어 고르고 관을 안치한다.
哭泣擘踴, 哀以送之; 卜其宅兆, 而安措之;
 
3년 복상 후에는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귀신의 예로써 제향(祭享)한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로 제사 지내며, 계절에 맞는 공물(供物)을 올리며 부모의 따사로운 은혜를 계속 떠올린다.
爲之宗廟, 以鬼享之; 春秋祭祀, 以時思之.
 
이와 같이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애경(愛敬)으로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애척(哀慼)으로 섬기니, 이것이 인간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근본을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삶과 죽음의 마땅함이 이에 다 구비되니, 효자의 사업은 비로소 끝나는 것이요, 완성되는 것이다.”
生事愛敬, 死事哀慼, 生民之本盡矣, 死生之誼備矣, 孝子之事終矣.”

 

더 이상 나 도올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리오? 번역하는 나의 붓 끝을 따라가는 나의 눈길에 부모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정이 사무쳐 원고지가 적셔지고 만다. 부모님은 누구에게나 계시는데, 과연 내가 부모를 사모하는 정을 과연 나의 자손들이 느낄손가? 내가 불효한 자식인데, 또 내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리오? 21세기가 아무리 새로운 정보의 시대요, 민주의 시대라 하지마는, 효의 본뜻은 살려야 마땅하다.

 

이 장을 읽으면서 놀랍게 느끼는 것은 전국말의 상례 습관이나 이천이백 년을 격한 오늘 우리의 풍속도가 거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아시아 인민들의 감정구조를 이제 다시 한번 리클레임(reclaim, 개심)할 때가 왔다. 전통적으로 효의 가치관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었으나 이제 민주의 시대가 왔다. 인권이 강화되고, 어린이와 여자의 권익이 보호되고, 서민의 최저생계가 보장되어가는 이런 시대일수록 보다 정당한 효의 가치관이 자리잡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효경의 주석을 총체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은 효경이 결코 지배자에 대한 서민들의 충()을 강조하고 있는 서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민들은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사회질서의 안녕이 보장된다면 자연적으로 자애와 효성의 호상적 덕목을 발현하게 되어 있다. 효경의 근원적 문제의식은 서민들의 효가 아니라 서민들이 효의 자연스러운 덕성을 발현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건설하냐에 집중되어 있다. 그 가장 강력한 정언명령이 바로 그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담지자들이 효의 가치관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치자(治者)들에 대한 법제적 강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백화노방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전국시대 사상가들의 마지막 염원은, 어떻게 천자(天子)로 상징화되는 국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천자 권력의 도덕적 통제의 테제로 내걸은 것이 바로 효()라는 것이다. 천자가 솔선수범해서 효를 실천해야만 만인이 은덕을 입게 된다. 이러한 효치(孝治)의 테제는 경대부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다. 권력이 집중된 사람들일 수록 효()를 더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효경의 궁극적 테제이다. 그리고 효는 단지 생리적 관계의 두 개체를 잘 모신다는 협애한 의미를 떠나 치자들의 올바른 사회정의관(the vision of social justice), 그리고 올바른 종교관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효의 종교이다. 이것은 현대신학의 공통된 견해이다, 올바른 삶의 태도(법복法服, 법언法言, 덕행德行)를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효경의 발상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너무도 정교하게 들어맞는다. 그리고 효경은 치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사상이 아니라, 치자와 피치자가 공동으로 실현해야 할 객관적이고도 정감적이며, 합리적이면서도 비근한, 보편주의적 패러다임(a universalistic paradigm)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제국의 꿈이었다.

 

그 제국의 꿈을 진시황제로부터 건륭황제에 이르는 기나긴 중국역사가 결코 실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실현을 향한 임피터스(impetus, )로서 효경은 항상 동아시아 역사 저변을 흐르고 있었다. 이제 효의 마음의 제국을 다시 한 번 일으켜보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에게 나 도올의 번역이 하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면 학인으로서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200964

1143

부모님을 생각하며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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